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양양 동해사의 의륜 스님이 지난 11월3일 ‘법비’가 내린 흔적을 가리키고 있다. | ||
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강원도 양양의 한 작은 사찰.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일까. 취재진이 소문의 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11월3일 현장을 찾았다. 이날도 역시 더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에 위치한 ‘동해사’(주지 도솔 스님)는 대웅전과 스님들의 거처로 쓰이는 부속 건물 한 채가 전부인 작은 사찰이었다. 특별히 주변 경관이 썩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명하신 스님이 계신 곳도 아니다. 하지만 이 사찰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른바 ‘법비(法雨)’라고 불리는 신비한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반신반의하며 찾아갔던 취재팀 역시 마른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땅바닥에 마른 창호지를 갖다대면 이내 ‘툭툭’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창호지가 흥건히 젖었다. 허공을 바라봐도 그저 맑은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만 보일 뿐이었다.
동해사의 큰 스님이자 사찰 건립을 주도했던 의륜 스님에 따르면 이 현상은 지난 92년 모시던 불상을 현재 이곳의 새로운 법당으로 옮긴 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원래 동해사가 있던 곳에 양양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이곳으로 사찰을 옮기게 됐다는 것.
처음 이 현상을 발견한 의륜 스님은 강원도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 ‘황당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당초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던 도청 관계자들도 직접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과 방문객들의 증언이 계속 전해지자 사실 확인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직접 육안으로 목격했다고 한다.
이 소문이 퍼지자 검찰 관계자들까지 현장조사를 나왔다. ‘혹세무민을 하기 위한 사기극’이 아닐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수차례 이곳을 찾아와 비가 내리는 공간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법비의 존재만 확인하고 돌아갔다. 이후 곤충학자, 천문학자, 식물학자, 지질학자, 대기오염학자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녀갔지만 아직도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한 상태다.
동해사 관계자들은 “실제 불경에는 이 같은 법비의 기록이 상당히 많다.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와 입적하실 때 그리고 법문을 설파하실 때도 그 주변에는 이런 현상들이 종종 일어나곤 했다”고 말한다.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이 태어날 때 우룡(雨龍)이 나타나 따뜻한 비를 뿌렸다’, ‘입적하실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려 시신을 모신 관이 타지를 않았다’ 등의 내용이 그것.
의륜 스님은 “불상을 옮긴 후 비가 내렸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리를 옮기기 싫어하는 부처님께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을 보고는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동안 이 사찰에서 일어나는 법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대기중의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수증기가 생기고 이 수증기가 빗물로 변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곳과 인근의 온도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그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결론이 지어졌다.
▲ 지난달 절을 찾은 사람들이 종이로 법비를 확인 하고 있다 | ||
현재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주변 나무에 있는 나방류 등 곤충들이 내뿜는 배설물이나 분비물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배설물이 무색무취일 수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SBS에서 직접 현지 촬영을 하면서 곤충의 분비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역시 의문점이 풀리지는 않고 있다.
동해사 관계자는 “만약 곤충의 분비물이라면 나무를 흔들어 벌레를 제거할 경우 비가 그쳐야 한다. 하지만 수차례 주변의 나무를 흔들어봐도 비의 양에는 별로 큰 변화가 없었다”며 방송사의 결론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이곳을 직접 방문했던 산림관리청의 관계자 역시 “우리는 1년 내내 산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현상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결국 현재로선 법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기상이변’, ‘나무수액’, ‘곤충 배설물’이라는 가설이 모두 부정되거나 그 근거가 미약하기만 하다. 법비의 성분을 분석해보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 역시 비가 내리자마자 곧 증발해버려 시료 자체를 얻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편 기상청 기후연구실의 한 관계자는 “직경 3m 이내에만 비가 떨어진다는 것은 이제까지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일이 없는 일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기상이변이라고 해도 자연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동해사에는 매년 이 법비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온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비를 구경하고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 과학적인 실체를 밝히기에는 아직 요원하지만, 어쨌든 법비는 ‘불자들의 심신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양양=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