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조성 및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석래 회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검에 출석했다. 구윤성 기자
이날 조석래 회장 측은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이어 법무법인 태평양을 변호인으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최상위로 꼽히는 대형 로펌이 두 곳이나 나서는 것이다. 1심 재판부터 이런 모습은 이전의 다른 재벌 총수들의 재판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그러나 이날 공판에서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은 공판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앞서 지난 2월 5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변호인단에게 주요 공소사실에 대해 조 회장의 의견과 각 증거 인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앤장 측은 추가 선임된 공동변호인과 충분히 협의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새로 선임된 태평양 측도 “사건을 수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록 검토를 채 마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회장 변호인단은 재판부에 추가 공판준비기일을 네 차례나 요청했다. 다음 기일을 약 한 달 후로 미뤄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준비기일을 줄이고 공판을 통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자”고 주장했고, 재판부도 “피고인(조석래 회장) 측 변론 계획을 보면 이 재판을 올해 안에 처리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일단 두세 차례 준비기일을 진행해보고 향후 일정을 정하자”고 밝혔다.
이러한 모습을 놓고 재계에서는 조석래 회장과 효성 측이 위기감에 급히 대형 로펌을 더 선임하는 과정에서 손발이 맞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조석래 회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같이 구속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재계에서 한 차례 돈 바 있다”면서 “뒤늦게 조 회장 측이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준비가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오히려 조 회장의 변호인단이 조 회장의 법정 출석을 최대한 늦추고, 공판 과정에서는 변수 없이 끝내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조 회장 측 변호인단은 쟁쟁한 변호인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 대형 로펌들은 초반 내부 조율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 정도 변호인들은 승소를 위해 협의가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전관 출신들인 만큼 절차상 편의를 최대한으로 받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의 법정 출석 횟수를 최대한도로 줄이고, 준비기일에서 쟁점을 충분히 정리한 다음, 공판에 들어가려는 전략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효성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의 효성 본사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어 조석래 회장은 회장직도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