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수씨 | ||
이로써 그동안 이혼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황씨와 ‘절대 이혼 불가’를 고집하고 있는 부인 김씨 간에도 감정적 대립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이에 앞서 황씨는 지난 2002년 이혼 소송을 제기해서 지난해 9월 서울가정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부인 김씨가 곧바로 항소해 현재 이들 부부의 이혼 문제는 법정 계류중인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 부부 사이에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은 지난 99년부터였다. 황씨는 네 차례에 걸친 방북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93년 구속수감됐고, 5년만인 98년 3월 출감했다. 그리고 이듬해 황씨는 미국에 체류중이던 부인 김씨에게 팩스를 통해 이혼을 요구했다. 이후 두 사람 간에는 “이혼해달라”, “절대 이혼해줄 수 없다”는 감정 싸움이 시작됐다. 두 사람 간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황씨가 김씨와 결혼한 것은 86년이었다. 유명 작가와 무용수의 만남은 당시 많은 화제를 낳았다. 특히 황씨는 첫부인인 소설가 홍희담씨와 이혼하자마자 곧바로 김씨와 재혼을 한 것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부인 홍씨와의 사이에서 1남1녀를 두고 있던 황씨는 두번째 부인 김씨와의 사이에서 87년 다시 아들을 낳았다.
89년 황씨는 도쿄와 베이징을 경유하여 북한을 방문, 당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귀국하지 못하고 독일 예술원 초청 작가 명목으로 독일에 체류했다. 부인 김씨는 그를 만나러 아들과 함께 독일에 갔고, 거기서 황씨의 권유로 북한을 90년과 91년 두 차례 함께 방문했다. 당시에 대해 부인 김씨는 “남편의 방북 권유로 한때 사이가 서먹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뜻에 따르기로 했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지난 2002년 귀국 기자회견에서 “오로지 남편의 뜻에 맞춰 북한을 갔고, 망명생활도 하며 내 인생을 희생했는데, 어떻게 그가 나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두 차례에 걸쳐 약 5개월간을 평양에서 체류했던 김씨는 김일성 주석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역시 방북을 감행한 시국사범의 신분이기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채 91년 미국 뉴욕에 체류하게 됐다.
황씨 또한 91년 11월 롱아일랜드 대학의 예술가 교환프로그램으로 초청받아 미국에 합류했다. 그는 93년 4월 귀국, 국보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98년 사면되었다.
그동안에도 김씨는 계속 자신이 낳은 아들과 함께 미국에 머물렀다.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황씨가 출감한 98년 당시만 해도 이들 부부간에 큰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씨는 출감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당장의 계획에 대해 “우선 가정적으로 안정을 이루는 것이 급선무”라며 “아내와 막내아들이 아직 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나 또한 가석방 상태인지라 미국으로 갈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하루빨리 가족과 합류하고 싶다”며 부인에 대한 간절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당시 황씨는 출소 직후 처가집인 장인 김영중씨(조각가) 집에 머물기도 했다.
부인 김씨 또한 남편의 석방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공항에서 곧바로 안기부와 검찰 직원에게 붙들려 조사를 받았고, 황씨와는 그저 얼굴만 보고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한 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것.
▲ 황석영씨 | ||
동거 사실에 대해서는 황씨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황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동거녀인 김씨와 만난 것은 사실이나, 이혼을 요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부인 김씨가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전혀 아내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았고 출감 후에도 미국서 살 것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던 바 있다.
두 사람은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부인 김씨는 “황씨는 93년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부터는 아예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며 “친정아버지의 도움과 미국서의 삯바느질, 웨이트리스 등 아르바이트 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감옥에 있는 5년 동안 소설 <장길산> 인세와 SBS 계약금 2억2천만원 등 수억원을 김씨가 가져갔으며, 출소 후인 98, 99년에도 돈을 가져갔고, 그 뒤로도 막내아들 양육비 명목으로 매년 1만달러 이상을 보내주었다”고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황씨의 이혼 요구를 거절했던 부인 김씨는 지난 2002년 7월초 한국을 찾았다. 98년 잠시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12년 만의 귀국이었다. 이 때 김씨는 여전히 이혼 주장을 굽히지 않는 냉랭한 황씨를 딱 세 번 만났다고 한다. 자신의 귀국 사실을 알렸음에도 연락이 전혀 없던 황씨를 만나기 위해 충남 예산의 저택을 물어물어 직접 찾았다는 것. 당시 그 집에서 동거녀인 김씨도 만났다고 한다.
부인 김씨는 미국으로 다시 떠나기 전인 그해 8월9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남편 황씨를 인간적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절대 이혼해줄 수 없다”며 황씨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동거 관계 등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러자 황씨도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법원은 “부인 김씨가 황씨의 투옥 기간 중에 아내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이 인정된다”며 황씨의 손을 들어주자 부인 김씨는 곧바로 항소했다.
미국에서 여전히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던 부인 김씨를 더욱 격노케 만든 것은 한 여성월간지의 올해 1월호에 실린 황씨 회갑연 보도 기사였다고 한다. 당시 이 기사를 보면 황씨와 함께 동거녀 김씨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고, 그녀를 황씨의 부인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부인 김○○씨가 공개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며 활짝 웃는 동거녀 김씨의 모습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현재 황씨와 동거녀 김씨는영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김씨의 공세에 대한 황씨와 동거녀 김아무개씨의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