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서울경찰청 민오기 수사과장이 병역비리 수사 중간발표를 하고 있다. | ||
지난 9월4일 추가로 프로야구 선수 3명과 고등학교 야구코치, 회사원 2명이 경찰에 검거되는 등 사건 연루자 수도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상황. 경찰 일각에는 이번 사건에 프로야구 선수들 이외에도 다른 스포츠계 및 연예계 인사들도 여러 명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엄청난 후폭풍이 일 가능성도 크다.
경찰은 기존의 병역비리가 의사와 병무청 관계자를 끼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지만 이번 우씨 등의 수법은 의사나 병무청을 감쪽같이 속여 ‘위험도’를 줄였다고 밝혔다. 그 때문에 우씨가 지난 8년간이나 적발되지 않고 암암리에 범행을 해올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번 신종 병역비리 사건에는 몇 가지 풀어야 할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브로커 우씨와 김씨가 병역면제를 이끌어내기 위해 공략한 질환은 바로 ‘사구체신염’과 ‘신증후군’이었다. 사구체신염에 걸리면 단백뇨와 혈뇨가 나오는데 병역 대상자들로 하여금 단백질의 일부인 알부민 제제와 자신의 피를 소변에 섞어 사구체신염의 증세로 판정되도록 한 것이다.
사구체신염의 경우 신체에 필요한 단백질과 혈액이 다시 체내로 흡수되지 못해 핏속의 알부민이 부족해지고 고지혈증이 나타나는 신증후군의 증상이 나타난다. 안정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병역면제 사유가 된다. 이를 치료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하면 만성신부전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우씨 등에 따르면 ‘신장질환자 만들기’의 단계별 수법은 이렇다. 병역 대상자들이 “자주 피로를 느낀다”, “얼굴과 손발이 푸석푸석하고 붓는다”, “소변이 탁하고 거품이 인다”는 증상을 호소하면 의사들은 병증 확인을 위해 소변을 받아오라고 지시를 내리게 마련. 이때 소변에 준비해온 단백질 성분의 약물과 자신의 혈액을 섞으면 1차 검진 결과 ‘사구체신염’이라는 질환으로 의심받게 된다는 것.
이럴 경우 종합병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조직검사를 통해 병명을 확인하게 된다. 경찰 조사 결과 우씨 등은 ‘의뢰자’들로 하여금 조직검사를 받기 전날에 저녁을 먹지 않고 밤 9시부터 물에 커피가루를 타서 검사 3∼6시간 전에 마시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콩팥 조직을 떼어 검사를 해도 신장에 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므로 병원에서 의심없이 사구체신염 판정을 내렸다는 것.
우씨 등은 최종 관문인 병무청 재검이 까다로운 것을 감안해 의뢰자들로 하여금 준비된 약과 자신의 혈액을 혼합해 요도에 주입하도록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방광에 주입된 약물은 4시간까지 병증을 나타내는 ‘효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전문가들은 이 같은 면죄 수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우씨 등 브로커들이 조직검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의뢰자들로 하여금 커피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도록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반응이다.
경희의료원 신장내과의 이태원 교수는 “단백뇨와 혈뇨가 나오더라도 사구체신염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조직검사를 통해서다. 조직검사라는 것은 주사바늘로 신장의 조직을 일부 떼어내어 검사하는 정밀검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허술하게 조작이 될 리가 없다. 커피가루를 마셔서 사구체신염의 조직검사 결과를 조작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의료 전문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씨가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가령 조직검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일부 의료인 등과 커넥션을 맺었으나 이를 감추기 위해 자신의 단독범행임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의문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압수한 우씨와 김씨의 수첩과 진술 등을 통해 지난 96년부터 돈을 주고 병역면제를 청탁한 총 80명의 명단을 확보했다. 그러나 경찰 발표에 따르면 우씨와 김씨가 병역면제의 대가로 받은 돈은 각각 31억원과 11억원, 총 42억원에 이른다. 현재 경찰에 구속된 10명의 병역면제자들이 이들 브로커들에게 건넨 돈은 3천만∼4천만원 수준. 결과적으로 우씨와 김씨가 그간 올린 수입은 80명이 낸 돈이라고 보기에는 훨씬 큰 액수다.
그렇다면 이들 80명 이외에도 두 사람에게 병역면제 대가로 돈을 건넨 사람들이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거꾸로 보자면 우씨 등이 ‘의뢰’ 사실을 아직 숨기고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경찰은 같은 병명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밀추적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어급 병역비리 연루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과연 우씨와 김씨가 ‘숨기려’ 한 인물들은 누구일까.
또 하나의 의문은 과연 우씨가 이 같은 신종 면제 수법의 ‘원조’인가 하는 점이다. 우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수법에 대해 “신문과 방송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혼자 개발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씨의 수법이 상당한 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것인 만큼 또 다른 전수자나 의료인의 개입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30세에 이 같은 일을 시작한 우씨가 ‘사부’나 ‘선배’를 보호하기 위해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만약 우씨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면제 수법을 전수를 받은 것이라면 사태는 보다 심각해진다. 알려지지 않은 병역비리가 오랫동안 암암리에 우리 곁에서 저질러진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