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헌 회장이 지난 6월14일 조카 정문선씨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마치 50여 일 후 닥칠 자 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하듯 표정에 자못 비 장감이 흐른다. | ||
“뭐 그냥, 고생하셨다고…”
“오늘 어땠습니까? 다른 분들의 진술 내용이…”
“뭐 대체로 다…(괜찮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기자가 생전의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나눈 마지막 대화다. 지난 1일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에 대한 법정 3차 공판이 막 끝난 직후였다.
“다음 공판은 18일 오후2시에 하겠다”는 김상균 부장판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는 피고인석에서 일어서는 정 회장에게 다가가 몇마디 질문을 건넸다. 당시 정 회장은 약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된 심리에 다소 지쳐 보이기는 했으나, 인사를 하는 관계자들에게 간간이 미소를 지어 보이는 등 예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때 이종왕 변호사가 정 회장을 한쪽 구석으로 끌고가 잠깐 심각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이어 어딘가에 급히 전화 통화를 마친 김윤규 사장 및 주변 관계자들과 함께 정 회장은 무슨 대화를 주고받으며 평상적인 표정으로 자가용에 올랐다. 누가 보더라도 특별한 결심을 하고 있는 표정이나 거동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60시간 후에 정 회장은 자살의 길을 택했다.
8월1일 오후 2시 서울지법 309호 법정. 정몽헌 회장은 김윤규 사장과 함께 정확히 시간에 맞춰 법정에 등장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취재진들의 취재 공세에 잠시 시달렸던 탓인지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정 회장은 이날도 역시 피고인 8석 중 두번째 줄 가운데에 앉았다. 그의 양쪽에는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각각 좌우에 위치해 있었다. 박 전 장관과 임 전 원장이 정면만을 응시한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었기에 별다른 인사는 없었다.
이날 심리는 특검팀의 박광빈 김종훈 두 특검보가 정 회장 등 8명의 피고인들에게 먼저 신문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박 특검보가 먼저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근영 전 금감원장에게 차례로 질문을 했다.
박 특검보가 박 전 총재에게 질문하는 사이, 김 부장판사가 이 전 금감원장에게 “신문 도중 다른 사람과 얘기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자 뒷좌석에 있던 정 회장 또한 다시 한 번 자세를 바로잡기도 했다. 이 전 금감원장은 “현대상선이 대출받은 4천억원을 정상적인 영업목적으로 썼다면 회수가 이렇게 어려워졌겠는가. 대북송금으로 썼기 때문에 안된 것”이라며 정 회장의 심기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어 김 특검보가 박 전 장관에게 김영완씨 등과 관련한 질문을 한 뒤에 정 회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 특검보는 “2000년 3~4월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가졌던 네 차례의 남북 예비접촉회담 당시 박지원 장관과 같은 호텔을 사용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정 회장은 “전부 다른 호텔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예비접촉회담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그는 회담 주도자에 대해서 “1차 회담은 우리측의 이익치 회장이 했고, 2, 3차 회담은 북측에서 먼저 연락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4차 회담은 현대가 정부측에 연락해줬다”고 밝혔다. 현대측의 실무 담당자는 이익치 회장이라고 밝혔으나, “정부측 인사는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현대측의 참석자는 정 회장 자신과 이익치 회장 두 사람이었다고 그는 진술했다. 한편 그는 재일동포 사업가로 남북한간의 연락책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다 다케시 사장에 대해 “요시다씨는 1차만이 아니고 네 차례의 회담 때마다 자리를 함께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진술했다. 그는 “1차 회담은 요시다 사장을 통해서 이익치 회장이 마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예비접촉회담에서의 현대의 역할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리,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현대의 역할은 북측에 회담을 타진했고, 북측이 돈을 요구해 옴에 따라 이를 우리 정부에 얘기해서 이를 다시 북측에 통보하는 중간 역할이었다”고 밝혔다.
