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에도 비상이 걸렸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급등세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지만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물론 민주당은 더한 시름에 빠져 있다.
▲ 지난 24일 열린우리당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한 정동영 당의장이 귀를 만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특히 민주당 동교동계의 경우 권노갑 전 고문이 정 의장의 정치적 후견인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많은 ‘X파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동영 효과를 잠재우기 위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비책을 미리 들여다본다.
“이벤트 자체는 별 것 아니다. 설거지하고 시장통 누빈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51세라는 젊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대 강점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정동영 브랜드가 가지는 젊음의 역동성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51세에 집권 ‘여당’의 의장으로 등극한 파격이 신선함에 목이 마른 국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동영 효과는 젊음이 가지는 신선함에 있다.
정동영 효과는 차기 대권 주자가 가지는 ‘비전’에서도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불임정당’이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는 이유도 최병렬 대표가 차기 대권에 오를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차기가 없는 ‘저무는’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양 당의 수뇌가 현안에 매달려 이전투구를 벌일 때 정 의장은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정동영 효과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정동영 효과는 설 연휴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MBC가 지난 1월25일 실시한 여론조사와 KBS의 24~25일 조사에서 모두 열린우리당이 1위를 차지했다.
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깊은 한숨만 토해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효과’를 평가절하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정동영 효과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민주당으로서도 지지율 하락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조순형 대표의 전격 대구행 발표에 하락세가 다소 진정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선전으로 선거 구도가 ‘한-열’의 양당 구도로 고착되면 민주당이 설 땅이 없다는 데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런 위기 의식 속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정동영 효과 죽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먼저 민주당, 특히 구 동교동계 의원들의 경우 자신의 ‘태생’을 잊은 정동영 의장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품고 있다.
권노갑 전 고문의 ‘은혜’를 입고 정치에 입문한 정 의장이 정풍운동을 통해 동교동계에 칼을 겨눈 데다 결국 민주당을 등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구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정 의장을 견제하기 위해 그에 관한 ‘X파일’을 공개할 가능성도 흘리고 있다.
동교동계의 사정을 잘 아는 인사 A씨는 “정동영이란 사람이 어떻게 정치에 입문했는지에 대해서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많다”고 말했다.
특히 A씨는 정 의장의 정계 입문 과정에 대해 “정 의장은 자신이 앵커로 활동했던 시점인 총선 1년 전부터 권 전 고문에게 찾아와 정계 입문을 부탁했다”며 “현직 언론인이 총선을 1년이나 앞두고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 전 고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것이 새로운 정치를 내세우는 사람의 도리인지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지난 2001년 5월25일 재선의원으로서 민주당의 ‘정풍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이 운동은 당내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그런데 동교동계 핵심이었다가 열린우리당으로 발길을 옮긴 김태랑 전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에서 당시 ‘개혁파’의 행동에 대해 쓴소리를 꺼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이 책에서 “사실은 민주당의 지지도가 하락했고 한때 인기를 얻었던 소장파 의원들이 자신의 표밭도 술렁거리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희생양을 찾아나선 것이 이른바 5월의 정풍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희생양이 바로 권 고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한 “개혁파의 리더로 자임했던 정동영 의원은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부터 그 후 당내의 입지에 이르기까지 권 고문의 적극적이고 파격적인 지원을 받았다”고도 말하고 있다.
정 의장이 권 전 고문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A씨의 증언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A씨는 이에 대해 “한때 정 의장은 권 고문으로부터 한 달에 2천만원 가까운 돈을 받아 썼다. 물론 관행이었지만 정 의장이 그 돈이 불법 자금이란 것을 모를 리는 없었던 것 아닌가. 권 고문이 정책을 개발한다고 해서 마포에 사무실도 얻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관계는 권 고문의 등에 칼을 꽂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측은 “그건 말이 안된다. 정동영 의원 개인이 그런 돈 받은 적이 없다. 사실무근이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도덕적 우위를 들먹이며 차별화를 시도할 경우 정 의장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맞불을 놓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아직 정 의장의 개인 문제까지 물고늘어질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이 ‘클린 정당’을 내세우며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이를 좌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정동영 효과를 잠재울 비책을 찾고 있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다. 정동영 효과가 이벤트성에 힘입은 점이 크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 대응책을 세우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가진 젊음의 강점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도 선대위에 젊은 남녀를 요직에 배치하고 총선 이후에도 한층 젊어진 지도부를 구성해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아직 언론이 정동영 의장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 의장도 문제가 많다. 진승현 게이트 때 권노갑씨에게 2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있다. 앞으로 민주당에서 지지율 반전을 위해 정 의장의 알려지지 않은 과거 행적을 폭로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정동영 효과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최근 ‘정 의장 X파일’을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열린우리당과 정 의장측의 대응은 미미한 편이다. 정 의장의 보좌관을 오랫동안 지내다 현재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을 맡고 있는 정기남씨는 이런 민주-한나라당의 공격에 대해 “권 고문이 정 의장을 지원했다는 것은 이미 검찰에서 확인돼 기소유예로 결론이 난 상태다. 그리고 그런 공격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런 네거티브 전략을 펴면 펼수록 두 당의 지지율은 더 하락할 것이다. 차라리 양 당이 개혁경쟁에 나서는 것이 지지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두 당이 정 의장을 공격하면 할수록 오히려 정 의장만 키워주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국면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양당의 ‘공조’ 움직임을 놓고 정가에선 정동영 효과를 희석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총선을 앞두고 ‘적’과 손을 맞잡아야 할 만큼 양당에게 정 의장이 부담스러운 존재로 다가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