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이경재 부장검사)가 지난 9월13일 김씨의 구속 사실을 공개하자 기자들이 일제히 강력부장실로 몰려갔다. 김씨의 구속영장을 읽어내려가던 기자들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뭐 대수롭지 않은 사건인데…”라며 멋쩍어하던 이 부장검사는 “한 번만 공개해 주시죠”라는 기자들의 요청이 계속 이어지자 김씨에게서 증거품으로 압수한 고급 골프 퍼터(그린에 있는 공을 홀에 넣을 때 사용하는 골프채)를 마지못해 꺼내 놓았다.
순간, 강력부장실에 와 있던 기자들은 “와” 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흔히 쓰이는 일반 퍼터가 아닌, 금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고급 수제 퍼터였기 때문. 곧바로 강력부장실은 휴대폰 통화 연결음으로 소란해졌다. 희귀한 골프 퍼터를 목격한 각 신문·방송기자들이 휴대폰을 꺼내 자사 사진 기자들에게 급히 연락을 취해 사진 촬영을 요청한 것.
그러나 예상대로 부장 검사의 대답은 “노”. 이 부장검사는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고 아직 기소하지 않은 사안이니 사진 촬영은 안됩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에 기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골프 퍼터의 재질과 구조를 한 점도 놓치지 않기 위해 구름처럼 퍼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퍼터가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값비싸기로 소문난 일본 유명 골프디자이너의 수제품이라는 사실 때문. 특히 1백20만원에서 2백만원까지 호가한다는 일본 유명 수제 퍼터보다 30배 이상 비싼 퍼터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외관부터가 일반 퍼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을 맞히는 헤드의 크기는 가로 11cm, 폭 2.5cm에 길이가 2.5cm로 일반 퍼터의 규격과 다를 바 없지만 헤드 전체가 금(18K)으로 칠해져 있는 것부터가 독특하다.
샤프트(자루) 부분도 금색으로 칠해져 있어 멀리서 본다면 영락없는 ‘금도끼’. 검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일본에서 6백70만엔(약 6천7백만원)에 구입했다고 진술했다”며 “누가 봐도 장식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자들의 시선을 자극했던 것은 헤드 윗부분에 박힌 5개의 다이아몬드. 5개의 다이아몬드 중 가운데 다이아몬드가 0.5캐럿, 양쪽 끝 부분 다이아몬드가 0.3캐럿, 나머지는 0.4캐럿짜리였다. 최근 수년간 다이아몬드 1캐럿(10부)이 약 1천만원선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다면, 퍼터 헤드에 붙은 다이아몬드 가격만 해도 1천9백만원을 호가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피해자는 국내 입국 시 이 초호화 골프채를 세관에 신고했을까. 골프채는 보석, 고급 시계 등과 함께 사치품목으로 분류돼 세관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격이 4백달러(약 48만원) 이상이라면 세관에 신고하고 관세, 특별소비세, 농어촌특별세, 부가가치세 등 규정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특히 이 골프 퍼터는 금,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 세관에 신고를 하지 않고 지나치더라도 공항 검색대에서 100% 적발될 수 있는 물건이다.
피해자의 신원을 검찰이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어 당시 피해자가 골프채를 들여오면서 세관에 신고를 했는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각 지역 세관측 관계자들은 피해자가 세관 신고를 하지 않고 검색대를 유유히 통과했을 가능성과 함께 다른 루트로 들여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세관 신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이 대세. 만약 세관 신고를 했다면 당시 언론에 크게 회자되지 않았겠느냐는 것.
인천공항세관 정태헌 공보담당관은 “고객 개인이 국내로 들여오는 골프퍼터는 일반적으로 10만~20만원의 가격이고, 대부분 세금 부과 대상인 4백 달러(약 48만원) 이하 제품이기 때문에 퍼터를 들여오는 고객 중 3~5% 정도만이 검사 과정을 거치는 게 관행”이라면서도 “그러나 99년 당시에는 부과되는 세금 부과율이 제품 가격의 60~70%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세금 부담 때문에라도 밀수 등 다른 루트를 통해 골프 퍼터를 들여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세관 관계자도 “특소세가 내린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세율이 높아 세관 신고를 하는 데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골프 퍼터의 세관 신고 유무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부분은 피해자가 과연 이 퍼터로 골프를 쳤을까 하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다이아몬드와 금이 박힌 골프 퍼터로 골프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나 피해자의 골프 퍼터 헤드 부분과 샤프트 부분에서 일부 긁힌 자국이 발견됐다. 흔적으로만 본다면 많지는 않더라도 몇 차례 이 퍼터로 골프를 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급 퍼터로 공을 쳤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동적인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골프 퍼터의 감가상각비용을 의식하고 세관에서 과세의 일부를 감면받기 위해 일부러 퍼터에 흠집을 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검찰은 피해자의 골프 퍼터 입수와 국내로 들여오는 경로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별도로 수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피해자가 출석하는 법정에서야 ‘증거물’인 호화 퍼터의 숨겨진 베일이 공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