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엽 전 팬택 대표가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입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DB
지난해 9월 박병엽 부회장이 팬택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팬택 임직원들은 물론 재계에서도 놀라는 사람이 적잖았다. 비록 팬택이 2012년 3분기부터 지난해 4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직원들의 대규모 무급휴직을 실시하는 등 위기가 턱밑까지 차오른 데 대한 책임이 있으나 팬택과 박 전 부회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기 때문이다.
박 전 부회장이 물러난 후 팬택은 지난 2월 25일 채권단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지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다. 박 전 부회장이 팬택 대표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것은 지난해 9월이 처음은 아니다. 팬택이 첫 번째 워크아웃에서 졸업하기 직전인 지난 2011년 12월 박 전 부회장은 느닷없이 팬택 대표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채권단은 박 전 부회장의 사퇴 발표 하루 만에 팬택의 워크아웃 졸업에 합의했고 박 전 부회장은 다시 팬택으로 돌아왔다. 당시 박 전 부회장의 사퇴는 ‘채권단 압박용’으로 해석됐다. 17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던 팬택의 워크아웃 졸업에 채권단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자 박 전 부회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 이는 결과적으로 효과 만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사임 때는 달랐다. 회사를 완전히 떠났다. 팬택의 상황도 2011년과 판이하다. 회사의 위기도 위기지만 전망이 어둡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박 전 부회장 스스로 “(앞으로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빅4(삼성애플MS구글)’를 제외하고 생존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다. 게다가 우수한 기술력에다 최첨단 기능을 탑재했더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 대형 업체와 싸우기에는 팬택의 자금력이 역부족이다.
언제까지 채권단의 지원에만 매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채권단이 끝까지 지원해줄지도 의문이다. 설사 채권단의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그만큼 경영 간섭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부회장의 활동 폭이 얼마나 넓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이유로 일각에서는 박 전 부회장이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박 전 부회장 본인은 직원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당하는 상황에서 대표로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고 했지만 어려운 현재 상황과 어두운 앞날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무튼 팬택에서 박 전 부회장은 떠났고 그의 새로운 도전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재기의 뜻을 내비친 그가 도전하려는 새로운 일은 ‘스포츠토토’ 사업이다. 박 전 부회장은 팬택씨앤아이를 통해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자 입찰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팬택씨앤아이는 박 전 부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로 있는 회사로, 휴대폰 부품 개발유통, 시스템통합(SI)관리(SM) 업체다.
스포츠토토는 매년 매출액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고 영업이익률이 20~30%여서 군침이 당기는 사업이다. 스포츠토토의 지난해 매출은 3조 700억 원으로 2007년 1조 원을 돌파한 이후 6년 만에 마침내 3조 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스포츠토토의 2012년 매출액은 2조 8000억 원.
선정만 되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상당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팬택씨앤아이 외에 나눔로또 수탁사업자 유진기업, 나눔로또 수탁사업에 도전했던 LG CNS, 편의점 CU의 유통망을 앞세운 보광, 대상, 삼천리, 휠라, 오텍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막론하고 다수 업체가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에 도전하고 있는 이유도 스포츠토토 사업의 이 같은 매력 때문이다.
여러 업체가 노리고 있으니 만큼 유리한 조건으로 입찰하기 위해 수수료율이 대폭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을 노리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입찰을 앞두고 서서히 경쟁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며 “일부 업체의 경우 한푼도 안 남아도 좋으니 무조건 고(Go)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비록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해도 정부 발주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외신뢰도를 높이고 기업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스포츠토토 수탁사업이 비록 ‘황금사업’으로 꼽히지만 박 전 부회장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분야는 따로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단 당장 하기에 좋고 꾸준히 현금이 들어오니 테이블 머니로 활용하기 딱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