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얼마 전 어느 로또계 모임에서 실제 1등 당첨자가 나온 이후로는 직장인들과 친구 친지들 사이에 ‘로또계’ 붐이 일고 있다. 2003년 상반기 최대의 히트작 ‘로또’는 올 추석 귀성길에서도 단연 최고의 화제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복권사업팀. 여기에는 매주 10여 명 정도의 행운아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찾아온다. 이들은 자신의 복권이 실제 당첨된 것을 확인받고서야 안도하는 얼굴로 돈을 찾아가곤 한다. 복권사업팀 관계자들이 이들 행운아들에게 항상 묻는 질문은 두 가지 있다. 당첨금을 어떻게 쓰겠느냐고 하는 것과 전날 밤 무슨 꿈을 꾸었느냐는 것.
모든 복권 마니아들은 당첨자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이 꾼 ‘길몽’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흔히 지금까지는 돼지꿈, 용꿈 등이 ‘길몽’으로 알려져 왔다. 로또복권 초기에는 당첨자들 가운데서 물을 봤다는 얘기가 많아 한때 ‘물꿈’을 이른바 ‘로또몽’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로또 1등 당첨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먼저 세상을 하직한 조부모나 부모 또는 남편 등이 나타나는 꿈이 가장 많은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복권 역사상 최고의 금액(약 4백7억여원)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큰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는 박아무개씨는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노라고 국민은행 관계자에게 전했다. 장남으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집안 가장 노릇을 하느라 대학 진학도 못했던 박씨는 당첨되기 며칠 전 바쁜 와중에서도 아버지 산소의 벌초를 다녀왔다고 했다. 주변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령이 착한 장남을 보살폈다는 얘기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14회차 1등 당첨(93억7천5백여만원)의 대박을 터뜨린 전남 순천의 자동차 정비사 H씨는 추첨 전날 돌아가신 할아버지 꿈을 꾸었다. 마침 그날이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던 터라 잠에서 깬 H씨는 더더욱 할아버지가 그리웠다. 당첨금을 받으러 온 자리에서 H씨는 국민은행 관계자에게 “전 평소 일이 너무 힘들어 꿈을 좀처럼 꾸지 않는데 그날만큼은 할아버지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제 손을 꼭 잡아주셨다. 너무나 생생해 지금도 그 따뜻한 손길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고백했다는 것.
10회차에서 1등 당첨한 충남 아산의 60대 여성 L씨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억척스런 어머니. L씨는 어느날 죽은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에게는 돈뭉치를, 자식들에게 집문서를 건네주는 꿈을 꿨다. 다음날 로또 복권을 구입한 L씨는 60억원의 대박을 안았다.
로또 14회차 1등 당첨자 4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한 당첨자의 꿈은 아주 독특했다. 이 당첨자는 당첨일 전날 밤 꿈속에서 자신이 직접 로또 추첨방송을 봤으며 신기하게도 잠이 깬 다음에도 꿈속에서 본 6개의 번호중 5개의 번호가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더라는 것. 그러나 나머지 한 번호는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봐도 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2, 6, 12, 31, 33 등 5개의 번호를 수첩에 적고 난 뒤 그날 저녁 판매소에 가서 5게임을 했다. 꿈 속에서 확인한 5개의 숫자를 먼저 기입하고 난 뒤 나머지 한 번호는 39번부터 43번까지 순서대로 기입했다는 것. 결국 40번이 1등에 당첨됐고, 나머지 4게임은 모두 3등에 당첨되면서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경기도 안성에서 남편과 함께 과수원을 경영하는 정아무개씨(38)는 며칠간에 걸쳐서 계속 노무현 대통령이 꿈속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날 결국 노 대통령이 먼저 청해 악수를 했다는 것. 대통령과의 악수 꿈은 ‘길몽’이라는 남편의 권유에 주택복권을 구입한 정씨는 결국 5장 중 1장이 1등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
지난 7월 인터넷 주택복권에 나란히 1등으로 당첨된 김아무개씨(37·여)와 고아무개씨(22·여)는 꿈도 역시 나란히 노 대통령 꿈이어서 화제가 됐다. 김씨는 노 대통령 부부를 만나는 꿈을 꾸고는 곧바로 복권을 구입했으나 첫 번째와 두 번째에는 꽝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에서 기어이 1등 당첨자가 되어 1억원을 받았다.
고씨 역시 복권을 구입하기 며칠 전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역대 복권 당첨자 중 대통령 꿈을 꿨다는 사람이 많이 있다더라”는 말을 들은 고씨는 본인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복권을 구입했는데 정말 1등에 담첨된 것.
이밖에도 전통적인 길몽이라고 알려져 있는 뱀꿈, 돈벼락꿈, 오물꿈 등도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의 김아무개씨(29)는 길가에 있는 오락기에서 동전과 상품권이 마구 쏟아져 두 손으로 받쳐도 흘러 넘치는 꿈을 꾸고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주택복권을 구입한 것이 1등과 2등 두 장(총 4억원)에 당첨되는 행운을 안았다.
전남에 거주하는 30대 중반의 J씨는 지난 2월 어느날 밤 이상한 꿈을 꿨다. 사각으로 생긴 조그마한 웅덩이에 낚싯대를 집어 넣어 뱀을, 그것도 독사를 여러 마리 잡는 꿈을 꾸었던 것. 평소 잠에서 깨어나면 쉽게 꿈 내용을 잊어버리는 J씨에게 이 날은 오전 내내 꿈 내용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찬스복권 2장이 당첨되어 1억원을 받았다.
23회 로또 2등 당첨자인 20대 초반의 L씨는 로또를 구입하기 전날 밤 화장실에서 오물이 쏟아지는 꿈을 꿨다고 한다. 부산 소재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는 L씨는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2등 당첨금 1억2천여만원 가운데 1천만원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복권 당첨이라는 간절한 열망이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실제 행운을 얻은 경우도 있었다. 서울시 중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40대의 K씨는 지난 5월 꿈속에서 사업으로 인해 진 빚을 모조리 다 갚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너무나 기뻤던 K씨는 아내에게 “여보 빚 다 갚았으니 이제 그만 직장 다니고 서울에 올라와”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잠에서 깬 K씨는 이내 꿈임을 알고 다시 허탈함에 빠졌다. 하지만 그날 저녁 신문을 통해 자신이 구입한 주택복권 가운데 두 장이 각각 1등과 2등에 당첨되어 4억원의 행운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