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는 지주회사 (주)LG를 놔두고 LG홈쇼핑을 압수 수색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검찰은 왜 LG홈쇼핑을 압수수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일까.
LG그룹은 올 3월 그룹 계열사 가운데 주력기업인 (주)LGCI와 (주)LGEI를 통합, 지주회사인 (주)LG를 출범시켰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계열사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 개편한 것.
그러나 이 같은 지주회사 출범에는 적지 않은 자금이 소요됐다. 그룹 전체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지주회사 설립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정적인 지분 확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LG의 대주주이자 회장인 구본무 회장은(주)LG가 LG그룹의 지주회사로 탈바꿈하는 동안 어떻게 경영권과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재계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소유권에 대한 비밀의 단초가 LG홈쇼핑에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지주회사 (주)LG를 놔두고 LG홈쇼핑을 전격 압수수색한 데에는, ‘뿌리를 먼저 캔 뒤 줄기에 접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풀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94년 12월 자본금 1백50억원으로 설립된 LG홈쇼핑은 2000년 1월 코스닥에 등록하기 직전까지 96년 8월과 99년 9월 두 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당시 이 회사는 자본금을 50억원씩 늘리고, 총 2백만 주의 주식을 새로 발행했다.
이 회사는 96년에 실시한 첫 번째 유상증자에서 액면가 5천원에 주식을 발행했으나, 두 번째 유상증자에서는 액면가의 4배인 2만원에 주식을 발행했다. 이어 2000년 1월 코스닥에 등록하면서 1백25만 주를 신규 발행하고 일반 공모했다. 공모가액은 5만5천원(액면가 5천원).
그런데 코스닥 등록 직전에 LG홈쇼핑 내부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코스닥 등록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 회사의 대주주로 구본무 회장 일가족의 이름이 갑자기 등장한 것.
구 회장 등 일가족이 대주주로 올라선 것은 당초 이 회사의 주식 1백1만6천 주를 보유하고 있던 LG정보통신(주)과 62만9천여 주를 보유하고 있던 LG캐피탈(주)이 장외거래를 통해 구 회장 등에게 매각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들 2개사는 법인 자체가 다른 계열사에 흡수 합병된 상황이어서 장부상 이들 회사가 당시 얼마를 받고 구 회장 일가에 주식을 팔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장외거래를 통해 매매가 이뤄질 당시 주식값은 공모가(5만5천원)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때문에 코스닥 등록 직전 구본무 회장과 그 일가 및 측근들은 LG홈쇼핑의 코스닥 등록으로 엄청난 평가차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로 등록 직전 구본무 회장은 이 회사의 주식 31만2천5백 주(5%)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2001년부터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해 현재는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등록을 앞둔 회사의 주식을 대거 사들인 뒤 공개 뒤에 전량 매각한 것은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구본무 회장 등 구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LG홈쇼핑 주식은 2001년 하반기에 (주)LGCI(LG화학의 지배회사)측에서 대부분 매입해 이 회사의 지분 30% 이상을 확보, 최대주주가 됐다.
LG홈쇼핑 주식을 처분한 구 회장 등은 나중에 지주회사로 출범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한 (주)LGCI 등의 주식을 매입, 실질적인 지배권을 강화했다.
이 같은 거래는 올해 3월 지주회사 (주)LG 설립을 위한 준비단계로 해석된다. 지주회사로의 재편에 따른 막대한 재원을 코스닥에 등록한 LG홈쇼핑 주식을 통해 조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밖에도 LG는 (주)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주)LG석유화학 주식을 코스닥 등록 직전 헐값에 구본무 회장 등에게 매각해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며 참여연대로부터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LG홈쇼핑과 유사한 사례가 이미 있었던 것.
따라서 구본무 회장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단순히 대선자금 수십억원이 어느 정당에 흘러들어갔다는 대선자금 차원의 수사가 아니라, 대기업의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 발생한 편법, 탈법 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LG가 주식 매입 등을 통해 지배구조 변화를 꾀하는 동안 조성된 막대한 자금 가운데 상당부분이 정치권 등에 제공됐을 가능성도 검찰의 수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지주회사 관계법은 LG를 위해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지주회사 (주)LG의 출현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정치권에 자금이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검찰이 지주회사 (주)LG를 놔두고 계열사 LG홈쇼핑을 첫 타깃으로 삼은 또 다른 이유로는 LG가 제공한 대선자금 외에도 여야 정치권에 흘러 들어간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란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LG홈쇼핑은 금년도 매출 목표를 2조원대로 설정할 만큼 알짜 기업. 특히 협력업체로부터 거둬들이는 마진율이 평균 30~40%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임원들의 평균 연봉도 LG그룹 내에서는 수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매출이 조 단위가 넘어가는 LG홈쇼핑은 연간 순이익이 매년 3백억원에서 5백억원대에 머물러 업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홈쇼핑업의 특성상 PP(Program Provider)업체인 LG홈쇼핑이 SO(지역 유선 방송 사업자)에 대한 지분 참여, 대여금, 제3자를 통한 간접지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SO 사업자의 경우 지역 토착 기업들이 적지 않고, 이들 SO사업자는 해당 지역의 여야 정치인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LG홈쇼핑이 SO사업자에 대한 지분 참여 과정에 적지 않은 리베이트가 지역 SO사업자와 연결돼 있는 여야 정치인들에게 전달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LG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주주의 소유지배 외에, 이들 토착 SO 사업자들과 결탁된 여야 정치권 인사들에게까지 확대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만약 LG홈쇼핑을 시작으로 SO 사업자, 정치권 등 3각 커넥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확대될 경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 전체에 대한 ‘비리 정치인 솎아내기’ 차원의 대대적인 사정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LG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재계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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