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강력부장 초청오찬에서 강금실 법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다음달 검찰 정기인사가 본보기 인사가 될 것이라는 말이 최근 돌고 있다. | ||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일찌감치 ‘파격’을 예고했던 인사인 데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공직 기강잡기에 나선 시점에서 이뤄지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고검장·검사장 직급 폐지 및 단일호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검찰청법 개정 이후 첫 번째 정기 인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해 참여정부 출범 초기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검찰 조직에 인사 충격이 몰아칠 것인지를 점치느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이번 검찰 인사의 최대 관심사는 검찰 직급 폐지 등과 맞물려 실질적인 ‘서열 파괴형’ 인사가 단행될 것인지 여부다. 올 1월부터 시행된 개정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고검장과 검사장의 직급을 검사로 일원화해, 이제 검찰 조직에는 검찰총장과 검사만 존재하게 됐다. 따라서 법률적으로만 따지면 모든 검사는 연수원 기수나 기존 보직에 관계 없이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보직에 임명될 수 있다.
이를테면 검사로 임관된 지 몇 해 안 되는 ‘초짜 검사’들도 얼마든지 기존의 검사장급 보직으로 갈 수 있고, 역으로 현재 고검장이나 지검장 자리에 있는 간부들이 보통 부장급 검사들이 가는 고등검찰청 검사 등으로 ‘하방’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노 정권이 검찰 조직이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집권 초기와 같은 ‘기수 파괴형’ 인사로 파란을 일으킬 경우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검찰 내부의 반발이 클 것이고,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총선을 앞두고 검찰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며 정부를 집중 성토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서는 “강 장관이 고위직 몇명 정도에 대해서는 ‘본보기 인사’를 할 개연성이 높다”는 ‘괴담’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노 대통령이나 강 장관의 검찰 개혁정책 등에 대해 공·사석에서 불만을 제기해왔거나 각종 개인 비위로 구설수에 올랐던 일부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직급제 폐지’에 따른 시범 인사 케이스로, 한직으로 꼽히는 고검이나 지방의 지청, 또는 법무연수원 등 유관기관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 1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일부 외교부 관리들을 겨냥해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불쾌한 감정을 모욕적 언사로 표현하는 수준”이라고 질타한 데 이어 다음날 윤 장관의 사표를 전격 수리한 것은 검찰 조직에도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다른 장관은 몰라도 윤 장관과는 끝까지 함께 갈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 터에 그렇게 한 번에 내치는 것을 보고서 솔직히 섬뜩했다”며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공직 사회의 ‘군기’를 잡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 연말 한 오찬 자리에서 검찰의 측근 비리 수사발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내가 (인사권자로서 검찰을) 죽이려 했다면 두 번은 갈아 마실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도 검찰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검찰 발표가 마치 자신이 최도술씨에게 부산 지방선거 잔금 횡령을 지시한 것처럼 돼 있고, 강금원씨가 이기명씨의 용인땅을 구입한 것을 위장거래라고 한 것 등에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이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청와대는 이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며 소송에 들어가고 노 대통령의 관련 발언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나, 검찰 내부에서는 대통령이 실제 그런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평소 대통령의 거침없는 언행으로 미루어볼 때 이번 발언도 가까운 측근들과 있는 자리에서 술김에 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것인데 대통령이 말한 것이라고 하니 문제되는 것 아니냐”며 “별로 귀담아 두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어쨌든 노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이른바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대검 중수부의 측근 비리 수사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30일 문재인 민정수석 명의의 논평을 통해 수사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 송광수 검찰총장 | ||
이런 참모들의 인식은 “힘센 검찰은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의 평소 생각과 맞물려 검찰 인사에 투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강 장관이 인사안을 놓고 송광수 검찰총장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할 것인가다.
지난해 8월 인사 때 강 장관이 송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송 총장의 ‘수족’으로 분류되는 중간 간부들을 한직으로 밀어내면서 심각한 갈등 양상이 빚어진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검찰총장의 인사협의권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지난해 개정된 검찰청법에 총장의 인사협의권이 명문화됐으나, 총장 의견을 수용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강 장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송 총장은 지난 8일 기자 간담회에서 “전에는 인사를 하면 최종안에 장관, 총장이 같이 사인을 했는데 이번 장관 들어와서 그렇게 안했다”며 강 장관 인사 스타일에 대해 에둘러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한 법무부가 대검 중수부장 자리를 유임시키기로 함에 따라 검찰 내 4대 핵심 요직 중 나머지 서울지검장과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에 누가 임명될 것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당초 서영제 서울지검장의 후임 1순위로 꼽혀왔으나, 법무부가 정치적 시비거리를 낳을 것을 우려해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을 전원 유임시키기로 결정함에 따라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의 꿈을 유보하게 됐다.
또 대검 공안부장은 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사범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중책을 맡게 되는 점에서, 검찰국장은 취임 2년차를 맞는 강 장관의 검찰 개혁 프로그램을 앞장서 수행할 자리라는 점에서 후임자 인선에 쏠리는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해 8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내년 3월에는 깜짝 놀랄 인사를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는 강 장관이 어떤 인사 카드를 꺼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