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기념회는 해당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따라 권당 1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한 의정보고서 제작 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정책 홍보물과 자료비가 제공되지만 좋은 질의 의정보고서를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는 예산이 부족해 의정보고서에 최소한의 돈을 썼다. 기본적인 디자인도 모두 내가 맡아서 했다”며 “좋은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고품질의 책자를 만들면 수천만 원이 드는데 우리 쪽은 엄두도 못 낸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국회의원들은 크게 개인별 후원계좌와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 후원금 모금 한도는 연 1억 5000만 원이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2배인 3억 원까지 받을 수 있다. 후원자들에게도 제한이 있다. 한 사람이 1년에 최대 2000만 원까지, 한 의원에게 500만 원까지 후원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돼 책값을 받는 것에 대한 규제가 딱히 없다.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의원들의 재산이나 인기 정도에 따라 의원실의 자금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운영비가 부족하면 지지자들이 주는 정치자금을 사용해야 하는데 자금이 모이지 않으면 그만큼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국가에서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금액은 연간 약 6억 원이다. 국회사무처가 공개한 국회의원 1명당 연간 비용에 따르면 세비 등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돈은 총 1억 6000만 원가량이다. 보좌관, 비서관, 비서, 인턴 등 9명의 직원의 연봉으로 총 3억 6000만 원가량이 쓰인다. 이외에 실무적으로 연간 사무실 운영비 600만 원, 사무실 공공요금 1092만 원, 의정활동 지원 매식비 600만 원, 정책홍보물 유인비(제작비) 및 정책자료 발간비 2000만 원, 정책자료 발송료 370만 원이 지급된다.
의원실 실무 지출의 ‘블랙홀’은 행사나 세미나 등의 활동이라고 한다. 한 새누리당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세미나를 하는데 돈이 정말 많이 든다. 의원이 하는 행사나 세미나가 한두 개가 아니다. 의원의 열정도 좋지만 예산이 부족해 후원금이 절실하다”며 “교수 등 패널에게 주는 돈이 20만 원인데 다섯 명만 모아도 100만 원이다. 장소 빌리는 데도 돈이 든다. 작게 하면 수백만 원 정도, 크게 하면 100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 이종현 기자
이 때문에 의원실에서는 연간 1억 5000만 원이라는 후원금 모집에 열을 올린다. 국회의원들은 주로 자신의 홈페이지에 후원 소개란을 따로 만들어 홍보한다. 그 안에 “후원하면 세액공제가 가능하다”라는 점도 강조돼 있다. 의원실에서는 지지자들에게 홍보 문자나 연락을 통해 전화 마케팅 홍보를 하기도 한다. 아예 명함 뒷면에 후원 계좌를 명시해놓는 의원들도 상당수다.
후원금 모금액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정무위 같은 인기 상임위나 중진 의원 등 지지 세력이 있는 의원들의 경우는 후원금 계좌가 목표를 달성해 일찍 닫힌다. 후원금이 넘칠 경우 오히려 다른 의원들에게 기회를 넘겨주기도 한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지지자들이 돈을 준다는데 안 받는다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후원금이 부족한 다른 의원실로 후원금을 입금해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고 의원들끼리 얘기해서 (후원금이 많은 의원 쪽에서) 지원금을 계좌에 넣어주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전했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사실 후원금이 적은 의원들은 자신의 지지도가 그만큼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기에 후원금이 부족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의원들 스스로 싫어한다. 후원금 등수대로 언론에 공개되고 하지 않느냐”며 “돈 문제도 있지만 체면 차원에서 의원들끼리 후원금을 어느 정도 갖추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고 귀띔했다.
의원 지지도가 후원금에 영향을 미치다 보니 국회에서 눈에 띄는 행동으로 덕을 보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지난해 국회 내에서 강도 높은 발언을 하고 있는 일부 야당 의원들은 종전보다 많은 후원금이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대선불복 선언으로 눈길을 끈 민주당 비례대표 장하나 의원은 이후 유독 후원금이 몰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1월 열린 정몽준 의원 출판기념회 현장. 임준선 기자
출판기념회에는 ‘성수기’가 존재한다. 지역구 출신 의원들에게는 지방선거나 총선 전이 유리하고 주요 상임위에 속한 의원들은 국감 전후에 참석자가 많은 편이다. 지역구를 관리하는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들은 본인이 출마할 것이 아닌데도 선거 전에 출판기념회를 연다. 지역 체육관을 빌려놓고 크게 하는데, 공천 받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데려오는지 세기도 한다”며 “또한 인기 상임위에 속한 의원들이 국감 전후로 출판기념회를 하면 기업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예결위 같은 경우 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사람들이 모이는 편”이라고 했다.
출판기념회에서는 주로 책을 구입한다기보다는 해당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기에 이해관계에 따라 책 한 권에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 이상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기념회장에 가면 흰색 종이로 가려진 박스가 두 개 정도 마련돼 있다. 책을 받고 그 안에 준비해온 봉투를 넣는 식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화장실에서 쓰는 파란 쓰레기통까지 동원된 걸 봤다. 주로 긴 테이블 두 개를 붙이고 그 위에 포스터나 전지로 테이블 아래까지 가리는데 테이블 사이를 살짝 떼어놓고 그 안에 쓰레기통을 놓는 방식”이라며 “쓰레기통 위에는 바닥이 뚫린 모금함을 올려놓는다. 그러면 모금함이 찰 일이 없이 계속 봉투가 들어가지 않겠나. 그렇게까지 하는 행사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