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저우 헝다와의 ACL 조별예선에서 전북 이동국이 공중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전북은 광저우를 1 대 0으로 격파했다. 사진제공=전북 현대
# 광저우, 대체 왜?
광저우와 ACL에서 만난 K리그 클럽들은 국내 프로축구 명문 클럽인 전북 현대와 FC서울이었다. 전북과는 올해를 포함해 3년 연속으로 조별리그에서 격돌했고, 서울과는 지난 시즌 ACL 결승에서 격돌했다. 그리고는 항상 말썽이 일어났다. 특히 작년에는 ‘30년’ 시리즈가 유행했다. 광저우 지휘봉을 잡은 이는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셀로 리피 감독. 이탈리아 세리에A 등 유럽의 많은 명문 클럽들을 거치며 명성을 떨친 리피 감독이지만 한국에서는 항상 ‘지도자 경력 30년’을 운운하는 바람에 조롱거리가 됐다.
전북과 조별리그 원정을 왔을 때는 “지도자 인생 30년 만에 가장 아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AFC가 대회 규정에 따라 벌금 1000달러를 부과하자 두 배인 2000달러를 쾌척(?)하려 하면서 “벌금을 낸 나머지는 AFC 직원 회식비에 보태라”는 졸부 근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서울과 홈 앤드 어웨이 결승전을 앞뒀을 때도 역시 30년을 운운했다. 훈련장을 제공받는 문제로 설왕설래가 빚어지자 리피 감독은 “지도자 30년을 하면서 훈련장이 없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ACL 규정대로 서울은 정확히 훈련장을 제공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 30분간 호텔 로비에서 몸을 풀었다는 게 이유였다.
# 구단 매너도 ‘꽝’
전북은 3월 18일 광저우의 톈허 스포츠센터에서 광저우와 올해 첫 일전을 치렀다. 전북이 당시 1-3으로 졌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쓰린 결과였다. 전북은 1-2로 뒤진 후반 13분 수비수 정인환이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오만 출신의 주심은 오히려 골키퍼 차징 선언을 하며 득점을 무효처리했다. 명백한 오심이었다. 만약 골로 인정됐다면 분위기상 역전까지 가능할 뻔했다.
뿔이 단단히 난 전북 최강희 감독은 “이런 상황이라면 아시아에서 광저우 원정을 승리할 팀은 없다”고 일갈했다. 경기 하루 전부터 최 감독의 마음은 불편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한 기자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지금 한국 대표팀은 잘하고 있는데, 최 감독이 이끌었던 과거 대표팀은 전북 멤버 5명이 투입됐음에도 신통치 않았다”는 질문을 던진 터였다. 최 감독은 “그런 건 홍명보 감독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대답으로 대신했지만 유쾌할 수는 없었다.
프로축구연맹이 이후 대한축구협회와 공조해 오심 영상과 함께 ‘판정 유감’의 뜻이 담긴 서한을 AFC에 발송했고, “한국 측의 뜻을 이해한다”는 애매모호한 문구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 시작부터 끝까지 전쟁
4월 2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광저우의 2차 대전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신경전이 빚어졌다. 광저우의 무리한 일방통행 행정이 배경이었다. ACL에서는 홈 팀이 공식 스케줄을 주관하는 게 관례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만 원정 팀과 협의를 거쳐 일정을 최종 확정한다. 그러나 광저우는 한국을 마치 ‘속국’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한마디 조율도 없이 경기 전날(4월 1일) 자신들의 희망 스케줄을 전북에 발송했다. 오후 5시 기자회견에 이어 오후 5시 30분 공식 훈련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광저우의 마르셀로 리피 감독(왼쪽)과 마씨밀리아노 마달로니 코치. 사진제공=FC서울
전북은 어이가 없었다. 이미 전북은 광저우 원정길에서 일정 하루 전에 확정된 스케줄을 받았지만 모두 받아들였다. 홈에서도 끌려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초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다 원정을 온 상대를 배려해 오후 2시 30분을 잡아뒀다. 광저우의 안하무인식 행동이 이뤄지자 전북도 참을 수 없었다. 인도 출신의 AFC 경기감독관 승인을 받고, ‘오후 2시 30분 기자회견-오후 5시 30분 공식 훈련’을 통보했다. 광저우는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끝내 리피 감독은 불참했다.
광저우의 상식 밖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CL 규정에 따라 홈 팀은 원정 팀에 2박 3일치의 체류비용을 대야 하는데, 광저우는 전북의 호의를 뿌리쳤다. 3월 31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광저우는 아예 인근 호텔에 자비를 들여 머물다가 경기 전날에 이동했다. 전북은 전주 시내에 호텔이 부족해 인근 도시인 군산의 한 특급 호텔을 예약했는데, 광저우는 숙박 시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호텔을 구했다. 광저우는 경기 당일에도 일정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인천으로 이동했다. 리피 감독의 기자회견 불참의 이유에는 ‘피곤함’ 이외에도 전주와 군산을 오가기 귀찮다는 것도 분명 있어 보였다.
하지만 광저우와의 악연은 조별리그 이후에도 또다시 이뤄질 수 있다. ACL은 올 시즌부터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나뉘어 4강까지 치른 뒤 결승에서 만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된다. 따라서 광저우와 K리그의 충돌은 계속될 수도 있다. 당장 포항 스틸러스가 예선 순위에 따라 대회 16강에서 격돌할 수 있다. 그나마 포항은 갑자기 부자가 돼 보이는 게 없는 산둥 루넝(중국)이라는 클럽을 만나 중국 축구의 추태 시리즈를 사전 경험해 내성이 돼 있다.
국내 축구인들은 “콤플렉스가 아닌가 싶다. 중국이 A매치에서 한국에 당한 수모를 ACL에서 풀려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또 일각에서는 “축구를 좋아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영향을 받은 중국 재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프로축구팀을 운영하는데, 가난하고 별 볼일 없던 이가 한순간에 부자가 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해석한다.
분명한 사실은 광저우가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의 사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요드코르도 재벌이 구단주를 맡았을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재벌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자 다시 별 볼일 없는 팀으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