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절도 전과 10범인 이 씨는 국내 절도범들 사이에서 ‘넘버3’에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춰 빈집털이범의 ‘기준’이라 불린다.
때문에 이 씨가 한 번 뜨면 그 일대는 초토화되기 일쑤였다. 지난 2011년 1월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가 발칵 뒤집어졌다. 불과 5시간 만에 도난 신고가 9건이나 접수된 것. 물론 이 씨의 ‘작품’으로 그는 가스배관을 타고 베란다로 침입해 금품을 싹쓸이하는 데 건당 길어야 20분 남짓한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씨는 2010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총 144회에 걸쳐 21억 61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절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 씨는 이 돈으로 마포의 고급오피스텔에서 지내며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등 호화로운 생활도 즐겼다. 보통의 빈집털이범으로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이 씨에겐 완벽한 범행을 도와줄 공범들이 있었기에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씨는 교도소에서부터 절도전과 8~21범인 ‘전문가’들을 선별해 범행을 계획했는데 실전에 나설 때마다 주변에 망을 보는 사람을 배치하는 등 철저히 경계를 했다.
이처럼 치밀한 범죄행각에 경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절도범의 경우 공개수배 형식을 잘 쓰진 않지만 전과 10범인 데다 신출귀몰하는 이 씨의 특성상 검거의 신속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2012년과 올해 상반기 ‘경찰청 중요지명 피의자’에 포함시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범들이 속속 붙잡혀도 이 씨의 검거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 폐쇄회로(CC)TV 분석 등 10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해 9월 공범 권 아무개 씨(47) 등 3명을 한꺼번에 붙잡은 바 있다. 앞서 지난 2011년과 2012년에도 각 공범 2명과 1명을 붙잡기도 했지만 이 씨는 또 다시 멤버들을 모집해 범행을 계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CCTV에 찍힌 절도범 용의자 이 씨의 범행 장면. 사진제공=서울강남경찰서
이 씨는 공범들이 붙잡히자 보안에 더욱 신경 썼는데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약속 장소 및 동선을 수시로 변경하고 18개월 동안 60여 개의 다른 사람 명의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범행 후 달아날 때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여러 담을 타고 다른 길로 나가거나 택시도 수차례 바꿔 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경찰은 공범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추적하던 중 지난달 26일 송파구 잠실의 한 카페 야외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 씨를 붙잡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당당했는데 “돈 없는 사람들의 집은 안 털고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골라 털었다”며 자신의 범죄 행위를 합리화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 한 관계자는 “이 씨는 빈집털이범의 기준이라는 의미에서 ‘기준’이라고 불리는 대도였다”며 “장물사범에 대한 수사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