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한국관구에 따르면 정일우 신부의 빈소는 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고, 장례미사는 4일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진행됐다.
사진=제정구기념사업회 홈피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강대 설립 주역인 프라이스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 연구소를 열어 34년 동안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노조 활동,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친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였다.
1973년 청계천 판자촌에서 살며 빈민운동을 시작한 정 신부는 판자촌 철거 반대 시위를 주도하면서 빈민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면서 복음을 실천했다.1980년대에는 철거민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판매했다.
이후 1998년 우리나라로 귀화했으며 충북 괴산 농촌청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누룩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1986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동지 고 제정구 전 의원과 공동 수상하기도 했다.
[온라인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