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5월22일, 서울지법 형사7단독(손주환 판사) 법정에서였다. 당시 이 법정에서는 사기사건에 대한 심리가 열려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전이 오가고 있었다. 사기 사건의 피의자 변론을 맡고 있던 사람은 김용학 변호사. 김 변호사는 다른 재판 변론을 끝내고 오느라 20분이나 늦은 상태에서 이 법정에 들어섰다.
판사로서는 다소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 그러나 그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곧바로 시작된 증인 심문에서 김 변호사는 사기사건과 관련된 증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전체 심문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한 김 변호사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져 재판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손 판사는 김 변호사의 증인 심문에 제동을 걸었다.
▲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
손 판사와 김 변호사의 감정이 폭발한 것은 증인에 대해 검찰의 무혐의 처분 부분. 김 변호사는 검찰이 증인 A씨에 대해 무혐의 처리를 한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증인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자 손 판사는 “수사기록은 봤느냐, 거기에 (증인은) 기소중지로 돼있지 않느냐”며 힐난했다. 뿐만 아니라 손 판사는 재판도중 김 변호사에게 “(재판장에) 늦게 나왔으면서 쓸데없는 것만 질문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이런 일들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김 변호사는 재판이 끝날 즈음 손 판사를 향해 “그렇게 변호사를 몰아붙여 너무 섭섭하다. 정당한 변론권이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 변호사의 항변에 발끈한 손 판사는 그 즉시 “감치 준비하시요”라며 법정질서 유지를 위해 서 있던 정리들에게 지시했다.
결국 김 변호사는 변호인석에서 유치장에 감금됐다. 손 판사는 감치명령을 내린 이유에 대해 “변호사가 판사의 질문에 대해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궁금하면 검찰에 사실조회를 해보면 되지 않느냐’, (재판부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재판장을 얕보는 행위를 했고, 재판시간도 끌었다”고 설명했다.
감치명령이란 법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재판부의 명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거나 폭언, 소란 등으로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자에 대해 판사가 직권으로 구속시키는 제재조치다. 이 경우 24시간 내에 감치명령에 대한 재판을 열어 구속 혹은 석방 여부를 결정짓는다.
당시 감치명령을 받고 구속됐던 김 변호사는 감치명령에 대한 재판 결과 석방조치됐다. 그러나 석방된 김 변호사는 곧바로 손주환 판사를 상대로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처럼 간단하지만,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법조계 내부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등 적잖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 변호사가 고소장까지 낸 것에 대해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소장이 제출된 만큼 법정에서 이 문제가 다뤄질 것이기 때문에 소송 결과가 미칠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김아무개 변호사는 ‘판사와 변호사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된 징후’라고 말했다. 그는 “판사에게 잘보인다고 무조건 승소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동안 승소를 위해 잘보이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소송 사건은 최근 사법개혁 바람과 함께 그동안 검사-판사-변호사간에 형성돼 있던 ‘한 식구’ 개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치열해지고 있는 변호사들의 수임경쟁상황을 반영하는 실례’라고 해석한다. 사법시험 배출자가 폭증하면서 변호사수가 크게 늘어 변호사들의 생존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번 사건은 승소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관례나 관행은 파괴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라는 해석이다.
실제 지난 5월 말 성추행범을 보석 석방한 판사에 대해 변호인단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검토하기도 했었다. 당시 변호인단은 성명서를 내기도 하는 등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러한 반발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정당한 재판을 위한 소신 있는 행동’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이 ‘전례’가 되어 판사를 대하는 변호사들의 자세도 향후 상당히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또다른 변호사 최아무개씨는 “무엇이든 처음이 제일 어려운 것 아니냐. 앞으로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사건을 두고 검찰의 입장은 무척이나 곤혹스럽다. 현직 판사를 수사해야 한다는 것은 제 몸에 칼을 대는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이례적으로 부장검사에게 배당한 것도 이런 난처한 입장을 반영한 것.
특히 검찰은 상당수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흐지부지할 수도 없는 노릇. 한 변호사는 “현직 변호사의 99%는 이번 판사의 판결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것이다. 수사 과정을 엄정하게 지켜볼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 5월 말 서울지검에 고소장이 접수된 이 사건은 4개월이나 지난 9월 초 고소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 서울지검은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판사와 변호사간의 법정공방전이 될 이 사건은 법조계 안팎의 핫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한편 소송을 제기한 김 변호사는 사시 12회 출신으로 현재 60세이고, 손 판사는 사시 28회 출신으로 올해 42세. 현재 서울지법 형사7단독에 소속되어 있는 손 판사는 사시 합격 이후 판사 생활만 현재 10년째. 반면 김 변호사는 20여 년간 검사로 활약하다 90년대 초반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다. 일부에서는 사시 기수로 16회나 선배인 김 변호사를 젊은 판사가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