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아무개씨(63)가 낸 위장이혼에 대한 무효소송에 대해 지난 30일 서울가정법원(홍중표 가사4부장)은 “이혼에 다른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이혼신고를 무효로 할 수 없다”며 “아내가 자녀 양육권을 갖되 재산분할로 남편에게 4억4천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권씨의 아내 송아무개씨(51)는 위장이혼도 아니고 재산은 이혼 전에 남편 권씨와 상의해서 나눠가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연 권씨 부부는 위장 이혼한 것인가, 협의 이혼한 것인가.
권씨측에 따르면 권씨 부부는 지난 98년 초등학교를 다니던 두 자녀를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냈다. 경찰로 일하던 권씨는 2000년 정년퇴임했고 무직자가 된 권씨는 미국 취업이민이 곤란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이 영주권을 얻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어렵게 되자 권씨 부부는 위장이혼이라는 묘안을 짜냈다고 한다. 즉, 부부가 위장 이혼한 뒤 아내 송씨가 영주권자와 위장 결혼해 영주권을 취득하면 다시 권씨와 송씨가 재결합하자는 것.
이렇게 해서 권씨 부부가 2002년 8월 서류상 이혼한 뒤 권씨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송씨는 미국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
권씨 주장에 따르면 이혼한 권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문제가 생겼다. 그가 미국으로 연락을 해도 어쩐 일인지 송씨가 전화도 받지 않았고 송씨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살던 집을 팔아 다른 곳으로 이사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는 것. 권씨는 아내 송씨가 돌아올 날만 기다리며 송씨의 새집에서 기다렸다. 한 달 뒤인 2002년 9월 귀국한 송씨는 “이제 남남이니 접근하지 말라”며 권씨를 피했다고 한다. 이에 결국 권씨는 법원에 “위장이혼이었으니 이혼은 무효”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송씨측의 주장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송씨측에 따르면 권씨와 결혼했던 지난 87년부터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전처와 사별하고 어린 남매들을 어렵게 키우고 있던 권씨와 한 번의 결혼생활에 실패한 송씨는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송씨측에 따르면 가정불화의 발단은 권씨의 거짓말과 경제적인 문제로 비롯됐다.
권씨는 자신이 대학을 나오고 전처와 사별하고 3남매를 키우고 있다고 송씨를 속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권씨는 고등학교만 졸업했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큰 딸까지 5남매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
그래도 송씨는 권씨를 믿고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씨의 전처 자식들은 송씨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았고 관계도 소원했다. 특히 권씨의 큰 딸(35)은 송씨가 권씨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자 “누구 맘대로 임신을 하느냐”며 송씨의 존재를 더욱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송씨측에 따르면 아이들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문제도 이들의 가정불화를 더욱 부추겼다. 남편 권씨는 경찰 공무원으로서 교사인 송씨의 월급보다 적었다. 결혼 후 송씨가 낳은 두 자녀까지 합해 7남매를 키우기에는 태부족이었다.
그래도 알뜰한 송씨가 재테크도 하고 저축도 해서 권씨의 전처 소생 5명 모두 대학을 보냈고 특히 2명은 의대를 보내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한다.
송씨측은 “전처 소생도 자기 자식처럼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는데 송씨가 낳은 아이들은 후처 소생이라고 무시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권씨의 ‘영주권을 목적으로 한 위장이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송씨측은 “송씨의 친정식구들은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송씨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취업했고 취업이민비자도 곧 나올 예정이다”며 이혼과 영주권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럼 왜 권씨 부부는 이혼했을까. 송씨측에 따르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소원해진 권씨와 송씨 사이를 이혼으로까지 몰고 간 것은 권씨의 막내 아들(28) 혼사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권씨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이혼한 뒤 후처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처가 식구들이 아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것. 권씨의 아들은 송씨에게 처가 식구들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요구했고 결국 이 문제로 권씨와 2002년 8월 이혼한 것이라고 송씨는 주장했다.
그렇다면 왜 권씨는 이제 와서 이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걸까.
송씨측은 재산문제로 권씨가 이혼무효소송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송씨측은 “부부가 함께 살던 아파트를 2000년에 송씨의 명의로 이전했다. 송씨는 이것을 결혼생활 15년 동안 고생하며 가족들을 뒷바라지 한 대가라 생각한다”며 “권씨 또한 송씨가 낳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앞으로의 양육비를 위해서 송씨에게 증여한 것이다. 이때 권씨가 증여세까지 납부했고 명의이전도 권씨가 직접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권씨 부부가 이혼한 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권씨 자녀들의 반응. 송씨쪽에선 ‘권씨의 전처 자녀들이 시가 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되찾기 위해 권씨를 종용해 이혼무효소송을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권씨측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다.
현재 송씨는 ‘이혼은 인정하나 재산을 분할해 권씨에게 4억4천만원을 주라’는 법원의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법원이 송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지, 권씨의 주장에 귀를 더 기울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