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파의 각각 다른 사정만큼 홍명보 감독의 머릿속도 복잡한 상황이다. 박은숙 기자
# 죽 쑤는 해외파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이 강세를 떨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1부리그 명칭) 명문이자 친정팀인 PSV 에인트호번에서 활약하는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고, 이영표(은퇴)가 토트넘 핫스퍼에 몸담으며 맹위를 떨쳤다. 여기에 설기현(인천 유나이티드)도 레딩FC에서 뛰며 명성을 날렸고, 그 외에 많은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꾸준히 누볐다.
물론 지금도 숫자는 적다고 할 수 없다.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챔피언십(2부 리그)까지 합치면 더욱 늘어난다. 그런데 그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제 몫을 해주고 있는 건 중앙 미드필더 기성용(선덜랜드)이 사실상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의 상황은 좋지 않다. 웨일스에 연고를 둔 카디프시티에서 뛰는 측면 공격수 김보경은 들쭉날쭉한 출전을 하고 있다. 챔피언십에서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때만 해도 김보경은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으나 지금은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고, 완전한 교체 멤버로 밀렸다. 그나마도 사령탑의 호출을 받지 못한 채 벤치만 달구기 일쑤다.
챔피언십의 기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대표팀 홍명보호 부동의 오른쪽 날개로 뛰는 이청용(볼턴 원더러스)도 최근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분위기다. 거의 전 경기 출전은 하고 있으나 볼턴의 전략이 바뀌면서 입지를 잃어버렸다는 분석이다. 선발보다 주로 교체로 나서고 있다. 볼턴의 더기 프리드먼 감독은 측면보다는 중앙 한복판에서 강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을 선호한다. 하필이면 이청용이 연이어 교체로 투입됐던 최근 5경기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서 내내 투명인간에 가까운 취급을 받다가 챔피언십 왓포드로 옮겨 ‘시련 탈출’을 시도한 박주영도 여전히 벤치신세다.
사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상황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럭저럭 제 몫을 하는 선수들이 있는 반면 전력 외 취급을 받는 이들도 꽤 많다. 바이엘 레버쿠젠의 왼쪽 윙 포워드 손흥민은 여전히 팀 내 핵심 공격수다. 최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아직까진 주전의 위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마인츠05에서 코리안 콤비로 활약하는 미드필더 구자철과 왼쪽 풀백 박주호도 꾸준히 출전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코리안 라인’을 형성하는 스트라이커 지동원과 센터백 홍정호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가 출전하는 찬스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분위기 반전이 시급한데 쉽지 않은 모양새다.
왼쪽부터 박주영, 김보경, 이청용.
# 경쟁력 어떻게 키울까
홍명보 감독은 지난해 6월 말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며 “소속 팀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주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출전 기회를 잡고 적정 수준의 활약을 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 뛰는 태극전사들이 처한 상황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선수 본인의 페이스 난조가 있을 수 있고, 전술적으로 팀 내 활용가치를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들은 홍 감독이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선수를 선택하고 선발해 경기를 치르는 건 해당 감독들의 몫이다. 홍 감독도 이를 인정한다. 결국 중요한 건 체계적인 관리다.
과거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4년 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할 당시 허정무 감독(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코칭스태프와 치밀한 선수 관리를 했다. 정해성 수석코치(현 축구협회 심판위원장)와 박태하 코치 등이 중심이 돼 직간접적으로 유럽 리거들과 접촉하며 상황을 체크하고 컨디션을 일정 수준까지 유지하게끔 했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도 3월 A매치 이후에는 선수들을 소집시킬 수 없다. 2010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월드컵 본선 개막을 한 달여 앞둔 5월 초에 선수들을 다시 불러들이기까지 남은 시간은 선수들을 간접 관리해야 한다. 우리들은 매주 한 차례 이상 주말 현지 상황을 살펴서 경기에 나섰다면 몸이 어떤지, 결장했다면 왜 그랬고 팀 분위기는 어떤지, 향후 대안은 무엇인지까지 두루 확인했다. 필요하다 싶으면 직접 현지를 찾아갔다”는 게 정해성 전 수석코치의 이야기였다.
일단 지금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3월에 못 뛴 선수가 4월이 된다고 갑자기 많은 출전을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지금 기류가 대부분의 유럽 리그 정규 시즌이 종료되는 5월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명보호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 인상이다. 주로 유럽에 머물며 월드컵 본선 상대국의 동향 파악과 전력 분석을 주 업무로 삼은 네덜란드 출신의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가 틈틈이 현지로 날아가 선수들을 관리하고, 일본 국적의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가 맞춤형 컨디션 관리 프로그램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다.
월드컵 개최 시기는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국내를 포함한 아시아권과 달리 유럽 리거들의 휴식기다. 그런데 유럽 리거들의 상태도 제각각이다. 계속 뛴 선수는 휴식과 컨디션 끌어올리기를 병행해야 하고, 출전 시간이 부족했던 이들은 실전 모드로 몸을 바꿔야 한다. 각각 다른 유럽파의 복잡한 상황만큼이나 홍명보 감독의 머릿속도 복잡한 요즘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