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분수령인 17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권의 넘버 1, 2인 두 사람 간에 ‘불협화음’의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내 제1당’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총선 올인’에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온 이전과는 다른 양상. 특히 1월11일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체제가 출범한 후 열린우리당이 부동의 정당 지지도 1위를 기록하면서 “‘청(靑)-당(黨) 관계’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 이상현상이다.
양측간 갈등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나지만, 모두 총선 전략과 여권 내 역학관계로 귀결된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 및 효과에 대한 이견과 ‘노무현 사람들’에 대한 ‘정동영 사람들’의 배척 시비, 대선 승리와 열린우리당 창당 공신들에 대한 정 의장 등 당권파의 ‘토사구팽’(兎死狗烹) 움직임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분 사태처럼 표면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총선 후 일대 권력투쟁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여권 내 이 같은 동향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우선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를 둘러싼 논란은 선거구도와 전략을 놓고 양측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 측근들은 열린우리당의 정당 지지도가 안정적 1위를 유지하고, 노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의 거액펀드 조성 논란이 거셌던 2월 중순부터 정 의장측이 총선 전략과 당내 입지 강화 차원에서 노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거리 두기’에 나섰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 정 의장은 2월15일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이 입당을 약속하고 지지를 선언한 당이다. 입당 절차와 시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며 총선 이후로 입당이 늦춰질 수도 있다는 뜻을 시사해 노 대통령 측근들을 발끈하게 만든 바 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노 대통령측이 문제 삼지 않아 파장이 커지진 않았으나 이번엔 양상이 달랐다. 지난 5일 <중앙일보>가 “열린우리당에서 노 대통령에게 총선 후에 입당할 것을 건의하기로 했다”는 요지의 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면서부터 노 대통령측의 불쾌감이 곳곳에서 표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기사는 정 의장측에서 ‘노 대통령의 각종 선거 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탄핵까지 거론하며 쟁점화해서 4월 총선이 ‘노무현 대 야당’ 구도로 갈 경우 불리하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대통령의 입당을 총선 이후로 늦춰야 하며, 이를 청와대에 공식 건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였다. 노 대통령은 몇몇 측근들이 전화통화를 통해 진위 여부를 묻자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선거 정국과 구도를 근본적으로 잘못 읽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은 총선 후 입당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야당으로부터 탄핵하겠다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합법적 틀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원하겠다고 한 배경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안 들어가면 답답한 게 누군지도 모르고…’라며 어이없어하더라. 사실여부를 떠나 어느 한 쪽에서 그런 얘기를 흘리면 노 대통령과 우리로서도 가만 있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도 “탄핵 정국이 펼쳐지고 있는데 열린우리당에서 야당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 노 대통령의 입당을 미루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친노(親盧)-반노(反盧)’구도가 선거에 불리하다고 하는데 그건 피상적인 분석일 뿐이다. 이번 선거에선 오히려 ‘탄핵’과 ‘친노-반노’로 큰 구도를 잡아 노 대통령-열린우리당을 축으로 한 새 정치-개혁세력연합과 ‘한나라당-민주당 공조’를 축으로 한 수구-반(反)개혁세력 연합구도로 가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확고한 판단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 중 노 대통령과 ‘교감도’가 가장 높다는 김정길, 김혁규 상임중앙위원도 “(총선 후 입당 주장에) 청와대가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다. 핵심 선거전략 중 하나인 노 대통령 입당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의 조율이나 지도부 내 논의도 없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세했다.
여기에 총선 채비를 위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5일 염동연 정무조정위원장 장녀 결혼식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입당 시기가) 총선 후는 아닌 것 같다. 3월 말쯤 입당하지 않겠느냐”며 ‘총선 후 입당’ 주장을 일축했다.
아울러 정 의장과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김근태 원내대표는 아예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참여정부 1년의 공과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대통령이 즉시 입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반대의 주장을 펴 눈길을 끌었다.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7일 대통령 정치특보에 갑자기 임명된 것도 최근 열린우리당 내 상황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란 지적이 나온다.