연락책은 남측에는 이 회장이, 북측에는 요시다 사장이 각각 맡았다고 밝혔다. 또한 “처음에는 남북한 양측의 소개를 위해, 2차 회담 이후부터는 북측의 요청에 의해 줄곧 예비접촉에 참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 특검보는 “박 장관은 당시 예비접촉 장소에서 회담 이외에는 따로 자리를 갖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묻자 “1차 회담에서는 따로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2~4차 회담에서는 만난 사실이 없다”라며 다소 엇갈린 진술을 하기도 했다.
당시 현대가 북한에 대북사업 대가로 지급키로 한 4억달러에 대해서도 정 회장은 자신이 직접 그 사실을 정부에 통보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이때 앞좌석에 있던 김윤규 사장이 “5월3일 합의 후 약 일주일쯤 후에 내가 직접 국정원에 보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김 특검보는 박 전 장관의 개입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 정몽헌 회장이 자살한 지난 4일의 현대아산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금강산 해수욕장 포스터가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임준선 기자 | ||
“박 장관을 찾아가서 현대에 대한 지원 요청을 한 사실이 있나?”
“찾아간 적이 있다.”
“어떤 내용이었나. 정부에서 대납을 요구한 1억달러에 대한 지원 요청이었나? 아니면 현대 지급분인 3억5천달러까지 포함한 내용이었나?”
“전부 다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현대가 지금 좀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경제 부처 책임자도 아닌데 왜 박 장관에게 그런 지원을 요청했나?”
“당시 (박 전 장관이) 정부측 대표로 왔고, 또 (예비접촉회담) 내용을 둘 다 알고 있고….”
“예비접촉회담 장소에서 김영완은 봤나?”
“난 못 봤다.”
“그런데 왜 김영완이 네 차례 모두 회담 장소에 있었나? 우연의 일치인가?”
“우리는 (김영완의 참석을) 요청한 바 없다.”
(정 회장에 바로 앞선 신문에서 박 전 장관은 “당시 예비 회담 장소에서 네 차례 모두 김영완씨를 봤다”라고 진술했다.)
이후 특검측의 질문은 임 전 원장과 이 전 수석 등에게 집중되면서 대북송금의 역할을 둘러싼 박 전 장관 등 이들 3인의 당시 ‘3자 회동’에 한동안 초점이 모아졌다.
특검측의 신문이 끝나고 변호인 신문이 이어지면서 현대측의 변호인인 이종왕 변호사가 정 회장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정부측 인사와 다른 호텔을 사용했다고 했는데 혹시 그 호텔들을 다 기억할 수 있느냐”는 것.
이에 대해 정 회장은 “1차 때는 우리가 마리나 호텔을 썼고, 정부측에서는 리츠칼튼 호텔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이후 우리는 2차 때 하얏트 호텔을, 3차와 4차에는 월드차이나 호텔을 사용했다. 정부측에서 어디를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당시 우리 호텔에 김영완씨가 묵었는가 하는 점은 잘 모르겠다. 김씨가 왔다는 것도 몰랐고, 동행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검사측과 변호인측의 신문이 끝나자 재판부가 직접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기 시작했다. 김 부장판사는 정 회장에게 “당시 정부가 북측에 지급하기로 한 1억달러를 마련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라고 묻자 “만약 정부가 마련 못하면 북한의 통신사업권을 우리에게 추가로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 있었다”며 새로운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김 부장판사가 “1억달러를 대납해주고 통신사업권을 가질 수 있다면 사업쪽으로는 그것이 더 이득이 아닌가”라고 묻자 “북한의 통신사업권은 우리가 계속 욕심을 내고 있던 거였고, 우리가 더 이익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답했다.
이날 정 회장의 모습은 큰 동요가 없었다. 답변 또한 딱히 머뭇거리거나 얼버무리는 것 없이 비교적 명쾌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간결하게 답했다.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 박 전 장관과 임 전 원장이 수시로 “진술을 거부한다”고 입을 다문 것과는 달리 정 회장은 비교적 상세하게 답변하고자 애쓰는 모습이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던 이날 정 회장의 모습으로 봐서 이때부터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자살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면 그는 죽음 앞에 너무나 초연했다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