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시절 DJ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최측근 인사들을 꼽으라면 응당 ‘청와대 3인방’을 들 수 있다.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박지원 전 비서실장,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전 외교안보통일특보, 그리고 박선숙 전 대변인이다. 이들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여권의 ‘접근’이 집요해 보인다.
▲ 여권 내부에서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한 특별사면이 논의되고 있다. |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최근 임 전 원장을 만나 오찬을 함께 했다.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임 전 원장에게 17대 총선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제안했다.
임 전 원장의 구체적인 수락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당은 “임 전 원장이 결국은 여권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주도했던 임동원 전 원장에게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직을 제의할 것이라는 말이 여권 내부로부터 흘러나온 것도 이달 초다. 이는 즉각 노 대통령과 DJ와의 화해 여부와 관련해 이목을 끌었음은 물론이다.
임 전 원장이 햇볕정책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의 평통 수석부의장 기용이 실현될 경우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빚어졌던 DJ측과 노 대통령측과의 불화를 매듭짓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노 대통령이 대북정책과 관련해 보여준 일련의 인사는 노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를 보여준다. 지난해 2월 정부 출범 때 DJ정부 당시 대북라인이었던 정세현 통일부 장관, 김보현 국가정보원 3차장을 유임시켰고,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발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 전 원장에게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직을 맡긴다면 이는 햇볕정책의 완전한 부활이라고 봐도 좋을 대목이다.
임 전 원장 역시 대북송금 문제에도 불구,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참여정부가 출범 때는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와서는 다시 분명하게 공개적으로 6·15공동선언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난 1년을 볼 때 참여정부는 햇볕정책의 계승 발전이라는 태도를 유지해 왔고, 6·15공동선언을 지켜나가는 입장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임 전 원장의 태도 변화가 엿보이는 발언이다.
[박지원]
노무현 대통령이 오는 5월26일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해 대북송금사건 관련자 6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하는 것도 최근 일련의 변화 기류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사면 관련 아이디어가 여권 내에서 먼저 나왔다는 것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사면 논의가 시작되면서 관련자들이 대법원에 신청한 상고를 취하할 수도 있다는 말도 들렸다.
문제는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에서는 일단 대상에서 제외했다. 박 전 장관의 경우 개인비리 혐의로 재판중인 사안이 있어 사면 요청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게 민정쪽의 논리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박 전 장관이 포함되지 않으면 사면의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른 관련자들도 “왜 박지원을 빼냐”며 동일티켓으로 다뤄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3월 대북송금 관련 최종심 이전에 박 전 장관의 1백50억원 수수건이 무죄로 판결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설혹 그 부분에서 유죄 판결이 난다 해도 대북송금건만 분리해 사면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는 적극 특사론을 폈다.
수도권의 다른 초선 의원도 “사면 자체가 어차피 정치행위인데, 대북송금 사건의 상징적인 인물인 박 전 장관이 빠진다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최종적인 판단에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박선숙]
박선숙 전 수석은 말 그대로 DJ의 복심(腹心)이다. 그의 여권행은 DJ의 노무현 정부 지지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박 전 수석의 참여정부 ‘참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이유다. 열린우리당 등 여권 내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박선숙 전 수석이 환경부 차관 자리를 제안받은 건 사실로 확인됐다.
박 전 수석을 환경부 차관으로 적극 추천한 사람은 김명자, 한명숙 전 환경부 장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결호 환경부 장관도 긍정적인 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에서도 박 전 수석의 환경부 차관직에 대해 반기는 태도다. 다른 한 관계자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좋은 안”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전 수석 본인은 말을 아끼고 있다. 박 전 수석이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재의 정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자신의 정치적 뿌리였던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상호 대립하는 현실 속에서 정치권에 몸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특히 자신의 거취가 그대로 DJ의 의중으로 연결될지도 모르는 정치상황에서 일거수일투족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실제로 지난 연말부터 올 1월까지 박 전 수석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상위순번의 비례대표 후보로 끊임 없이 구애를 받았지만 거절해 왔다. 박 전 수석은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동교동으로 DJ를 찾는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