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비서관들이 잇따라 사퇴하는 데는 이호철 민정비서관(왼쪽)과 문재인 수석에게 역할이 집중된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 ||
지난해 2월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비서실 인사 개편에서 늘 ‘무풍지대’였던 민정수석실에서 뚜렷한 이유 없는 비서관들의 자진 사퇴가 줄을 이으면서 일각에선 내부 알력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양인석 사정비서관이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한 것은 지난달 말이다. ‘민경찬 펀드’ 사건이 불거진 바로 직후였다. 청와대의 간곡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2일 이후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 푹 쉬었다가 출근하라”면서 사표 수리를 하지 않은 채 양 비서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는 그러나 양 비서관의 사표 제출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언론이 확인 작업에 들어가자 마지못해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밝혔다”고 짤막하게 해명했다. 일부 언론은 양 비서관의 사표 제출을 민씨 사건 조사 과정에서의 내부 갈등 때문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소위 ‘부산파’로 불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 노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미온적인 대응 태도에 대한 불만을 사표로 대신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양 비서관은 지난해 SK 비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제 식구 감싸기’식 태도에 대해 일부 기자들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추론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물론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절대 아니다”며 강력 부인한다. 한 관계자는 “민씨 사건이 터진 직후여서 조사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면서 “애초부터 문재인 수석이 원칙대로 간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였는데 무슨 갈등이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양 비서관 본인은 기자들과 전화 접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주변 인사들은 “(양 비서관이) 사정 비서관은 직원들에게도 얼굴이 알려져선 안된다면서 청와대 비서실 직원 조회에도 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강했다”며 “검찰 수사가 대통령에게까지 칼끝이 겨눠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이 컸던 것 같다”고 전했다.
▲ 양인석 사정비서관 | ||
게다가 청와대가 민경찬씨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것은 민씨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6백53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던 지난달 29일 훨씬 이전부터 진행돼왔던 것으로 알려져 내부 갈등을 빚을 시간은 충분했던 것 같다.
관계자들 전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은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마땅한 역할이 없어 무력감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얼핏 이해하기 힘들지만 민정수석실 내 인적 구성 면면을 살펴보면 납득할 만한 요소가 발견된다. 우선 민정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청와대 내 최고 실세로 불리는 문재인 수석과 이호철 민정비서관 두 사람에게 거의 모든 역할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8월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사표를 내고 떠난 황덕남 법무비서관에 이어 양 비서관의 사표 제출은 ‘굴러온 돌’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당초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뒤늦게 ‘노캠프’에 합류한 박범계 민정2비서관이 이런저런 이유로 법무비서관으로 밀려났고, 민정2비서관으로 들어왔던 이용철 변호사 역시 4개월여 만인 지난해 말 비서실 개편에서 다시 법무비서관으로 밀려난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엔 다소 꺼림칙하다. 민정2비서관직은 아예 없어지고 민정1·2를 합쳐 이호철 비서관이 도맡게 된 것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문 수석이나 이 비서관과는 달리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이 상대적으로 일천하다.
따라서 이들의 ‘줄사퇴’가 상당수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이 ‘서울파’, ‘부산파’로 불리는 노 대통령 핵심 측근들에게 역할이 집중된 청와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떠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청와대를 떠난 한 인사는 “특정 몇몇이 정보 독점은 물론, 각종 인사 문제까지 좌우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떠난 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경계’의 메시지를 읽을 수는 있는 셈이다.
조은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