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0일 민주당을 전격 탈당, 무소속 출마를 밝혔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장남 김홍일 의원이 탈당 12일 만인 지난 1일 민주당에 컴백했다. 김 의원은 이날 복당을 선언하면서 “당으로부터 간곡한 요청이 있어 깊이 고민했다”며 “앞으로 문제는 당과 상의할 것이며 나의 능력이 미치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는 심경을 밝혔다.
▲ 지난 1일 김홍일 의원(왼쪽)이 탈당 12일 만에 민주당에 복당하자 조순형 대표가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이 다시 민주당으로 향한 걸까. ‘김홍일 컴백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정가에선 김 의원이 복당한 이유 중 하나로 민주당의 집요한 ‘러브콜’을 꼽고 있다. 민주당이 최근 호남에서마저 지지율이 떨어지자 수많은 당 인사들이 ‘DJ의 상징성’을 지닌 김 의원에게 끊임없이 복당을 종용했다는 것.
민주당의 김 의원에 대한 ‘물밑 구애작전’의 실체는 지난 1일 김 의원이 복당 선언을 하면서 일부 드러났다. 그의 복당에 추미애·김영환·윤철상 의원 등의 물밑 설득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 여기에 김 의원의 처남인 윤흥렬 전 <스포츠서울> 사장까지 가세해 ‘민주당 복당’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1일 김 의원 자택을 방문했던 추미애 의원은 “김 의원은 지난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민했다”며 “한화갑 전 대표와 민주당이 노무현 정권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어, 나라도 마지막 힘을 보태겠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설 연휴가 끝난 다음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다시 당으로 돌아와 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요청했고, 김 의원으로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간의 사정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과 가까운 정가의 한 인사도 “김 의원이 탈당한 이후 수많은 민주당 인사들이 계속 찾아가거나 전화하는 바람에 김 의원으로서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정말 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관계까지 내세운, 그런 끈질긴 요청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전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 의원의 복당의 원인을 당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찾고 있다. 아버지 DJ의 생애와 자신의 젊음이 녹아 있는 민주당은 김 의원에게 ‘모태신앙’과도 같은 존재라는 게 측근들의 얘기.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점점 가중되는 DJ와 자신의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김 의원이 탈당을 결심했지만 최근 한화갑 의원 사태와 지지율 저하 등으로 당이 존폐의 위기로까지 치닫게 되자 끝내 복당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심경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는 “당초 무소속을 결심했을 때는 당이 처한 어려움을 헤아려야 하고 또 양당(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궁극적으로 통합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이 시점에서 우선 민주당을 살리는 데 나의 조그마한 힘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보태는 게 도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의 한 측근도 “한화갑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민주당 소속인 박광태 광주시장이 구속(현대건설로부터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30일 법정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김 의원의 복당을 놓고 ‘김심’(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DJ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민주당의 와해 위기와 현 정권에 대한 배신감으로 인해 아들 김 의원의 복당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민주당에선 김 의원의 복당을 놓고 ‘김심’이 민주당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라며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DJ가 한화갑 전 대표에 대한 검찰조사를 계기로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
하지만 DJ측 김한정 비서관은 “김 의원이 탈당하고 복당한 것은 전부 김 의원 개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며 “김 전 대통령은 이번 일에 전혀 간여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김심’은 여전히 ‘정치적 중립’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복당한 배경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다. DJ정부에서 급성장한 까닭에 한나라당으로부터 ‘친(親) DJ기업’으로 불리는 중견건설업체 (주)부영에 대한 검찰의 최근 압수수색이 김 의원의 복당을 재촉했다는 것.
부영은 지난 97년까지만 해도 도급순위 77위였던 건설업체. 그런데 DJ정부 들어 주택사업 분야에서 급성장, 2001년에는 23위까지 뛰어올라 야당으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는 부영이 상당한 비자금을 조성해서 일부를 지난 대선 당시 정치권에 제공한 것으로 보고, 지난달 29일 여의도 본사에 수사관 10명을 보내 회계자료와 거래내역 등이 담긴 자료를 압수했다. 그리고 조만간 이중근 부영 회장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중근 회장은 현재 김 의원의 모친인 이희호 여사가 고문으로 있는 사회복지재단 ‘사랑의 친구들’(회장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의 후원회장을 장기간 맡고 있다. 98년 8월 설립된 ‘사랑의 친구들’은 결식아동과 실직여성가장, 외국인 노동자 등을 돕는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회장은 ‘사랑의 친구들’ 후원회장을 맡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장학금 10억여원을 지급한 공로로, 지난 2001년 2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또한 검찰은 지난 2001년 11월 이 회장이 ‘동교동 집사’였던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에게 6천만원상당의 주택채권을 건넨 단서를 포착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이씨의 ‘자금 지원’ 부탁을 받고서 1장당 5백만원인 주택채권 12장을 명동 사채시장에서 구입해서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교동’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이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정가 일각에서는 “검찰의 칼끝이 다시 구 여권을 향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왔고, 김 의원의 복당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의원의 한 측근은 이런 시각에 대해 “김 의원의 복당과 부영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 측근은 “김 의원이 탈당한 이후 목포 지역구 당직자들이 민주당에 ‘김 의원을 복당시켜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한 데다, 이번에 한화갑 의원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복당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이렇듯 김 의원의 복당 배경에 대해 구구한 추측과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김 의원은 1일 복당 선언 이외에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일에는 지역구인 전남 목포로 내려가 다시 텃밭 다지기에 나섰다.
평소 언론과의 인터뷰를 삼가는 김홍일 의원. 그는 불과 10여 일 차이로 탈당과 복당을 번복하며 호남 출신 유권자들에게 ‘총선 화두’를 던졌다. 과연 ‘김심’은 중립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