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2일 새 대표 선출 전까지만 대표직을 수행하겠다고 발표하고 회견장을 나서는 모습. 입가의 야릇한 미소가 묘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연작전’으로 소장파 중심의 ‘쿠데타’ 움직임에 김을 빼는 데 일단 성공한 최 대표는 최근 들어 반전 카드를 하나씩 꺼내들면서 당내 위상을 다시 강화시키고 있다.
급기야 최근 최 대표가 당 대표 경선에 나서는 홍사덕 총무를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면서 그의 부활 시나리오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 공천도 최 대표가 구성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될 경우 그의 향후 복귀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과연 최 대표는 정치 입문 뒤 최대 위기를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할 것인가.
“다른 당의 누구처럼 교회 가서 며칠 생각하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최근 자신이 제안한 6대 당 개혁안이 중앙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즉시 물러나겠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내뱉은 말이다. 이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2월 대표직 사퇴 압박을 받을 때 사흘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것을 비꼰 말이기도 하다(최 대표는 잠행했을 당시 구례 화엄사 근처에서 2박을 했다고 최근 밝혔다). 자신은 물러날 때 앞뒤 재지 않고 과감하게 물러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조 대표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최 대표의 ‘장고’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할 것 같다.
사실 최 대표의 정치 생명은 지난 2월17일로 막이 내리는 듯했다. 그날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최 대표는 당의 총체적 위기를 이회창 전 총재와의 절연 선언으로 돌파할 계획이었지만 ‘책임 떠넘기기 정치’라는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고 말았다. 그 뒤 최 대표에게 주어진 카드는 많지 않았다. 최 대표가 대표직 사퇴를 선언하고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는 사흘 동안 불면의 밤을 보낸 뒤 2월22일 자신의 거취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기에 이르렀다. ‘전당대회 뒤 백의종군’이 골자였다. 회견이 끝난 뒤 한나라당 기자실에서는 최 대표가 임시 전당대회 전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겠다는 것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오갔다. 하지만 주된 해석은 최 대표의 ‘복심’이었다.
당 출입기자 A씨는 “최 대표는 20여 년 동안 여권의 대표적인 전략가로 통했다. 그런 그가 23만 명 당원에 의해 선출된 대표직에서 순순히 물러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번 회견은 최 대표가 고심 끝에 생각해 낸 최대의 꼼수였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최 대표가 임시 전당대회 뒤 당권을 내놓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실추된 영향력이 쉽게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과연 그랬을까. 역설적이게도 최 대표 부활의 ‘씨앗’은 바로 그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 최 대표의 복귀론은 이미 당내에서 ‘공론화’될 정도로 넓고 깊게 퍼져 있다. 공천에 실패한 하순봉 의원은 최근 의총에서 ‘최 대표 복귀 음모론’을 강하게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그는 “당 안팎에서는 나오는 얘기는 유언비어라고 믿고 싶다. 최병렬 대표 복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곧 비례대표에 끼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남 지역구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총선 치르고 전당대회에서 최 대표가 화려하게 복귀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최 대표의 부활 시나리오와 관련된 정황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공천권이 최 대표 복귀의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당권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공천권만은 끝까지 지켜냈다. 이미 공천 일정이 상당 부분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를 손댄다는 것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최 대표의 의중대로 구성된 공천심사위가 계속 유지됨으로써 총선 뒤에 그가 복귀할 수 있는 ‘친최 세력’이라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박승국 의원은 공천에 실패한 뒤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 대표는 공천권을 휘둘러 이미 광범위하게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았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개헌을 통해 차기 대통령까지 꿈꾸고 있다. 사무부총장으로서 그와 같이 일을 하면서 최 대표가 대권 꿈을 꾸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런 부활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대표 경선을 놓고도 ‘최심’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대표 경선 방식이 지명도 높은 인물이 유리하도록 짜여지면서 ‘홍사덕 총무를 옹립하기 위한 대표 경선’이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최 대표가 향후 정치적 입지를 보장받기 위해 홍 총무를 후임 대표로 밀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이를 위해 영남권 중진들까지 ‘홍사덕 대안론’을 은근히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홍 총무와 가까운 최 대표로서는 다시 한번 권토중래를 노릴 수 있게 된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박근혜 의원은 최근 “당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욕심을 차리려는 일부 분위기가 있다”며 최 대표측을 공격하고 나섰다. 박 의원측은 홍사덕 총무를 새 대표로 추대하려는 특정세력의 음모하에 이런 소문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들러리 후보가 될 수 없다’며 불출마를 선언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최근 조성되고 있는 탄핵정국도 최 대표와 홍 총무의 ‘합작품’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으로서는 탄핵에 소극적이지만 계속 강경으로 밀어붙일 경우 임시 전당대회의 무산까지도 예상할 수 있다. 최 대표측이 이처럼 탄핵정국으로 조성될 비상 국면을 당권 재장악의 호기로 판단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홍 총무는 어차피 최 대표와 한배를 탄 몸이다. 탄핵도 결과에 관계없이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대표 경선에 유리한 입지를 마련할 것이다. 최 대표와 교감을 이루면서 탄핵 카드를 무기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최 대표의 복심이 결국 파멸로 끝날 것이라는 시각도 당내에 팽배해 있다. 당 소장파 A의원은 “최 대표가 총선 불출마 등 자신과 관련된 개혁 카드를 일찍 꺼냈더라면 굉장한 효과를 봤을 것이다. 그런데 밀리고 밀리고 해서 결국 그 지경까지 가고서야…. 그 양반 노태우 대통령 때나 YS 시절에서는 한창 잘나가던 전략기획통이었지만 지금은 그 시절의 총기는 이미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대표의 비례대표 배려설에 대해서는 “막판에 비례대표로 배려될 수도 있고 제2의 총선으로까지 불릴 수 있는 재보궐 선거(10월 실시 예정)에서 구제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동료 선배들을 짓밟고 지나간 마당에 자기만 살겠다고 복귀 운운한다면 결코 여론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 대표측은 당 내외에서 일고 있는 복귀설에 대해 손사래를 치며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측근은 당 내외의 이런 복귀설에 대해 “최 대표는 사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것은 최 대표의 스타일이 아니다. 당헌 당규에 따라 임시 전당대회 전까지 최선을 다해 총선 승리를 위해 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