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 효과
전북 현대에서 맹활약 중인 이동국과 김남일. ‘고참 효과’를 중요시하는 최강희 감독이 이들을 영입했다. 사진제공=전북현대
대부분 구단들은 소속 팀을 대표하는 한 두 명의 중견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도 K리그 클래식 경기장을 누비는 수많은 선수들이 있지만 대표자 격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김병지(44·전남 드래곤즈), 최은성(43) 김남일(37) 이동국(35·이상 전북 현대), 설기현(35·인천 유나이티드), 차두리(34·FC서울) 등이다. 김병지와 최은성은 골키퍼, 김남일은 미드필더, 이동국과 설기현은 공격수, 차두리는 측면 날개 겸 수비수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그렇다. 새파랗게 어린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치열한 경쟁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실력이면 실력, 자세면 자세 모두 부족함이 없다. 근면과 성실은 기본 중의 기본. 여기에 또 다른 특징도 있다. 오랜 시간 필드를 누비는 동안 워낙 많은 경험을 해서인지,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언제 은퇴를 할지 모른다는 절박함 역시 이들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형들이 더 잘해줘야 후배들이 열심히 할 수 있다. 우린 나만을 위해 뛰는 게 아닌, 축구 선수 모두를 위해 뛴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김병지의 이야기다.
베테랑의 존재는 팀 전체에도 시너지 효과를 불어넣을 수 있다. 후배들이 갖지 못한 관록과 경험을 불어넣고 팀이 흔들릴 때 터치라인 밖 벤치가 아닌, 그라운드를 직접 누비는 고참들의 역할은 더 없이 커진다.
특히 전북 최강희 감독은 “고참은 제2의 감독”이라는 지론을 잃지 않는다. 자신이 미처 확인해줄 수 없고, 또 조치할 수 없는 세세한 부분까지 베테랑들이 필드 안에서 챙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와 같은 최 감독의 신념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오래 전부터 고참들을 중용해왔고, 실제로 많은 효과를 거뒀다. 전북이 K리그를 평정할 때마다 빠짐없이 고참들이 함께했다.
최 감독은 심지어 퇴물 취급을 받던 선수들을 성공리에 재기시켜 ‘재활공장장’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한 뒤 성남FC(당시 성남 일화)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이동국을 품에 안았고, 대전 시티즌에서 설움을 겪은 최은성도 끌어안았다. 올해 인천을 떠난 김남일까지 영입했으니 ‘고참 효과’의 진정한 신봉자라 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전북의 ‘노장 프로젝트’가 성공리에 전개 중이다.
#베테랑 중용 부정적 시선
차두리. 사진제공=FC서울
실제로 강등된 팀의 아픔이 피부로 직접 와 닿았다. 어렵사리 2부 리그 강등을 면한 뒤 환호하는 구단도 지켜봤다. 생존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각 구단들은 아무래도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선수들을 키워내고 이들의 가치를 끌어올리기까진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단기 처방’까진 아니더라도 구단들은 좀 더 검증된 선수들을 쓰려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젊은 선수를 끌어안기보다는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됐다. 심지어 외국인 선수를 수급할 때도 과거 K리그를 누볐거나 아시아권에서 뛴 자원들에 먼저 주목한다.
클래식도 그렇지만 챌린지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더욱 도드라진다. 30대 중반을 넘겼거나 이를 바라보는 많은 중견 선수들이 챌린지 구단에 대거 둥지를 틀었다. 당연히 고참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몇몇 선수들은 밀려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몸값이 싸다고 해도 검증이 전혀 되지 않은 영건들보다는 높은 건 당연하다. 프로축구가 1~2부 리그로 나뉘고 구단들이 늘어나면서 선수들의 일자리와 진로의 폭이 예전보다 풍성해졌다고는 해도 적어도 일정 수준의 경험을 갖지 못한 선수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다. 젊은 선수를 키워내지 못하는 축구는 반쪽짜리다.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하고, 오래 뛸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는 고참 못지않게 이들을 따라오는 후배들의 균형이 고루 맞아야 건강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항상 예전부터 뛰었던 선수들이 어린 선수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다보니 답답하다는 축구인들이 상당히 많다.
한 축구인은 “어느 순간부터 스포츠 전문 매체들의 보도에서 ‘뉴 페이스 발굴’ 소식을 찾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특정 선수 관련 기사가 며칠 간격으로 다시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관심 있는 젊은 선수들의 소식을 접하려면 유럽 축구를 살펴야 한다. 김신욱(26·울산 현대) 경우처럼 K리그에 젊고 좋은 선수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비중이 베테랑에만 쏠리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이 축구인의 이야기가 전부 옳은 건 아니다. 요즘 중시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측면에서 베테랑의 활약은 분명 반갑다는 이야기도 많다. 다만 균형적인 부분도 두루 고려해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