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자금과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을 앞두거나 수감중인 의원들 대부분 출마를 통해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왼쪽부터 한화갑(민주) 서청원(한나라) 정대철(열린우리) 의원. | ||
한 전 대표에 대해 “수감될 경우 옥중출마라도 시켜서 그의 지역구인 전남 무안·신안 지역에서 당선시키자”는 당내 의견이 확산되면서 다른 구속 수감 의원들의 ‘옥중 출마’ 여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와 김영일 박명환 박주천 신경식 최돈웅 의원, 민주당 김운용 박주선 이훈평 의원, 열린우리당 송영진 이상수 정대철 의원이 수감돼 있으며 대구지검에 의해 구속 수감된 한나라당 박재욱 의원까지 합하면 총 13명 의원이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이들 중 카지노 도박 파동을 일으킨 송영진 의원과 불법 대선자금 관련 혐의로 구속된 신경식 의원은 이미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 개인 비리 등으로 인해 국내·외에서 핀치에 몰린 김운용 의원도 이번 총선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대다수 ‘구속 의원들’은 ‘옥중출마 불사’를 외치며 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물갈이와 공천심사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각 당지도부들은 ‘문제 의원’들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지만 선뜻 칼을 빼들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 의원에 대한 당내 동정 여론이 큰 데다 공천 탈락시 이들 의원이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한화갑 전 대표 사태가 정가의 핫 이슈가 되면서 이미 구속된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일 최병렬 대표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의원들을 면회하고 나서 서 전 대표 건에 대해 당 법률지원단의 판단에 따라 총공세에 나설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구속 이후 서 전 대표의 공천을 보류해 일부 당내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당 지도부가 뒤늦게 ‘서청원 구하기’의 모양새를 갖춘 셈이다. 한나라당은 서 전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편파·표적·기획 수사’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전망이다.
이에 대해 당내 일각에선 민주당이 한화갑 전 대표 건을 ‘여권의 민주당 죽이기’로 규정하고 투쟁을 벌이는 현실이 한나라당 지도부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 전 대표 지지자들이 당사에 항의방문을 했을 때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당 지도부가 갑작스레 서 전 대표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 어색해 보이지 않나”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반 최병렬’ 전선 중심에 서온 서 전 대표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최병렬 대표가 민주당의 한 전 대표 사태 처리방식을 보고 마지못해 ‘서청원 구하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수감된 서 전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시킨다면 서 전 대표는 무소속 옥중 출마도 불사할 것”이라며 “(서 전 대표가) 당선된다면 이는 최병렬 대표의 공천심사 기준의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전 대표의 ‘입지’가 다시금 강화되면서 서 전 대표와 함께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김영일 의원의 운신의 폭도 커졌다는 평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당시 자금 관리 책임자였던 서 전 대표와 김영일 전 사무총장에 대한 당내 동정 여론이 있는데도 당이 이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면서 “향후 이들이 무소속 옥중 출마를 해 당선되기라도 하면 총선 이후 대표 재선을 노리는 최 대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전망했다.
현재까지 서 전 대표나 김 의원은 옥중 출마에 대한 언급을 일절 삼가고 있는 상태. 하지만 당 지도부에선 두 의원의 ‘입’과 거취가 지닌 폭발력 때문에 이들의 ‘침묵’을 더 부담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화갑 전 대표 사태로 서 전 대표와 김 의원측의 표정이 한층 밝아진 것에 비해 같은 한나라당 소속인 박명환 박재욱 박주천 의원의 공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들 모두 ‘옥중 출마’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이들에겐 서 전 대표나 김 의원처럼 당내 우호적 여론이나 당 지도부를 압박할 카드가 거의 없다. 공천 물갈이를 천명한 당지도부로서도 대선자금과 무관한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수감된 이들을 공천에서 배제시키는 데 그다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역시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수감됐지만 민주당 박주선 이훈평 의원의 경우는 이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일단 당 지도부에서 두 의원의 ‘도덕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놓은 상태.
게다가 당내 일각에선 이들이 무소속으로라도 옥중 출마할 경우 지역구 내의 민주당 지지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1석이 아쉬운 민주당 지도부로선 전면 물갈이를 주장하는 소장파들의 성화 속에서 두 의원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김운용 의원은 개인비리 혐의를 받고 있어 총선 불출마가 당연시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9일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 | ||
박 의원측은 “당내 소장파 인사들이 구속수감된 의원들을 공천에서 철저하게 배제시키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여론에 부합해 인기나 올려보겠다는 수작”이라며 “공천에서 배제될 경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훈평 의원와 관련해서는 한화갑 전 대표가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을 때 ‘이미 구속수감된 이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관악갑을 한 전 대표에게 양보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당 지도부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집행을 ‘여권의 호남 죽이기’로 규정하면서 호남의 상징적 인물인 한 전 대표의 지역구 이전 가능성은 낮아진 상태다. 그런 까닭에 지역구 양보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의원도 옥중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편 열린우리당도 정대철 의원에 대한 처리를 놓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과 개인 비리 혐의 때문에 수감돼 있는 정 의원에 대해 당 지도부는 애초 공천 배제 방침을 굳혀놓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한화갑 전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구하기에 나서면서 ‘대표급’인 정 의원 처리와 관련해 새로 부담을 떠안게 된 상황이다.
개혁을 주창해온 소장파들은 정 의원을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당의 지도부의 한 인사는 최근 사석에서 “정 의원이 출마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몇몇 기자들과 함께 있던 그 자리에서 이 인사는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옥중 출마를 강행하는 데 법적으로 지장이 없지만 당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정 의원이) 물러서주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선거 기간 내내 침묵해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정 의원에게 가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당 지도부 내에서 정 의원에게 ‘살신성인’의 뜻을 전할 사람을 정하려다 서로 눈치만 보고 미뤘던 해프닝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 공천 여부에 관한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고민은 직·간접적으로 당사자인 정 의원에게 모두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정 의원 면회를 다녀왔다는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의원이 자신이 치러야 할 죄값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에서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에는 무척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옥중 출마를 해서라도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 의원측은 “아직 옥중 출마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며 ‘정 의원이 고민에 빠져 있음’을 시사했다. 개인적 명예회복과 소속 정파의 이익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수감된 열린우리당 이상수 의원측은 옥중 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다. 개인 비리가 아니라 당을 위해 일하다 구속된 만큼 당에서 알아서 명예회복의 기회를 배려해줄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공천에서 탈락하리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이 의원의 강한 출마 의지를 대신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선 새 정치라는 큰 흐름을 위해 이 의원 또한 결단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