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검 청사 | ||
정가에선 대북 4억달러 지원설이나 김대업씨 테이프 조작 의혹 정황 등 굵직한 사안들이 한나라당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것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보기관에서 한나라당측에 정보를 흘려주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정가를 출입하는 정보기관 연락관들의 보고서 내용 중에 한나라당 관련 내용보다 민주당 관련 내용이 더 많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정치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기관의 모습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고 표현한다. 이 관계자는 “정보 수집이 본연의 임무이긴 하지만 사실상 야당측 정보가 여권에 흘러 들어가는 데 일조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우리측에서 올린 민주당 관련 보고사항이 조금 지나서 한나라당측에 입수된 사례가 종종 눈에 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보기관 소속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담당하는 정보 담당 직원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양당 관련 정보가 위에 보고되는 것일 뿐”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최근 한나라당에서 터져 나오는 의혹제기 수준을 보면 단순히 야당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차원으로만 해석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고 밝혔다. 군 내부 역시 연말 대선에 대한 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국방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정국이 김대업씨 논란으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병역주무부서인 군 내부에선 김대업씨 발언 논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며 “연말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승리할 것인가와 그에 따른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더 신경을 쏟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서 터져 나온 한 장성의 ‘군기누설’도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국군 5679부대장 한철용 육군소장이 서해교전 이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국방장관에게 보고했으나 묵살당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전역을 앞두고 있던 한 소장은 지난 5일 국방부로부터 보직 해임을 당했다.
▲ 이회창 후보 | ||
국정감사장에서 군기밀인 블랙북(대북첩보 1급 보고서)을 내보이는 등 물의를 빚어 더 이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한 정치권 인사는 “DJ 정권 임기말 여권에 치명타를 주는 진술이 현역 장성으로부터 나온 것은 눈여겨 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한 소장에게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군 내부의 동요 분위기를 대변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공군사관학교에 재직중인 한 장교는 “극단적 줄서기로 볼 수는 없지만 군 내부에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시각이 많은 건 사실”이라 밝혔다. 이 장교는 “김대업씨 관련 병역비리 논란 속에서도 이에 연루된 군측 인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며 “(병풍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들 군 인사들이 검찰 조사에서 아무런 진술도 안하는 것이 결국 어느 정파에 유리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검찰이 기를 쓰고 수사했지만 결국 한나라당에 불리한 결정적 진술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편 검찰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을 향한 칼날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병풍 수사의 유일한 증거물인 김대업씨 테이프에 대한 신빙성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테이프 조작에 참여했다는 사람이 한나라당측에 제보를 해오기도 했다. 검찰은 녹음테이프의 성문분석 등 감정 결과를 넘겨받아 이달 중순쯤 최종 결과를 공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수사종결이 임박한 시점에서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런 평을 하고 있다. “테이프 성문분석 결과가 중요하다. 만약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테이프를 조작해서까지 이회창 후보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김대업씨에게 없는 이상 의혹의 시선은 병풍 배후에 위치한 몸통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검찰 수뇌부에서 정치권에 나도는 검찰 인사들 관련 첩보 수집을 강화시켰다고 전한다. 여기에는 현재 병풍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 관련 첩보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한다. 검찰 내부의 정보보고서에도 김대업씨와 여권 인사들간의 연루 의혹에 관한 첩보들이 상당량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병풍 논란의 핵심인물인 이 후보 부인 한인옥씨와 아들 정연, 수연씨를 검찰이 조사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김대업씨 논란의 신빙성이 약해지자 검찰과 민주당이 병풍공작을 김대업씨 일인 사기극처럼 몰고 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힐 정도다.
가장 방대한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경찰 내부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얼마 전 대통령 후보 경호요원 공모에 현직 경찰 1천여 명이 응모했는데 이들 중 수백 명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경호를 맡겠다고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측에선 “그렇게 많은 숫자는 필요없다”며 경찰측에 적정한 인력 배분을 요청한 상태. 그러나 행자위 소속 의원실의 한관계자는 “DJ정권이 출범하면서 97년 대선 당시 DJ 경호를 맡았던 경찰관들이 거의 대부분 1계급 특진을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라며 최근 경찰 조직 내부의 정치적 성향을 간접 시사했다.
이에 대해 경찰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후보 경호 업무가 다른 업무에 비해 편한 쪽에 속한다”며 “일선경찰서 직원들보다는 기동대 소속 직원들이 대선후보 경호 신청을 많이 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DJ를 경호했던 직원들이 DJ 정권 출범 이후 모두 특진했다는 이야기는 와전된 것”이라 일축했다. 남파간첩을 잡는 공을 세운다 해도 1계급 특진을 하는 데 최소한 2년은 걸리게 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경찰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이번처럼 여권 후보가 야당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많이 뒤처지는 경우는 없었던 터라 조직 내부의 혼란이 있는 건 사실”이라 밝혔다.
예를 들어 김대업씨 관련 첩보의 경우 이회창 후보 직계가족과의 연루사실 못지 않게 김대업씨의 과거행적이나 테이프조작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이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총경급 이상의 경우 특진을 하는 데 일정시간이 걸린다는 식의 규정은 따로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