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괴자금’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에 출두하며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는 전재용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재산 은닉의 달인’으로까지 표현되는 전두환씨는 그동안 숨은 재산을 찾아내려는 검찰과 지루한 숨바꼭질을 해왔다. 지난 96년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추징금 2천2백5억원을 선고받고도 아직 1천8백82억원을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내 전씨 일가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괴자금이 검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얼마 전 전씨의 차남 재용씨의 괴자금 1백70억원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 현재 이 괴자금의 원출처와 사용처를 놓고 전씨 일가와 검찰은 공방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
그런데 전씨 일가의 ‘수상한’ 재산 보유 및 거래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선 전두환씨의 세 아들은 저마다 수십억~1백억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자금 출처에 대해선 대부분 ‘증여’를 주장하나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다음기사 전두환 일가 재산 ‘총정리’참조).
전씨 가족이 전씨의 최측근이나 친인척과 재산을 사고팔며 흔적을 감추려 한다는 ‘내부자 거래’ 의혹도 일고 있다. 최근 1백70억대 괴자금 사건을 일으킨 차남 재용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지난해 돌연 전씨의 측근 손삼수씨에게 인수됐다. 여기에 얼마 전 1백억원대 괴자금 사건이 터진 뒤 재용씨 가족이 살던 아파트를 재용씨의 막내 이모가 매입한 사실도 취재 결과 새로 확인되기도 했다.
도대체 전씨 일가의 ‘진짜’ 재산은 언제쯤 그 전모가 드러날까. 전씨 일가의 복잡한 ‘재산 거래 내역서’를 뒤쫓아가봤다.
재용씨의 괴자금 사건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10월 재용씨가 운영하던 회사 오알솔루션즈코리아는 ‘새 주인’을 맞았다. 바로 장세동 전 안기부장만큼이나 전두환씨에게 충성을 다 하는 최측근 인사인 손삼수씨였다. 육사 33기로 1979년 12·12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수행부관이었던 손씨는 5공 시절 청와대 비서관과 제1부속실장을 지냈으며, 88년 전씨가 대통령직을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 전씨를 보좌해 온 인물이다.
5공 이후 손씨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 전씨의 비자금 사건 수사 때였다. 전씨가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자신의 친인척 등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도용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전씨를 보좌해온 손씨도 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손씨 본인은 물론 형과 장모, 외가 친척 명의까지 이용해 14억원 상당의 산업금융채권을 현금화한 사실이 밝혀졌던 것.
▲ 지난해 4월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1천원이라고 밝힌 전두환씨. | ||
당시 벤츠 승용차 낙찰 배경과 용처를 묻는 기자들에게 손씨는 “5·18 단체 등에서 차를 사들여 이상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다닐 거라는 말이 돌아 사들인 것이다. 1억원이 작은 돈은 아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리”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그런 손씨가 지난해 10월 말엔 전씨의 차남 재용씨 소유였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오알솔루션즈코리아’를 인수했다. 손씨가 이 회사를 인수한 시점은 검찰이 재용씨의 ‘1백억원대 괴자금’에 대한 수사를 시작할 때였다. 이때부터 ‘전두환-전재용-손삼수’ 삼각관계가 또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재용씨가 오알솔루션즈코리아를 소유할 수 있었던 배경 못지않게 손씨가 이 회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자금의 출처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상업등기부에 따르면 손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는 선도텔레콤의 자본금은 11억3천만원이며, 손씨가 실질적인 소유주인 것으로 알려진(대표이사 명의는 98년 1월부터 선우동철로 변경) 선도어패럴의 자본금은 2억7천만원이다.
현재 손씨 소유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116-××번지 집은 지난 97년 12월부터 3억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상태다. 그런데 손씨는 평창동 집의 근저당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본금이 9억원인 오알솔루션즈코리아를 인수한 셈이다.
이 같은 전씨 일가와 손씨의 밀착 관계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전씨의 장남 재국씨 부인 정도경씨와 맏아들(16)의 거주지가 손씨 명의로 된 집 주소로 옮겨진 점도 눈에 띄는 대목. 정도경씨와 맏아들은 지난 2000년 9월29일 서울 평창동 116-××번지로 전입신고를 했는데, 이곳은 손씨가 소유자로 돼 있는 지번이다.
정도경씨와 맏아들이 평창동으로 전입하기 전의 주소지는 서울 서빙고동 241-21번지 신동아아파트 12동 3××호. 부동산 등기부에는 지난 94년부터 2003년 3월까지 재국씨가 이 아파트를 소유했던 것으로 기재돼 있다.
정도경씨가 맏아들과 함께 남편인 재국씨 명의로 된 주소지를 떠나 시아버지 측근인 손씨 소유지로 전입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같은 일련의 의문에 대한 손씨의 답변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 오알솔루션즈코리아 사무실 현판. | ||
이씨 부부가 신동아아파트를 매입할 당시는 검찰이 재용씨의 1백억원대 괴자금 수사를 시작한 직후였고, 재용씨는 지난해 7월19일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귀국을 미루고 있던 상태였다. 결국 재용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모와 이모부가 조카의 집을 산 셈이다.
그런데 재용씨 가족이 살았던 신동아아파트는 최근까지도 비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경비원은 “전재용씨 가족이 이사간 다음 아직도 안 팔렸다”고 말했지만, 기자가 ‘전재용씨 친척에게 이미 팔렸다’고 전하자 경비원은 “팔린 줄도 몰랐다. 어쨌든 지금 그 집은 텅 비어 있다. 아무도 이사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용씨의 아파트를 매입한 이모 이씨 부부는 현재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씨 부인인 최정애씨와 두 아들은 이 아파트를 판 뒤 지난해 12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7×-×번지 D빌라 4××호로 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용씨가 귀국을 미룬 채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재용씨 가족이 이사한 연희동 고급빌라는 전두환씨의 연희동 집까지 도보로 1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 빌라는 경비가 삼엄해 외부인의 출입이 그리 쉽지 않다. 빌라의 한 입주자는 “전재용씨의 부인과 아들들이 이사왔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며 “이번에 전재용씨가 검찰에 출두하는 장면이 매스컴에 나온 뒤부터 ‘전씨 가족이 이사왔다’는 말이 퍼졌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재용씨가 살고 있는 빌라는 75평 규모로 최소 7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빌라의 소유주는 재용씨가 아닌 부인 최정애씨다. 예전에 살았던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는 재용씨와 최씨가 각각 2분의 1씩 분할 소유했으나, 새로 이사간 연희동 빌라는 최씨 명의로만 등재돼 있는 것. 이와 별도로 최씨는 부친 최성대씨로부터 상속받은 서울 여의도 아파트를 지난해 6월 처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 일가의 미스터리한 재산 내역에 대해선 이미 <일요신문>에서 여러 차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2001년 4월29일자와 5월6일자 보도(제467·468호)를 통해 ‘전두환 친손자·손녀가 각각 20억대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단독 확인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의 재산이 결국 전씨의 ‘비밀금고’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전씨 친손자들의 부동산에 대한 의문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전씨의 세 아들과 가족이 보유한 도합 3백억원이 넘는 부동산 등을 둘러싸고도 매입 자금 출처에 대한 의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3남 재만씨가 1백억대 노른자위 빌딩의 소유주로 ‘등극’하는 과정은 미스터리 중 미스터리다. 이 같은 의문들이 이번 재용씨 괴자금 사건을 계기로 계좌추적권 등 광범위한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이 나서서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게 시민들의 지적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