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관계자가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백혈병 문제 사과를 이끌어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행보를 두고 한 말이다. 심 의원은 지난 4월 2일 반올림 측과 함께 만든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직업병 피해자 및 유족의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발표했다. 4월 9일 국회 기자회견 후 심 의원 측은 삼성전자에 기자회견문에 담긴 제안서를 전달했다. 이틀 뒤 삼성전자 측은 “이른 시일 내에 공식입장을 발표하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7년간 백혈병 피해자들이 삼성 측에 요구했던 사안들이 지지부진했지만 심 의원의 손에 들어간 지 2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심상정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 측도 상대방이 의견을 번복했다며 뒤돌아섰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회사 측에서는 심 의원이 피해자들과 만날 수 있는 중재기구를 마련해준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것인데 갑자기 반올림 측이 나서서 협상 당사자로 넣어달라고 하니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 됐다”며 의아해했다. 당시만 해도 다시 문제가 꼬이는 듯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심상정 의원이 세력이 약해진 정의당을 이끌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심 의원은 지난해 여름 남양유업 사태 방지법을 발의했다가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함께 준비하고 있던 이종걸 의원의 법안과 비슷해 항의를 받고 철회한 바 있다. 이후 심 의원은 해당 법을 다른 내용으로 보완해 발의했다.
앞서의 정치 관계자는 “심 의원의 경우 큰 인물이다. 그런데 요즘에 눈에 띄는 실적이 없다. 정의당도 워낙 인력도 부족하고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태로 어려워져 본인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삼성 측과 빨리 협상을 보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이전 남양유업 관련법 때도 그렇고 심 의원이 실적 올리기에 조급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석했다.
실제 정의당의 경우 통진당 사태 이후 종북 논란의 타격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안철수 대표가 이끈 새정치연합이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몸집을 불린 후 더욱 여건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의당은 당색을 바꾸며 쇄신을 모색했지만 여론의 관심이 제1야당의 통합에 집중되고 인력 부족으로 후보를 제대로 배출해내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진보 인사들 사이에서는 정의당이 다소 ‘우클릭’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당의 한 관계자는 “심상정 천호선 의원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뒷받침해줄 인력이 부족하다. 이번 지방선거도 나설 만한 후보가 없어 어려울 것 같다”며 “야당이 합당으로 제 역할을 못하니 우리가 민주당이 했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왔지만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쉽게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 끼어들 시기를 놓쳤다”고 토로했다.
특히 심상정 의원은 삼성 등 대기업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진보의 아이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 백혈병 문제 해결이 심 의원의 정치적 존재감을 되살려줄 가능성이 크다. 물 건너간 듯했던 백혈병 문제에 대해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1시간 뒤 심 의원은 성명을 통해 “삼성전자가 사과와 함께 해결 의지를 밝힌 만큼 피해자 가족 및 반올림과 성실히 협의해 조속한 시일 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란다”며 “저는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또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성심껏 돕겠다”고 밝혔다.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이 지난 3월 5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7주기를 맞아 플래시몹을 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이날 오후 반올림 측도 조심스럽게 삼성 측 사과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심 의원 측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지난 15일 반올림 관계자는 “심 의원이 논의하지 않고 만든 제3중재기구 부분은 아직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심 의원뿐 아니라 결의안에 찬성하며 우리 측에 관심을 보인 의원들이 많다. 아무리 정치권력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분들과 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심 의원을 배제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박영선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심 의원과 ‘강한 여성’ 의원 이미지가 겹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건파인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끌어온 새정치민주연합을 을지로위원회와 더좋은 미래 소속 의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며 ‘강한 야당’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원내대표의 강한 야당 이미지에 맞게 새정치연합 측에서도 삼성 백혈병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는 눈치다. 한 당직자는 “을지로위원회는 그동안 4대강에서 문제가 된 삼성물산을 비롯해 삼성 측에 전반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며 “이번 백혈병 문제도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 나설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문제가 지속되고 피해자들이 원한다면 도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전했다.
심상정 의원실 관계자는 “반올림에서는 피해자와 반올림, 삼성 측이 직접교섭을 하고 그 과정에서 중재기구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삼성 측이 교섭방법에 대해서도 가족과 반올림, 심상정 의원이 협의 방안을 준비하라고 했다. 조만간 모여서 적절한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