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제 의원 변호인들은 이 의원의 자곡동 집 구조를 공개하며 돈 전달 진술의 신빙성을 따졌다. | ||
이보다 몇 시간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 의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됐다. 검찰측은 “이 의원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것은 물론 김윤수 전 특보를 회유하려 했다”며 구속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이 의원은 “돈 받은 일이 없는데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에 나선 이혜광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결국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여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이 의원측은 사전에 법원에 한 가지 이례적인 요청을 했다.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는 영장실질심사를 공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개 심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했던 이 의원의 변호인 세 명이 심사가 끝나자마자 기자실에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주 변호인인 이승재 변호사는 이 의원의 검찰 소환 및 진술 거부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변호인측의 영장실질심사 ‘신문 사항’이 담긴 자료를 이례적으로 전격 공개했다.
이 신문 자료에 따르면 이 의원의 자곡동 집은 (반)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뤄져 있다. 지하층에는 손님 대기실 겸 서재, 옷 방, 입주 비서관인 이아무개씨의 방이 있으며, 1층엔 서재 겸 응접실, 식당, 주방, 사랑방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층 왼쪽에는 침실, 오른쪽 끝엔 안방, 중간에 거실, 붓글씨 방이 차례로 위치하고 있으며, 지상 3층에는 이 의원 딸들의 방이 있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3층 방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이 의원의 딸들은 2층 안방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신문 사항에 담겨 있는 이 의원의 집 구조 가운데 가장 특이한 점은 1층과 2층 내부를 연결하는 계단 중간에 비밀번호버튼식 자물쇠가 달린 여닫이문을 설치해 뒀다는 점. 같은 집 내부에 또 다른 문을 만들어 사실상 1층과 2층을 완전히 차단하고 살았던 셈이다.
이 의원의 변호인에 따르면 이 예사롭지 않은 여닫이문은 닫으면 자물쇠가 자동으로 잠기고 2층 안쪽에서는 손잡이를 돌리면 그냥 열리지만 바깥쪽에서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만 열 수 있는 방식. 문의 비밀번호는 이 의원 부부와 딸들만 알 뿐, 지하층에 입주해 있는 비서도 몰랐으며 또한 정기적으로 변경해 왔다고 한다.
대체 왜 집안에 이같은 또 하나의 ‘관문’이 필요했던 걸까. 이 의원의 변호인들은 “외부 손님 특히 친척이 아닌 정치인, 기자들이 방문했을 때 과년한 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이 문을 닫아서 외부 손님이 무심코라도 2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변호인들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많은 정치인과 기자들이 이 의원 집에 드나들고, 특히 취재 카메라가 2, 3층까지 겨냥하기에 과년한 딸들을 보호하기 위해 2, 3층의 창문을 모조리 신문지로 도배해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 지난해 ‘진승현 게이트’ 현장검증 장소에 나와 결백을 역설하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 ||
일반적으로 손님이 방문하는 경우에는 대문에서 인터폰을 누르면 비서 이씨가 반지하 1층 출입문 옆 안쪽 벽에 설치된 비디오폰 화면을 보고 확인한 다음 반지하 1층으로 안내한다고 한다. 이곳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손님이 기다리게 하거나 실내 계단으로 안내해 1층 응접실에서 대기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의원의 집 전체에 보안경비시스템이 설치돼 있으며, 집 전화도 외부에서 걸려오는 때에는 비서방에 있는 전화만 울리게 돼 있어서 비서가 발신자를 확인하고 식구들에게 연결하여 준다고 한다.
이 의원의 변호인들이 ‘사생활의 깊숙한 곳’이라고 할 만한 이 의원의 집 내부 구조와 방문객 접견 방식, 보안 시스템 등에 대해서 이처럼 자세히 거론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는 이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윤수 전 특보의 검찰 진술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 김 전 특보는 검찰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5억원을 받았으나 중간에 2억5천만원은 개인 용도로 쓰고 나머지 2억5천만원을 2002년 12월 초 어느 날 새벽 이 의원의 자곡동 자택을 방문, 2층(안방)으로 올라가 이 의원의 부인에게 전달했다”는 요지의 진술을 했다.
이 의원 변호인들은 바로 이 대목을 겨냥해 집안 내부 구조와 방문객 접견 방식 등을 구구절절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변호인들은 특히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사이에 있는, 비밀번호버튼식 자물쇠가 달린 여닫이문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김 전 특보가 어떻게 2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의문에 대한 반대논리도 충분히 성립한다. 결국 이 의원 가족이 미닫이문을 열어줬기 때문에 김 전 특보가 2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의원 가족들은 미닫이문을 열어준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구속 수감되기 직전 “향후 돈을 전달했다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현장검증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자곡동 집 안의 특이한 구조를 쟁점으로 삼아 김 전 특보 진술의 신빙성을 허물겠다는 의도다. 마치 ‘진승현 게이트’ 당시 진씨로부터 자택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평창동 자택 현장검증을 통해 무죄 선고를 이끌어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재판과정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과연 이 의원이 향후 재판에서 ‘권노갑식 대반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한 가지 아이로니컬한 점은 그가 또 하나의 문을 설치하면서까지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집안 내부 풍경이 이번 재판을 통해 만천하에 고스란히 공개될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