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서울시선대위 발족식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가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 ||
‘국민통합21’이란 당명을 확정하고 왕성하게 창당작업을 벌이고 있는 정몽준 의원과 선대위 구성을 통해 독자적인 대선행보에 나선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버티고 있지만, 이회창 후보가 가장 많은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등 다소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다. 불과 얼마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대선을 두 달 앞두고 ‘6부 능선’을 ‘5부, 4부 능선’으로 낮춰 잡게 하는 요인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7월 이후 줄기차게 제기돼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두 아들 병역비리의혹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고,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전갑길 의원이 공적자금과 관련있는 ‘기양건설’ 자금의 한나라당 유입 의혹을 새롭게 제기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대가 4억달러 제공 의혹’ ‘노벨상 로비 의혹’ 등 파죽지세로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부를 몰아세우며 잘 나가는 듯하던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가 역공을 당하게 된 꼴이 됐다.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권가도에 적색 경보를 발령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두 가지 의혹에 대해 살펴보자.
김대업씨의 폭로로 재개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 비리의혹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장남 정연씨와 관련된 수사는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3개월이 넘도록 진행중이고, 최근 김대업씨의 고소로 시작된 차남 수연씨 관련 수사는 서울지검 특수3부에 배당됐다. 수사가 특수1부와 3부로 나뉘어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검찰 관계자의 얘기.
“사안이 다르다. 일단 고소 내용이 다를 뿐더러, 공소유지에 필요한 혐의 내용도 다르다.”그렇다면 장남 정연씨와 차남 수연씨의 병역면제를 둘러싼 고소 사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위 관계자의 계속된 얘기. “정연씨 사건은 은폐대책회의에서 수사가 시작돼, 병적기록표에 나타난 의문점, 그리고 병역면제 과정 전반에 걸친 수사가 진행중이다. 이에 반해 수연씨 사건은 병역면제 과정 자체도 그렇지만, 병역면제 과정에 간여한 인사들을 상대로 은폐 시도가 있었는지 여부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
▲ 병역비리의혹을 폭로한 김대업씨. | ||
정연씨 건과 수연씨 건은 별도의 사건이라는 얘기다. 물론 정연씨에 대한 검찰수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고, 수연씨 사건의 경우 아직까지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태다.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병역면제와 관련한 사실이 일부라도 드러날 경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후보 자신이 지난 8월7일 기자회견을 통해 “만약 병역면제를 위해 불법이나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있었다면 대통령후보 사퇴는 물론 깨끗하게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공적자금 관리부실에 따른 국민부담 증가를 이유로 국정조사를 줄기차게 요구, 관철시킨 바 있다.9월3일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시작됐지만, 9월23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통과의례식 국정조사는 안하느니만 못하다”며 “어차피 다음 정권에서 좀더 세밀하게 조사하고 앞으로 이에 관한 규범과 관례를 세우는데 철저해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중단을 지시했다. 표면상 이유는 자료제출을 둘러싼 정부와의 마찰, 증인채택 문제를 둘러싼 민주당과의 마찰 등이 이유였다.
당초 공적자금조사특위는 10월3일까지 예비조사를 마치고 4~5일 해당기관 보고, 7∼9일 청문회를 실시할 예정이었다.공적자금 조사가 이회창 후보의 지시에 의해 무기한 연기된 가운데 민주당 전갑길 의원은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공적자금 부실과 관련 있는 기양건설 김병량 회장측의 한나라당 정치자금제공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전 의원은 “부천 범박동 재개발 사건 의혹에 관련된 기양건설 김병량씨가 약 4백억원의 로비자금을 조성, 지난 97년 대선 직전 이회창 대통령 후보 부부와 측근인사들에게 최소 80억원 이상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또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공적자금 국정조사 청문회를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이 후보와 부인 한인옥씨가 김병량씨와 시온학원 관계자들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수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전 의원은 이회창 후보측으로의 자금 유입 경로에 대해 “김병량 처 장순례가 한인옥씨와 친척이라는 점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 ‘기양건설 자금유입 의혹’을 폭로한 전갑길 의원 | ||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장순례씨와 한인옥씨의 친척 관계는 다음과 같다. 장순례의 백부 장남진의 부인 한상희가 한인옥의 조부 한용호와 10촌 내외 친척이라는 것.전 의원은 “97년 11월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인옥씨 지역모임에 김병량은 처와 기양건설 간부, 이청환 시온학원 이사장 등을 대동하고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장순례가 한인옥씨에게 ‘언니’라고 하는 것을 동석했던 간부들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전 의원은 “김병량씨 비자금으로 추정된다며 97년 10월19일자 30억원짜리 어음과 12월11일자 5억2천만원짜리 어음이 이 후보측에 제공된 돈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했다.전 의원은 “이청환 이사장이 기양건설 배동춘 이사에게 보낸 팩스에 ‘예금주가 박○○으로 된 국민은행 통장 계좌번호 10×-2×-10××-90×에 58억원을 보내달라’는 내용이 있다”며 “이 계좌를 추적하면 이 후보 부부와 측근 의원들에게 제공된 일체의 비자금 내역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7월 말 공적자금 회수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예금보험공사가 신한종금 파산 관재인 자격으로 서울지검에 김병량 등 기양건설 간부 4명을 포함 총 9명에 대해 사기죄로 고소했다”며 “이 사건을 조사해보면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양건설의 자금 흐름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남경필 대변인 10일 논평을 통해 “민주당 전갑길 의원의 국회 대정부질문 내용은 100% 조작된 거짓말”이라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남 대변인은 “한인옥 여사와 김 사장의 둘째 부인 장순례씨는 인척관계는커녕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고 반박했다.13일자 조윤선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은 “김병량씨가 부도난 기양건설을 대신할 새로운 법인 기양건설산업을 만든 것은 98년 6월25일이며 시행사로 선정된 것은 99년 5월24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전갑길 의원이 제시한 어음과 계좌번호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라’는 등의 별도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다만 남경필 대변인은 “전갑길 의원은 비열하게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국회밖에서 밝히라”고 촉구했다.대정부질문을 통해 제기된 기양건설 자금의 한나라당 유입 의혹은 고소장이 이미 접수된 검찰의 수사를 통해서도 그 진위 여부가 밝혀질 전망이다. 대선 전에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