기존의 김원기 정치특보(당 최고상임고문)가 서해종합건설로부터 1억5천만원을 받았다는 검찰 발표와 함께, 롯데로부터 받은 불법자금 2억원의 당 유입통로로 지목되는 등 ‘연타’(連打)를 맞으면서 행동반경이 급속히 위축되자, 대안으로 문 전 실장을 내세웠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와 당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번 인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문 전 실장은 청와대-당 간 가교 역할 외에 대야(對野) 관계와 대(對) DJ(김대중 전 대통령) 관계를 푸는 데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 입당 시기와 관련해 청와대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정 의장측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박영선 대변인이 ‘우리당이 대통령의 입당 시기를 총선 후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 “당의 입장이 아니라, 특정 개인의 입장이다”고 부인한 데 이어, 정 의장도 7일 전주에서 기자회견을 가져 “이번 총선은 책임 있는 여당으로 치를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노 대통령의 입당은 당연하다.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면 법정선거일 개시 이전 적당한 시기에 입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수습에 나섰다.
당권파의 ‘노무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홀대’도 논란의 소재다. 우선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씨,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 노 대통령 386 핵심참모들이 기업들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것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 의장과 신기남 이부영 이미경 상임중앙위원, 천정배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들의 이들을 대하는 시선도 더없이 싸늘해졌다.
반면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난 인사들이 구속 또는 낙천되는 등 ‘수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사람들’의 불만사항이다.
강원도 철원-화천-양양-인제에 공천을 받았던 정만호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자신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준 혐의로 구속됐다. 또 박범계 전 법무비서관과 김용석 전 인사비서관은 각각 대전 서구 을, 인천 부평 갑 당내 경선에서 패해 탈락했고, 윤훈열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서울 영등포 갑 경선에서 아예 배제됐다.
한때 ‘실세 중의 실세’로 평가받아온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도 고향인 강원도 태백-정선-영월-평창에 공천을 신청해 열린우리당 제2정조위원장인 김택기 의원과의 힘든 경선을 거쳐야 본선 진출이 가능한 형편이다.
노 대통령의 한 386 측근은 “과거처럼 ‘청와대 프리미엄’이나 대통령 측근이라 특별대우를 해 주리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올인’하라 해 놓고서는 객관적으로 이길 수 없는 경선에 나가라 내모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더구나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것을 ‘예비 범죄인’의 징표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아예 당에 발길을 끊은 이들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대선 승리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자금 문제 등 궂은 일을 도맡았던 김원기 최고상임고문과 이상수 의원, 이재정 전 의원 등 이른바 ‘개국(開國) 공신’들을 겨냥한 당권파의 ‘청산’ 움직임도 갈등 요인이다.
특히 김 고문의 경우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과 안희정씨를 통해 건네진 2억원의 롯데 불법자금을 서울 여의도 당사 임대료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당권파로부터 거센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당권파들은 ‘불법자금 유입’ 파문을 진화하기 위해선 김 고문을 지역구(전북 정읍)에 공천하는 것을 배제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정계 은퇴’ 등의 처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파 핵심인 천 의원은 “열린우리당에도 구태스러운 행태가 있었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가려 책임질 사람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명색이 대통령 정치특보라는 분의 상황판단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너무 실망스럽다”고까지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고문측은 당권파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배은망덕’ 등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김 고문측은 특히 정 의장이, 김 고문이 마련한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즉각 퇴거할 뜻을 밝히면서 “불법자금으로 마련한 호화당사에서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말한 것을 두고 “우리를 모욕해서 선을 끊겠다는 것이냐”며 발끈하고 나섰다.
한 측근은 “아직 검찰 수사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마치 김 고문이 불법자금을 당에 가져온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이 그렇게 떠들던 서해종합건설 1억5천만원 건도 무혐의 처분 결정이 내려졌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정 의장 등이 무슨 딴 생각을 가지고 사건을 확대시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와대도 이번 ‘당사 파동’에 노 대통령의 ‘정치 스승’인 김 고문과 386 핵심측근인 안희정씨, 여택수 전 행정관이 개입된 터라 당권파의 사태수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신속 수습이란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여권 내에서 이번 사건을 김 고문에 대한 책임론으로 끌고가거나, 노 대통령 386 측근들을 공격하는 계기로 삼는 등 특정 세력의 입지 강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은 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상황 여하에 따라 또 다른 갈등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