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당장 지난해 청와대 회의 도중 국무위원이나 비서관들과 ‘맞담배’를 피우곤 한다는 사실이 공개돼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던 노 대통령의 담배 피우는 모습은 어쩌면 더 이상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지난 2002년 8·8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1년여 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집어들었던 노 대통령이 새해 들어 금연을 다시 시도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담배를 끊으려고 시도했으나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어느 정도 국정이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는 자신감과 함께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나”라고 해석했다.
물론 아직은 노 대통령이 완전히 금연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금연하신 지 10주 정도 됐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며 금연 사실 자체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언제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될지 몰라 자칫 다른 많은 흡연자처럼 ‘허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이 20대 초반부터 줄곧 피워오던 담배를 끊은 건 지난 2001년 추석 때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금연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때 귀밑에 금연 패치까지 붙이고 다닌 적도 있었다.
1년 정도 금연에 성공했던 노 대통령은 결국 대선을 앞둔 2002년 8월 부산시장 선거 분위기가 좋지 않게 돌아가자 부산 롯데호텔에서 지역기자들과 점심을 같이 먹다가 불쑥 기자에게 “담배 한 대 달라”고 했다.
이후 노 대통령은 피말리는 대선 기간 내내 담배를 계속 피워야 했고 청와대에 들어온 뒤 지난해에도 줄곧 측근과 친인척들의 문제가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담배를 끊지 못했다. 수석 보좌관 회의 도중에는 골초로 알려진 유인태 정무수석에게 담배를 청하기도 하고 불쑥 비서관들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금연에는 권양숙 여사의 ‘강요’가 큰 몫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 여사가 특히 담배 냄새를 싫어할 뿐 아니라 남편의 건강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한때 청와대 밖에선 “권 여사도 흡연을 한다”는 악의적 루머가 나돌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권 여사가 담배 냄새 자체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싫어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에서 제공되는 호텔식 고급 음식에도 노 대통령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듯하다. ‘시골스런’ 노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 입성 직후엔 호텔 요리사들이 만들어주는 한식 중식 일식 등 고급 요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끔씩 음식 투정을 하곤 했다는 것.
특히 자신이 즐겨 먹던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두부전골 등을 따로 주문해보기도 했지만 자신이 먹던 맛이 아니어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가끔씩 권 여사가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요즘엔 거의 그런 일이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워낙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드시는 편이어서 요즘엔 음식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서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의도 민주당사 지하에 있던 복집에서 복 요리를 주문배달해 먹기도 했다고 한다.
▲ 지난 1월11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북한산 등반을 했다. 주말이면 운동 삼아 종종 등산을 한다고. | ||
지난해 초엔 직원 식당에 불쑥 찾아가 줄을 서서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던 도중 배식대 바닥에 떨어진 콩나물을 주워먹으며 주방 직원들과 대화를 나눠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적도 있었다.
즐겨 읽는 책의 분야도 많이 바뀌었다. 집권 초 노 대통령은 주로 경제와 중국이 관심사였다. 야심 찬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는 <한국경제 생존 프로젝트-경제특구>와 <뉴 차이나 리더 후진타오> 등의 서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엔 정부 혁신과 관련된 서적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읽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부인 권양숙 여사는 최근 자원 봉사 활동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면서 <세계의 자원봉사 활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고.
운동 종류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 입성 당시 사저에서 즐겨했던 운동기구인 자전거를 들고 들어갔다. 그러나 허리 디스크 때문에 주치의의 권유로 평일에는 자전거 대신 경내 녹지원 주변 산책이나 조깅으로 운동 종목을 바꿨다.
권 여사는 청와대 내에 있는 수영장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지난해 주말이면 종종 골프장을 찾았던 노 대통령 내외는 지난해 말부터 노 대통령의 허리 근육 강화를 위해 등산으로 주말 운동도 바꿨다.
이 같은 노 대통령 내외의 변화와 별개로 최근 대학 총장 출신 김우식 비서실장에게 노 대통령이 인사권까지 쥐어주면서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어 비서실 직원들의 근무 기강도 정치인 출신의 문희상 전 실장 때에 비해 사뭇 달라졌다.
터프한 전라도 사투리를 아무 때나 구사해 유인태 전 정무수석 못지않은 ‘엽기’ 수석으로 불리는 정찬용 인사수석은 “문 전 실장이 있을 때는 회의에 늦게 도착해도 ‘조금 늦었습니다’라고 하면 그냥 넘어갔는데 요즘은 회의에 늦을 수가 없다”며 변화된 비서실의 분위기를 전했다.
비서관, 행정관들도 전에는 점심 때 간혹 폭탄주 한두 잔쯤 먹고 오후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으나 요즘은 이 같은 장면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지난해 8월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 후임으로 서울시 감사관리관 출신의 노 대통령의 오랜 친구 정상문 비서관이 들어선 이후 이 같은 흐트러진 근무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점심 때도 오후 1시 이후엔 출입 카드 판독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었다. 오후 1시까지 점심을 마치고 복귀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때문에 한동안 청와대 주변 식당에선 점심 때만 되면 식사를 하던 도중 일부 비서관 이하 직원들이 허겁지겁 출근 카드를 찍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총선 ‘올인’, 검찰 수사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아예 카드 인식기가 재작동하는 오후 3시 이후에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는 ‘간 큰’ 직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최근 새로운 비서실 체제가 들어서면서 소위 대통령 측근이라고 불리던 ‘힘센’ 직원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그야말로 관료 출신들이 대거 그 자리를 채우면서 이 같은 ‘대담한’ 행동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간 큰 행동은 이른바 노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에 국한된 일이었을 뿐”이라며 “대다수 청와대 직원들은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은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