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이동재씨는 조양은 김태촌과 더불어 국내에 조폭계의 삼국시대를 이끈 인물로, 지난 88년 9월 양은이파에 의해 온몸이 난자당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조씨와 김씨는 구속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반면, 이씨는 미국의 남서부에서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미국에서 잠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이씨가 얼마 전 서울에서 호남의 한 주먹 선배와 회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에서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국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특히 조씨도 그의 국내 체류를 알고 있었다. 최근 사회보호법 폐지 움직임으로 김씨의 석방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과거의 3대 보스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동재씨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광주OB파로 지역을 장악한 뒤 조직을 이끌고 상경, 일약 전국구 주먹으로 올라선 인물이다. 그는 당시 같은 또래의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 ‘서방파’ 두목 김태촌과 더불어 치열한 3파전을 벌였다. 이들 3대 패밀리가 벌인 80년대 중후반의 이른바 ‘3년 전쟁’은 당시 조폭 전성시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서울올림픽 무드가 한창이던 지난 88년 9월 양은이파 조직원에 의해 서울 행당동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무참하게 린치를 당했다. 다리를 집중적으로 찔린 그는 ‘불구가 됐다, 식물인간이 됐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돌연 이듬해 미국으로 출국, 사실상 주먹세계에서 은퇴했다.
미국에서의 잠행으로 완전히 주먹세계와 인연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던 이씨의 국내 체류 소식은 호남 주먹계의 대부로 통하는 L씨를 통해 확인됐다. 조폭 족보에서는 그를 OB파의 고문으로 올려놓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L씨와 이씨의 최근 관계는 소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L씨는 “(이)동재가 얼마 전에 친구 ○○○와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고 하는데, 역시 나한테는 연락도 안한다. 어릴 때 내 집에서 속옷까지 빨아줄 정도로 각별히 내가 챙겼는데…”라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씨의 행적에 대해 탐문한 결과 그는 최근 몇 차례 한국을 드나든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 주먹 출신의 한 사업가는 “동재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자주 한국을 다녀간다는 얘기는 들었다”며 “연로한 부모도 서울에 있는데, 외아들인 동재가 부모를 아예 모른척할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는 “(동재가) 미국에 건너간 이후 슈퍼마켓 등의 사업을 했는데 별로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의 부모님이 집 팔아서 미국에 보태주기도 한 것으로 들었는데 사업이 어려워서 국내로 다시 돌아올 것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밝혔다.
기자는 이씨와 접촉하기 위해 여러 쪽을 수소문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이씨를 아는 한 인사는 “최근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며 “이씨는 한국에 있을 때도 친했던 선후배들만 만날 뿐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동재씨는 광주에서 상경할 때에도 조직의 선배에게 린치를 가하는 등 하극상을 저질렀다. 김태촌은 선배를 어느 정도 적당히 대접하는 스타일이고, 조양은은 선배를 별로 의식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 이동재씨는 걸리적거리면 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김태촌 주변에는 여전히 선배가 많은데 비해 조양은과 이동재는 없다”고 평했다.
이동재씨를 잘 아는 또다른 인사는 “이 바닥에서 조직을 식구라고 부른다. 반드시 주먹세계가 아니더라도 한때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옛 후배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하물며 조직 출신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이동재나 조양은, 김태촌 등은 모두 나이 쉰살을 훌쩍 넘겼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조직도 없고 돈도 별로 없다. 또 예전의 그런 완력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다. 그들을 목숨처럼 따르던 조직원들도 다들 40대 이상으로 자기 살 길 찾기에 바쁘다. 3대 패밀리의 부활이니 하는 것은 공연한 추측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과거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조양은씨와의 만남설도 나돌았다. 기자가 직접 조씨에게 이를 확인했으나 그는 “난 이동재라는 사람을 못 본 지가 25년이 됐다”며 부인했다. 그는 “그가 얼마 전 한국에 다녀갔다는 얘기는 들었다. 또 자주 한국을 오간다고는 하더라. 하지만 그 사람이 날 만날 이유가 없다. 나 또한 그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씨와 김씨가 잦은 수감생활과 출소 등으로 끊임없이 화제를 일으킨데 비해 이씨는 해외로 도피한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얼굴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언론과의 접촉도 일절 없었고, 심지어는 경찰 내에서도 이제 그의 이름과 얼굴이 서서히 잊혀질 정도.
그런 이씨가 외부에 그나마 목소리를 낸 것은 조폭 관련 소설을 준비하던 한 작가와의 전화통화가 유일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경 조폭 전문 소설 작가 이기호씨가 어렵사리 수소문 끝에 미국에 있는 이씨와 한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는 것. 당시 약 3분 간에 걸친 짧은 통화에서 이씨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한국은 때가 되면 돌아가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과거에 대해 “이제는 모두 잊은 얘기들이다. 동생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일 것이다. 한때 추억이지만 지금은 서로가 살아가기도 바쁘다. 한국에서나 여기나 사는 것은 똑같다. 한국에서도 나는 결코 편하지 않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고 전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