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씨, 경호처 상대 헌법소원 제기 ‘공방전’ 여전…동문들 인권위 진정 각하, 학교는 ‘입꾹닫’
#입틀막 사건 어디까지 왔나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은 2월 16일 카이스트 교내에 있는 류근철 스포츠콤플렉스에서 열렸다. 이날 약 5000명(졸업생 1800여 명)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혹 탄 브로드컴 회장, 성악가 조수미 등이 단상에 자리했다. 이날 졸업식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다.
오후 2시 5분 윤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했다. 약 4분 뒤 “윤석열 대통령 R&D예산 복원하라”는 외침이 들렸다. 경호원들은 구호를 외쳤던 신 씨를 제지했다. 신 씨는 입이 틀어막힌 채 팔다리가 들려 퇴장당했다. 이 모습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고, 대통령경호처의 과잉 경호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경호처는 경호구역 내에서의 경호 안전 확보 및 행사장 질서 확립을 위해 소란 행위자를 분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신 씨 주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경 대전 유성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학교로 찾아와 그에게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미란다 원칙도 고지받았다. 오후 3시 20분 신 씨는 유성경찰서 영사당직실 영치실로 이송됐다. 신 씨는 경찰에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당직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경찰은 변호사가 아니면 면담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후 경찰과 신 씨 측은 추후에 일정을 잡아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신 씨는 3월 6일 유성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신 씨는 이날 녹색정의당 당직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졸업식에서 끌어내는 것도 모자라 저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국민들에게 알려주지도 않는 규정을 근거로 국민을 강제로 끌어가는 것이 과연 법치국가의 모습이 맞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 건은 현재 조사 결과 발표만 남았다.
2월 20일에는 일부 카이스트 동문과 재학생이 김용현 대통령경호처 처장과 직원 등을 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폭행·감금죄 등으로 고발했다. 고발인은 2004년도 카이스트 총학생회장이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인 김혜민 씨, 카이스트 산업경영학과 96학번 주시형 전남대 산업공학과 교수 등 26명이다. 3월 14일 고발인 조사가 있었고, 5월 8일 피해자 조사가 진행됐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대통령경호처와 신 씨 측 주장은 엇갈린다. 경호에 필요한 조치를 정당하게 수행했다는 것이 대통령경호처 입장이다. 대통령경호처는 경찰 조사에서 대통령경호법 제5조 제3항과 같은 법 제17조 제1항 등을 근거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구체적인 위험이 발생한 경우뿐 아니라 위험의 발생 가능성이 있는 행위에 대해서도 미리 적절한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경호법 제5조 제3항은 “소속 공무원과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서 경호업무를 지원하는 사람은 경호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경호구역에서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조치 등을 위해 방지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제17조 제1항에는 “경호공무원(처장의 제청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 지명한 경호공무원을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은 제4조 제1항 각호의 경호대상에 대한 경호업무 수행 중 인지한 그 소관에 속하는 범죄에 대하여 직무상 또는 수사상 긴급을 요하는 한도 내에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신 씨 측은 윤 대통령과의 거리(단상으로부터 가로 약 11m, 세로 약 24m, 사선으로 약 26m 떨어진 위치)가 멀었고, 두 손에 현수막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또 경호처가 어떤 법을 위반했는지 설명하지 않은 점, 경호원의 첫 대응이 입을 막았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경호처 대응이 부적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2월 26일 재학생 간담회에서 ‘학교에서는 업무방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을 처벌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부분을 경찰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4월 9일에는 신 씨와 녹색정의당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신청했다. 대통령 경호처가 헌법 제21조를 어겼다는 것이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앞서 대통령 경호처가 보안검색 과정에서 졸업생의 책 내용까지 검열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헌법소원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관련기사 책 내용 검열까지…‘입틀막’ 경호로 얼룩진 카이스트 졸업식 현장에선).
국가인권위원회에 낸 인권침해 진정은 4월 30일 각하됐다. 앞서 2월 23일 신 씨와 카이스트 동문·재학생·교수·학부모 등 1136명은 “피진정인의 표현·신체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했다”며 진정 이유를 설명했다. 인권위는 인권위법 제32조 1항5호를 근거로 각하했다고 밝혔다. 제32조 1항5호에 따르면 인권위는 수사 등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일 경우 진정을 각하할 수 있다.
#학교 측 대응 지지부진
이광형 총장은 사건 4일 뒤인 2월 20일 입학식에서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님께서도 카이스트를 방문해 주셔서 ‘카이스트 학생들의 꿈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 카이스트의 도전이 우리나라의 혁신이다. 카이스트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카이스트 내부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지 4일 만에 윤 대통령 발언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2월 26일 학생과의 간담회를 열고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취재에 따르면 이 자리는 학부 학생회에서 먼저 요청했다. 당시 학생회엔 학교 측 입장 표명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묻는 재학생들 문의가 쇄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문의를 받은 학생회가 학교에 간담회를 열 것을 요청한 것이다.
간담회에서는 주로 학교 인권 규정을 준수했냐는 질문이 나왔다. 카이스트 인권경영규정 제9조에는 “과학기술원은 경영활동 과정에서 협력사 등 이해관계자의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규정돼 있다.
교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학교 측 입장을 설명했다. 카이스트 학내 신문인 ‘카이스트신문’이 정리한 질의응답에 따르면 학교 측은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직자들과 부총장단 회의를 거쳐 총장 제가를 받은 결정이다. 학내 신문에 따르면 이균민 대외부총장(현 교학부총장)은 “우리가 학생의 인권이 침해되었으니 사과하라 요구했을 때 사회적 파장이 없으면 좋은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학교의 피해로 돌아올 수 있어 (성명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부총장은 사견을 전제로 “(인권침해 사건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고 본다”며 “지금 시기에 판단하자면 폭행에 가깝게 심하게 끌고 나갔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과거) 본인의 대학 생활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굉장히 얌전하게 끌고 나간 것”이라고 발언했다. 다만 그는 “(인권이) 침해된 사항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경호처가 일부 참석자의 책과 편지 내용을 검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은 모른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니 검색 조치는 있었을 거 같다. 보통 생각하는 보안검색 정도의 조치가 있었다고만 알고 있다”고 했다.
추후 대응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졸업식에 대한 리뷰 진행 및 개선방안 모색 △사실관계 규명을 위한 졸업생(신민기 씨)과의 소통 △추가적인 소통 진행 등을 약속했다.
5월 10일 현재 이 약속들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신 씨에 따르면 간담회 이후 학교 측 연락은 없었다고 했다. 사실관계에 대한 검증이 정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추가적인 소통은 ‘첫화사(매달 첫째 화요일 오후 4시의 줄임말, 카이스트 총장과 학생들 간 만남)’에서 이뤄졌다. 5월 7일 열린 첫화사에서는 한 재학생이 약속한 사항이 어디까지 진척됐는지 질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질문을 받은 이광형 총장은 김경수 대외부총장에게 답변하라고 했다. 김 부총장은 ‘진행상황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삭감된 R&D 예산 등을 다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각을 세우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일요신문은 5월 10일 카이스트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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