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70년대에는 병무청의 검사시설이 ‘시원찮아’ 간장을 마시는 등 엉뚱한 ‘민간요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사진은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있는 징집대상자들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이들이 입대를 연기하는 사유는 주로 대학 및 대학원 재학 등을 들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졸업으로 어려워지면 병무청 담당자를 매수해 자신의 병적기록부를 한쪽에 안 보이게 치워두도록 했다. 모든 것이 주먹구구식으로 담당 직원들의 수작업으로만 이뤄진 60년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다. 설사 나중에 발각되더라도 실수였다고 하면 처벌받을 염려도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고령이라는 이유로 면제를 받은 일부 저명인사들의 경우, 일반인들과는 달리 징병검사 기피나 징집기피로 처벌받은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편법을 동원해 고의적인 병역 기피를 했을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다.
가난했던 때였기에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인신매매’ 방법도 통용되던 시기였다. 부유층 자제를 대신해서 일정한 돈을 받고 군대를 한 번 더 갔다오는 경우가 그것. 일부이긴 하지만 병역 면제 대상의 질병을 가진 환자를 돈으로 매수해서 대신 징병검사를 받아보게 하는 방법도 가능했다.
70년대에 들어 어느 정도 행정적인 시스템이 정비되면서부터 질병을 가장한 면제 방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 질병은 폐결핵 만성간염 등이었다. 당시 의료 기술 수준에서 정확한 확인이 힘든 데다가 자료를 바꿔치기 하기도 쉬운 질병들이었다.
병이 있는 것처럼 속이기 위한 웃지못할 ‘민간요법’들도 동원되었는데, 결핵으로 보이기 위해 검사 전에 가슴에 쇳가루를 바르거나, 잉크 또는 간장을 대량으로 마시고 X선 촬영에 임하는 이도 나왔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병무청에 이동 신체검사장이 있을 정도로 신체 검사 수준 자체가 낙후돼 있었기에 이런 식의 비리나 엉뚱한 발상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전했다.
80년대 들어서는 더욱 다양화된 질병이 활용됐다. 이 시기에는 생활 수준이 다소 높아지면서 폐결핵 등의 질병 대신에 디스크와 시력, 그리고 정신과 질환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또한 키를 원래보다 줄인다거나 몸무게를 줄이는 방법도 이때부터 각광받은(?) ‘품목’이었다.
지난 2002년 지자체 선거에 자치단체장 후보로 나선 한 야당 인사는 아들이 디스크로 군면제를 받기 위해 허위 CT 및 방사선 촬영을 사용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역시 지방의 자치단체장 후보로 나선 한 야당 인사 역시 그의 아들이 체중 측정 담당자와 사전에 결탁해 체중을 줄이는 방법으로 군면제를 받았다는 상대 후보의 폭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때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코미디 같은 민간 요법이 나돌기도 했다. 체중 늘이기나 줄이기는 기본이고, 약물 또는 술과 간장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 혈압 높이기, 눈에 강한 직사광선을 쏘여 시력 저하시키기, 높은 곳에서 자주 뛰어내려 척추에 무리가 가게 하는 방법, 그리고 얼음을 깔고 앉아 치질 악화시키기 등이 그것이다. 실제 어떤 이는 귀에 석유를 뿌리는 방법으로 청각을 저하시켜 군면제를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병역비리 수사에 관여했던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시에는 대략 2백만원에서 5백만원 정도가 군의관들에게 뇌물로 들어갔으며, ‘칭병’ 사유로 대부분 면제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당시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사진 조작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디스크와 같은 수핵탈출증 환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이 병으로 가장한 사진 조작은 90년대까지 이어지는 최장 ‘인기 수법’이었다.
90년대 이후부터는 병역 기피 현상이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에서 중산층으로 확산될 정도로 사회 저변화되었다. 80년대 통용되던 질병 조작이 여전히 만연하는 가운데, 상류층에서는 국외 이주 및 영주권 취득 등의 장기간 해외 체류를 통한 면제 방법이, 또 중·하류층에서는 문신이나 무릎연골제거 수술, 각막혼탁 수술, 뼈 탈구 등 신체 훼손을 통한 면제 방법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병역특례 제도를 악용해서 합법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군 면제 혜택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권력층 부유층 자제들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프로 스포츠가 각광받으면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병역비리가 해마다 불거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고도화된 수법이 엿보인다. 정교한 MRI 촬영 조작이 발견됐고, 이번처럼 단백질 주사를 투입하는 지능적인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특히 소변 검사에 대비해 단백질을 주사나 식염수 통 등으로 투입하는 법은 90년대 주로 사용되던 방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눈속임 방법이 갈수록 진화되는 단적인 사례. 90년대 사용되던 방법은 소변 채취시 몰래 소변에 단백질을 투량하는 방법이었는데, 이것이 적발되면서 이후 소변 채취 때 감시의 눈길이 따라붙자 아예 사전에 주사를 투여하는 엽기적인 방법이 등장한 것.
심지어는 신장을 떼내고 검사를 받은 뒤에 다시 붙이는 황당한 방법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라식 수술을 한쪽만 받거나 엑시머레이저 수술을 통해 한쪽 눈만 시력을 조정해 양쪽 눈의 시력 차이를 크게 늘려 면제받는 기발한 수법도 드러났다. 이들은 면제를 받은 뒤 다시 재수술을 통해 시력을 회복하기도 했다.
수법이 날로 ‘진화’하면서 브로커 등을 통해 병역 면제에 드는 비용도 이미 수천만원대를 넘어섰고, 심지어는 억대에도 이르렀다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한 병무 관계자는 “질병을 동원하는 수법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어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기법이 등장할지 모른다”며 “해외 출산이 최근에는 중산층에까지 확산되고 있어 앞으로는 해외 국적 문제가 주요 면제 사유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