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들의 중징계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KB금융지주가 예상을 깨고 LIG손해보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신동빈 롯데 회장이 “LIG손보 인수에 올인하라”고 지시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LIG손보 인수전이 치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KB금융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KB금융은 임영록 회장 취임 이래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로 ING생명 한국법인, 우리투자증권 등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잇달아 실패했다. 그런 만큼 LIG손보는 기필코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전산시스템 교체 건으로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임 회장이 직접 LIG손보 인수를 위한 회의를 주재하며 작전(?)을 짰다고 알려진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예상 외라는 반응이다.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내부적으로 사분오열되는 모습을 노출한 데다 금융당국의 심기까지 건드렸다고 전해지면서 LIG손보 인수도 물 건너 간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틀 전인 지난 9일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동시에 중징계 통보를 받았고 KB금융과 국민은행마저 ‘기관경고’를 받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LIG손보 인수 전망을 어둡게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 인수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었고 KB금융은 인수전 막바지에 CEO들과 기관의 경고가 예고된 터라 어려울 것으로 봤는데 의외다”면서 “롯데가 끝까지 인수 의지를 보였으나 (LIG손보) 노조 반대가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고 말했다.
LIG손보 노조(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LIG손해보험지부)는 줄곧 롯데와 사모펀드, 중국 푸싱그룹의 LIG손보 인수를 반대해왔다. 구조조정과 회사의 영속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노조는 나아가 이들의 인수 의지를 규탄하며 인수 포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반면 KB금융에 대해서는 ‘그나마 낫다’는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발표 직후 LIG손보 노조는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면서 “대주주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LIG손보 매각의 출발점은 지난해 11월. LIG건설의 기업어음(CP) 투자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알짜 계열사인 LIG손보를 매각해 피해를 보상함으로써 오너 일가가 도덕적으로도 책임을 진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이 같은 LIG 오너 일가의 명분과 노조의 바람, KB금융의 인수 의지가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조건부 선정’이라는 것이 변수다. KB금융은 오는 26일까지 LIG손보 인수를 위한 모든 절차를 마쳐야 한다. 즉 26일까지 배타적 권리를 가진 상태에서 이사회 승인과 본계약 체결 등을 끝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순위인 동양생명, 롯데손보 등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넘어간다.
KB금융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26일까지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26일까지 인수 절차를 마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금융당국 승인은 그 후의 문제로서 6월 말에 신청하면 9월쯤에나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 측은 2주일이 아니라 빠르면 1주일 내에도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임영록 회장(왼쪽)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았다.
금융지주회사법 특례규정에 따르면 보험사의 자회사 편입 승인 시 보험업법상 대주주 기준을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KB금융이 LIG손보를 자회사로 편입, 금융당국이 이를 승인하면 대주주 적격성 여부는 따지지 않고 사업계획, 재무건전성 등 지주회사법상 승인 심사만 받으면 된다. 이에 대해 KB금융은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믿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미 법률자문까지 모두 마친 상태”라며 “인수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KB금융의 뜻대로 해줄지는 미지수다. 특례규정까지 적용해가며 KB금융의 LIG손보 자회사 편입을 승인해주기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더욱이 카드 고객정보 유출, 국민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90억 원 횡령, 1조 원대 가짜 확인서 발급, 전산시스템 교체로 인한 내분 등 최근 KB금융에 사건·사고가 잦아 여론이 좋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은 이미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게 중징계할 것을 사전통보했다. 오는 26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을 하겠지만 한 금융지주사의 회장과 은행장에게 동시에 중징계를 통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다 최기의 전 KB국민카드 사장도 중징계를 받을 전망이다. 지주회장, 은행장, 카드사 사장 등 KB금융의 전·현직 핵심 CEO들이 전부 중징계를 받을 수 있는 것. 이 외에도 95명가량의 KB금융 임직원도 징계 대상으로 올라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연 금융당국이 KB금융의 LIG손보 자회사 편입을 승인해줄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금융당국의 승인이 모험일 가능성도 있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은 관리·감독 소홀, 책임회피 등의 문제로 비판받고 있는 터다. 금융당국은 ‘법대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자회사 편입 신청 후 금융위 승인까지 3개월 정도 소요된다”면서 “보통 큰 무리 없이 승인해왔지만 KB금융의 경우엔 워낙 말이 많아 장담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KB금융 측은 현재 KB금융과 관련해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과 LIG손보의 자회사 편입 문제는 별개라는 점을 강조하며 금융위 승인을 자신하고 있다.
금융지주사의 경우 상장 보험사를 자회사로 둘 경우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조건도 걸려 있다. KB금융이 이번 딜에서 인수할 예정인 LIG손보 지분은 19.83%. 30% 이상 지분을 보유하려면 11%가량의 지분을 더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자회사 편입 후 1년 후의 일이다. 1년 동안은 지금 지분을 유지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KB금융 관계자는 “그쪽(LIG손보)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블록딜 형식의 매입, 혹은 증자 등 여러 방법이 있다”면서 “1년 후 30% 보유 규정을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인수 효과 얼마나 될까 자산 320조로 ‘쑥’… 업계 1위로 올라서 KB금융이 LIG손보를 최종 인수한다면 금융지주사 최초로 손해보험사를 갖게 된다. 인수 작업에 공을 들인 임영록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임직원들에게 “이번 인수·합병(M&A)이 우리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며 기뻐했다. LIG손해보험 전경. 최준필 기자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방카슈랑스 판매 외의 시너지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제고 효과도 미미해 재무적인 개선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일단 KB금융이 LIG손보를 최종적으로 품에 안을 경우 손해보험업계 판도가 요동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LIG손보는 손보업계 ‘빅4’에 해당할 만큼 알짜다. 지난해 기준 LIG손보의 시장점유율은 13.42%로 4위. 삼성화재가 26.09%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위 현대해상(16.24%)과 3위 동부화재(15.46%)와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5위 메리츠화재(7.52%)부터는 상위권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빅4를 제외하고 나머지 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기는 상당히 힘든 구조”라면서 “업계에서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터라 하위그룹이 상위권으로 갑자기 올라서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전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LIG손보를 인수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시장점유율 3.04%로 업계 9위인 롯데손해보험이 LIG손보를 인수할 경우 단숨에 업계 2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상위권 도약이 자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LIG손보의 매각은 신 회장에게 큰 기회였던 것. 하지만 신 회장은 노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면 KB금융은 LIG손보를 인수함으로써 금융지주사로는 처음으로 손해보험업계에 진출하게 된다. 또 지난 1분기 기준 자산 297조 8000억 원인 KB금융이 자산 22조 2000억 원의 LIG손보를 인수하면 자산이 320조 원으로 불어나면서 318조 8000억 원인 신한금융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