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왼쪽) 전두환씨가 각각 안풍, 비자금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을 상황에 처했다. | ||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 검사장)는 최근 ‘안풍(安風)’사건 주범으로 기소된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이 법정에서 “1996년 15대 총선용으로 썼던 9백40억원은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돈”이라고 진술함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또한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가 관리해온 1백70억원대 괴자금이 소위 ‘전두환 비자금’과 연관성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단서를 확보하고, 곧 전두환씨 조사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조만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검찰 청사의 포토라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YS는 지난 6일 강삼재 의원의 ‘폭탄 진술’을 계기로 ‘안풍 사건’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안풍 사건’이란 대검 중수부가 지난 2000년 경부고속철 차량선정 로비의혹을 수사하다 우연히 강 의원이 관리하던 경남종금 차명계좌에 드나든 뭉칫돈을 발견해 자금흐름을 추적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검찰은 당시 “계좌추적 결과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96년 4·11총선과 95년 6·27지방자치단체 때 각각 9백40억원과 2백57억원을 안기부 예산에서 빼내 집권 여당이던 신한국당에 선거자금으로 제공한 혐의가 드러났다”며 김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또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강 의원이 4·11총선 때 안기부에서 불법 지원받은 9백40억원을 정치인 2백여 명에게 제공한 사실을 밝혀내고, 강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불법으로 사용된 안기부 예산 환수를 위해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을 상대로 9백40억원대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강 의원은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가 자신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하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강 의원은 지난 6일 이 사건 항소심 5차 공판에서 문제의 9백40억원을 청와대 집무실에서 당시 신한국당총재인 YS로부터 직접 전달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이날 공판에서 “김 전 대통령이 돈을 건네주면서 출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선거를 앞두고 받은 돈이어서 한사람이라도 더 당선되도록 하라는 뜻으로 알았다”며 “이것이 안기부 예산과 연결돼 있다는 것은 검찰 수사 뒤 언론 등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진술했다.
그의 이런 메가톤급 폭로에 따라 담당 재판부는 오는 3월12일 열릴 예정인 7차 공판 때 YS를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또 검찰은 ‘안풍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재수사에 착수했으며, 이른 시일안에 강 의원과 김기섭씨를 소환 조사한 뒤 YS 소환 일정을 잡기로 했다.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은 “재판부의 양해를 얻어서 강 의원 등의 소환 조사를 추진하겠다”면서 “그런 뒤에 김 전 대통령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라고 말해, YS 소환조사를 기정 사실화했다.
▲ 지난 6일 법원에 출석하는 강삼재 한나라당 의원. | ||
안대희 중수부장은 “법원에서 심리중인 사건에 대해서 검찰이 먼저 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하자는 게 주임 검사들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우선 제6차 공판이 열리는 27일 이전에 김기섭씨를 불러 조사한 뒤 강 의원을 소환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95년 지방선거 당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서 안기부의 불법 선거자금을 받아 쓴 혐의를 받고 있는 김덕룡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YS와 강 의원 등에 대한 조사를 당초 대검 중수2과장으로서 ‘안풍 사건’의 주임 검사였던 김용석 성남지검 차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제 이 사건과 관련한 최대 관심사는 YS가 사법처리될 것인지와 9백40억원이 전액 안기부 예산에서 나온 돈으로 최종 판가름날 것인지 등이다.
만약 강 의원의 진술대로 강 의원은 9백40억원의 출처를 몰랐다면 현재 강 의원이 받고 있는 국고손실 혐의는 고스란히 YS에게로 전가돼, YS는 사법처리와 중형 선고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안기부를 지휘하는 대통령이자 신한국당 총재였던 YS가 안기부 예산인 줄 모른 채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YS가 강 의원에게 전달한 돈 일부가 한나라당측이 주장해온 ‘대선 잔금’ 또는 ‘당선 축하금’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나 뇌물 혐의가 문제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고, 뇌물 혐의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입증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9백40억원의 출처는 ‘이변’이 없는 한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대로 안기부 자금으로 판명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의 계좌추적으로 드러난 물증이 있는 데다 김기섭씨도 일관되게 ‘안기부 돈’임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9백40억원에 안기부 자금 이외에 다른 돈이 들어와 혼재돼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강 의원과 김기섭씨가 당시 자금 수수 시점에 여러 차례 만나고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해, 강 의원이 사전에 9백40억원 출처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법원의 한 관계자는 “YS의 차남 김현철씨가 관리했던 ‘통치자금’이 일부 안기부 계좌에서 돈세탁됐다는 사실이 1심 재판에서도 밝혀졌듯이 YS의 통치자금과 일부 안기부 예산이 섞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건의 열쇠를 쥔 YS는 자신이 애지중지해온 강 의원의 폭로 이후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YS가 결국 법원이나 검찰에 나오더라도 묵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정치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공언해온 YS로서는 9백40억원의 성격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에서다.
YS 집권 시절인 95년 12월 12·12 군사반란 및 2천1백95억원대의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8년만에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 지난 5일 대검에 출두하는 전재용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난 1일 미국에서 극비리에 귀국한 재용씨는 지난 5∼6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2000년 말 외할아버지(이규동씨)로부터 1백70억원어치의 채권을 받아 2001년 8월 차명계좌에 1백30억원을 넣고, 2002년 6월에 나머지 40억을 넣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검찰은 재용씨가 이 자금으로 기업어음과 서울 이태원 소재 빌라 세 채(시가 30억원), 외국인 상대 임대주택(시가 6억원) 등을 자신이 투자 목적으로 설립한 J사 등 명의로 매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재용씨는 또 미국에 있는 O사에 60만달러, P사에 40만달러 등 모두 1백만달러(한화 12억여원)를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밖에 재용씨가 각별한 관계에 있던 탤런트 박상아와 박씨의 어머니 계좌에 수억원을 입금한 단서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10일 재용씨를 다시 소환조사한 뒤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며, 앞으로 돈의 출처에 대해 보강조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수사팀 관계자는 “재용씨가 1백70억원대의 돈을 직접 벌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검찰과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바”라며 “돈의 출처를 입증하는 책임은 검찰에 있고, 지금 그런 수사를 하고 있다”고 강조해 출처 수사에 상당한 진전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팀이 재용씨 이외에 전두환씨 동생 경환씨가 관리해온 괴자금도 추적중’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찌라시(정보지)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적이 있으나,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재용씨는 이규동씨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곧 자금 출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팀은 이미 문제의 돈이 전두환씨한테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단서와 정황 등을 찾아내고, 전두환씨 본인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1백70억원이 전씨가 관리해온 비자금 중 일부로 확인되면 재용씨는 물론 전씨도 사법처리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전씨는지난해 4월 법원에서 “내 재산은 29만원이 전부”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행법은 재산명시 과정에서 허위기재 및 진술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재용씨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씨가 은닉한 나머지 비자금의 행방이 드러날 공산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래저래 두 전직 대통령은 검찰청사 문턱을 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