▲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총선에서 ‘떨어지더라도 내보내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전해 파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2002년 12월 강원도 모부대를 방문한 노 대통령. | ||
총선 올인 시나리오의 얼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내각의 장·차관과 비서실의 웬만한 사람들은 몽땅 내보낸다는 것, 다른 하나는 특히 사활을 거는 영남권 발판 마련을 위해 “떨어지더라도 내보낸다”는 것이다. 다음은 여권의 고위인사가 최근 전해온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류다.
“다음달이 되면 내각에서 경쟁력 있는 장·차관급 인사들과 청와대 비서실의 수석급 주요 인사들이 모두 총선에 투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언론지상에 거론되고 있는 인사 가운데 웬만한 사람들 다 나간다고 보면 된다.”
계속해서 이 인사는 말했다.
“노 대통령은 부산·경남(PK)은 물론이고 대구·경북(TK)에서까지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 민주당 시절엔 영남권의 경우 구색 갖추기로 형식적인 공천을 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을 가려 내보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한나라당의 아성이랄 수 있는 TK의 경우 ‘떨어지더라도 나가서 싸워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있는 이들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영남권 총선 전략은 한마디로 ‘옥쇄(玉碎)론’에 기초하는 것으로 보인다. 옥쇄론의 사전적인 의미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 흩어진다’인데, ‘명예나 충절을 지키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죽더라도 나가서 지역감정에 대항해 싸우다 명분 있게 죽어라’는 명령인 셈이다. 그래야 민심이 ‘이 정권이 정말 전국 정당을 하려는 의지가 있구나’라고 여기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당초 인적쇄신론 또는 전면적인 국정쇄신론의 입장에서 대규모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깨고 지난 연말에 이뤄진 개각이 한참 쪼그라든 것도 노 대통령의 총선 올인 시나리오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인책 대상으로 그동안 거론된 각료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지난번의 ‘찔끔찔끔’식의 장관 교체에서는 연말 인책 개각의 의미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지난 개각이 총선 출마자 공직사퇴 시한인 2월15일을 앞두고 1월 말이나 2월 초 대대적으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각료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개편을 고려해 모양 갖추기로 단행됐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노 대통령의 ‘시민혁명론’이나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돕는 것’ 등의 총선 승부수 발언이 총선 총동원설을 낳고 있는 것과 통하는 지점이다. 즉 개각이 총선에 맞춰져 있다는 점은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총선 올인 시나리오의 한 단면으로 해석된다.
▲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습. 노무현 대통령 뒤로 ‘징발’이 예상되는 김 진표 부총리와 강금실 이창동 장관 등이 보 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는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내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개각은 자연히 공직자 사퇴시한인 2월15일을 앞두고 이루어질 것이다.
장관들 가운데는 노 대통령과 본인들의 대외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김진표 경제부총리, 강금실 법무, 이창동 문화관광, 한명숙 환경, 권기홍 노동,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출마 예상자로 거론된다. 청와대에서는 문희상 비서실장과 유인태 정무, 정찬용 인사, 박주현 참여혁신 수석 등이 확실시된다.
정찬용 인사수석과 문재인 민정수석은 사실상 ‘동일카드’다. 정찬용 수석이 나오면 문재인 수석도 불출마를 고집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문 수석은 부산으로, 정찬용 수석은 광주로 간다는 시나리오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물론 최대 관심사는 영남지역의 공략 시나리오다. PK 공략과 관련, 이미 노 대통령이 직접 진두 지휘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측근들의 잇딴 회동에서 “4월 총선은 부산·경남지역 선거가 전체 선거판도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한 사람들과의 사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더욱 거침없이 속내가 드러났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유능하고 가능성 있는 사람은 모두 (부산·경남) 선거에 나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도 했다.
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부산지역을 책임지고, 최근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 전 경남지사가 경남지역을,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중 한 명인 이강철 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대구지역을 맡는 영남권 공략 전략이 이미 세워져 있다.
문재인 수석이 출마할 경우 부산북·강서갑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 조영동 국정홍보처장(부산진갑)과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도 영입 가시권에 들어온 게 확실시된다.
노 대통령과 가까운 부산의 386 참모들에 따르면 여권은 부산에서 일종의 ‘노풍벨트’ 형성에 돌입했다. 신상우 부의장과 함께 이태일 열린우리당 공동의장(사하을), 이헌만 전 경찰청 차장(사하갑), 김기재 의원(연제)과 조영동 국정홍보처장(부산진갑),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영도) 등이 이미 진영 구축에 들어갔다.
TK지역은 ‘옥쇄론’의 중심지역이다. 전·현직 고위관료들을 대거 몰아넣겠다는 게 노 대통령의 분명한 뜻이라고 한다. 이 지역의 노 대통령의 대리인은 이강철 중앙위원이다.
이 위원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정부에 활동하는 장·차관급이 10여 명 되는데, 이들 모두가 총선 징발 대상이다”고 말해 왔다. 이는 노 대통령의 메시지로 읽힌다. 지난해 말에 사표를 던진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는 이런 총동원령에 의해 조만간 우리당에 입당, 한나라당 김만제 의원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달서을 또는 수성갑)도 경쟁력이 높은 인사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영주), 이병진 중앙경찰학교장(영천), 김세호 철도청장(상주), 김광림 재경부 차관(안동)도 ‘사지’(死地)로 나갈 결심을 하는 중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옥쇄론을 놓고 마지막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분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옥쇄 시나리오가 이번 17대 총선에서 노 대통령과 여권이 기대하는 대로 사즉생(死卽生)의 결실로 다가올지, 아니면 또 한 번의 헛수고로 끝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