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의 긴급의원총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전날 발표한 안철수 의원과의 창당합의의 배경과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도부에 속한 민주당 중진 의원이 기자와 ‘통합에 따른 당사 이전 가능성’에 대해 얘기를 하다 넌지시 꺼낸 말이다. 대화는 당사 이전 가능성에서 어느덧 계파 갈등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 의원은 이어 “분명 지금도 민주당 안에는 126 대 2(민주당과 안철수 진영 측의 국회 의석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기득권 내려놓지 않는 이들과는 함께 가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결국 주류인 친노 세력을 겨눠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내심 안철수 진영과의 통합에 있어서 친노 진영의 배제까지 염두에 둔 듯했다.
안철수 진영과의 신당 창당을 합의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앞서 중진 의원의 속마음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민주당 내부의 계파 갈등이 여전히 지뢰처럼 산재해 있다. 이 상황에 안철수 진영이라는 또 다른 이질적 세력들이 테두리 안에 들어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야권의 신당 창당은 좋은 의미에서 통합이지만, 달리 보자면 야권 내 각 진영의 이합집산을 의미한다”며 “이를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김한길 대표의 가장 큰 숙제다. 아무리 안철수 진영과 동수 지도부 구성에 합의했다지만 최소한 6월 지방선거까지 키는 여전히 노련한 김한길 대표가 쥐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전부터 야권 최고의 전략가 중 한 명으로 꼽혀온 김한길 대표라지만, 이번 과제는 실로 만만찮다. 일단 안철수 진영과의 통합은 선언했지만, 자칫하면 예전 야권 통합 사례가 그랬듯 ‘깨진 도자기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왼쪽부터 정세균 의원, 손학규 상임고문.
통합의 과정은 크게 발기인, 창당준비위, 신당 지도부 구성, 그리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합 신당의 단일 후보 공천으로 이어진다. 지도부 구성부터도 만만찮은 과제지만, 역시 가장 큰 숙제는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후보 공천이다. 이미 몇몇 안철수 진영 인사들이 출마를 선언하거나 거론됐던 탓에 김한길 대표로서는 공천 과정에서 각 진영을 염두에 둔 타협과 강공을 넘나들어야 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안철수 진영은 벌써부터 경기의 김상곤, 전북의 강봉균, 부산의 오거돈 등 자기 진영 후보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며 “당 내부에선 기존 후보에 전남의 박지원, 전북의 정동영 등 거물급 인사들의 차출론 혹은 출마 결심이 이어지면서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김한길 대표로서는 기존 당내 후보를 챙기면서도 안철수 진영에 일부 지역을 양보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내홍을 최소화해야 한다. 어쩌면 통합보다도 어려운 과제”라고 덧붙였다.
예전 유럽에서는 ‘얄타 체스’라는 특수한 게임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 영국-미국-소련이 패전국인 독일의 처리를 두고 열었던 얄타회담을 빗대 만들어진 체스게임으로 육각형의 체스판에 세 명의 주자들이 제각기 동맹과 배신, 협공을 반복한다. 어쩌면 김한길 대표 머릿속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얄타 체스판 네댓 개를 동시에 컨트롤해야 하는 입장일 것이다. 그의 다음 ‘수’는 과연 무엇일까.
한병관 기자 wlim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