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픈 울음소리를 몇 분간 들어야만 했다. 국정원 측이 벌인 조사에서 “오빠가 간첩이다”라는 진술을 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를 뒤집은 가려 씨.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중국 길림성에 체류하고 있는 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가려 씨는 울음 섞인 뜻 모를 말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인터뷰를 포기한 기자가 가려 씨에게 “오빠(유우성)가 많이 걱정하더라”는 말을 건네자 “오빠, 불쌍한 우리 오빠…”라며 그제야 깊은 속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유우성 씨가 <일요신문>에 건넨 가족사진. 왼쪽부터 부친, 유가려 씨, 유우성 씨.
―한국에는 왜 입국했는가.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오빠는 미국이나 캐나다 이런 데서 공부하라고 그랬지만, 어릴 때부터 한국이 좋았다. 오빠도 한국에 있고….”
―왜 국정원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잘 모르겠다. 처음엔 내가 화교라서 그런가 고민도 됐지만, 화교 출신이면서 탈북자 신분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꽤 있다. 방송 출연도 한다. 국정원 사람들한테 끌려갔을 때 너무 혼란스러웠다.”
―국정원 조사를 받으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처음에 국정원 사람들이 ‘화교인 것을 시인해라’고 했을 때 너무 괴로웠다. 화교인 게 드러나면 오빠가 더 이상 한국에서 일하지 못 할 텐데. 나 때문에 오빠의 인생을 망칠 수 없었다.”
―탈북자들 사이에서 화교 신분이 드러나는 게 굉장히 큰 공포라고 들었다.
“맞다. 내 가슴과 등에 ‘회령화교 유가려’라고 기재한 종이를 붙이고 탈북자들 무리로 데려가기도 했다. 너무 무서웠다. 결국 공포심에 화교인 것을 시인하게 됐다.”
―국정원 조사 과정 내내 감금, 폭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6개월 동안 감금돼 있었던 것 같다. 수사관들이 수시로 때렸다. 때리면서 ‘오빠가 간첩 활동한 거 맞지? 오빠가 다 인정했다. 너도 인정하지 않으면 오빠는 감옥에 가게 돼’, ‘한국에서 살고 싶으면 너도 인정해’, ‘김현희를 봐라. 인정하니까 아무 일 없이 한국에서 잘 살잖아. 너도 인정하면 오빠랑 좋은 집에서 살 수 있어’ 이런 말들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항소이유서를 통해 “유가려의 진료기록에 따르면 폭행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없으므로 유가려 측의 폭행협박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매일같이 폭행이 반복되었나.
“때리지 않을 때는 부드러운 말로 ‘우리가 오빠를 도와줄 테니 간첩 행위를 인정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몇 개월 동안 맞으면서 언제 나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고…무엇보다 오빠가 너무 걱정됐다. 오빠를 위해서 거짓말 하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다(울음).”
―그래도 어떻게 오빠가 간첩이라고 말할 수 있나.
“내가 화교인 게 밝혀졌으니 오빠도 한국에 더 이상 좋게 살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꾸 국정원 사람들이 오빠를 감옥에 보낸다고 하니까…인정하면 감옥에 안 보낸다고 하니…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진술해야만 했다. 오빠 미안해(울음).”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