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조기룡)는 청와대 비서관실이 동원된 사실을 두 달 전에 파악하고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 명도 불러 조사하지 못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말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 아무개 군의 개인 정보를 조회한 서초구청 등을 압수수색하고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을 소환 조사했지만 정작 조 국장에게 정보 조회를 요청한 조오영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강제수사를 한 게 없다.
조 전 행정관은 검찰 조사에서 정보 유출 지시자로 안전행정부 소속 김 아무개 국장을 지목했지만 김 국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은 허탕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조 전 행정관의 입만 믿고 수사를 진행했다가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만 놓친 것이다. 거기에다 조 국장과 조 전 행정관에 대한 부실한 수사로 구속영장마저 법원에서 기각돼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진 상태였다.
검찰은 이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과 고용복지수석실, 민정수석실 등 여러 비서관실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지난해 6월 14일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채 군과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 씨의 정보를 조회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수사를 머뭇거리고 있다.
청와대 측은 청와대의 조직적인 불법 사찰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지난 24일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지난해 6월 하순경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처를 자칭하는 여성과 관련된 비리 첩보를 입수해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과 관련 비서관실을 통해 관련자 인적사항 등을 확인한 사실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 “특별감찰반은 고위공직자와 관련된 비위혐의 첩보 등에 대한 사실 확인 등을 거쳐 수사기관에 이첩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관련 첩보내용은 언론의 채 총장 혼외자 의혹 보도 이후 검찰로 이첩되어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개인 정보 조회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의 정당한 업무 범위 내에서 이뤄진 일로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 씨의 비리가 확인돼 검찰에 감찰 결과를 넘겼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봉규)에서 수사하고 있다. 형사6부 수사는 청와대 하달 사건 덕(?)에 임 씨의 가정부 협박 혐의부터 삼성 계열사 임원 자금 유입 등 새로운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6월 10일 국정원 정보관(IO) 송 아무개 씨는 유영환 서울 강남교육지원청 교육장에게 전화를 걸어 “채 아무개라는 아이가 K 초등학교 5학년인데 그 아이 아버지가 과학자라는데 (아버지의 이름 등 개인정보를) 알아봐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유 교육장은 송 정보관의 부탁을 받고 채 군이 다니는 학교를 통해 학생생활기록부를 조회했다.
검찰은 송 정보관이 정보 수집을 요청한 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이 유 교육장 등을 통해 채 군의 학생생활기록부를 조회하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다음날인 11일에는 서울 서초구청 오케이민원센터에서 채 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열람이 2차례 시도됐다. 조회 직후 서초구청장 응접실에서 누군가 국정원 정보관 송 씨에게 전화를 건 사실을 파악했지만 누구인지는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2시간 뒤인 오후 5시경 조 전 행정관이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에게 채 군의 개인정보를 알아봐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서초구청에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압수해 응접실에서 전화를 사용한 사람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당시 폐쇄회로텔레비전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서관실의 채동욱 전 총장 관련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지난해 9월 채 전 총장이 퇴임식에서 인사를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조선일보가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한 지난해 9월 6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채 군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출입국 기록을 조회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김 경정의 부탁을 받고 채 군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 아무개 과장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의 부탁을 받고 임 씨의 개인정보를 무단조회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불러 조사했다. 한 과장은 지난해 6월 27일 공단 내부전산망을 통해 임 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가족관계 등 개인정보를 열람했다. 검찰은 또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이 한 과장을 통해 임 씨의 산부인과 진료기록 등도 확보하려 했지만 기록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채 전 총장 뒷조사 수사가 결국 민간인 사찰 사건처럼 두고두고 족쇄가 돼 검찰을 괴롭힐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후 철저한 의혹 규명을 지시해 수사 초반 기대도 걸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민간인 사찰 수사와 같은 꼴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간첩 증거조작 사건도 증거조작이라는 국가 기관에 의한 범죄와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유 씨의 간첩 혐의 등 불법행위를 부각시키는 면이 있다”면서 “채 전 총장 뒷조사 사건도 불법사찰이라는 국가기관에 의한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사찰 피해자의 불법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면에서 두 사건이 닮아 있다”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대검 차장이 직접 대검 강력부장으로부터 보고 받게 하고 자신이 직접 수사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채 전 총장 뒷조사 사건을 지휘하는 대검 형사부장과 서울중앙지검 담당 검사들도 출입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수사과정이 언론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들 쓰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여러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이를 차단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채 전 총장 사건의 경우 개인정보 유출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의 기사가 하나 나오면 다음날은 반드시 내연녀로 지목된 임 씨와 그 주변인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 초반에는 형사3부 수사가 빠른 속도를 내다가 이후 형사6부 사건이 속도를 내자 두 사건의 템포를 의도적으로 조절해 같은 시기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방법으로 검찰이 부담을 덜고자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검찰은 형사3부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주임검사를 지난 1월 인사 이후에도 수사팀에 남겨뒀었다. 하지만 주임검사마저 지난달 대전지검 홍성지청으로 복귀한 상태다.
아울러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후 비대해진 서울중앙지검을 김진태 총장이 제대로 지휘·견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분석이다.
윤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