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 ||
포항제철(현 포스코) 신화를 창조해낸 청암(靑巖)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77)이 노태우,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해 화제다. 박 명예회장은 최근 펴낸 회고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현암사)에서 한때 같은 당에서 정권 창출을 이루며 동고동락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올해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한 이대환씨의 손을 빌려 77년 인생을 회고한 박 명예회장은 자신을 ‘영원한 포철맨’ 자리에 올려놓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물론 전두환, 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과 얽힌 정치 비사를 담담히 털어놨다. 평전의 주요 내용을 발췌했다.
저자는 박 명예회장이 48년 경비사관학교 교육 시절 탄도학 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풀어 당시 교관인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이후 각별한 선후배 사이로 발전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박 명예회장에 대한 ‘박통’의 극진한 애정을 책 전체에 부각시켰다.
특히 1963년 대통령 취임식 직후 15번이나 전셋집을 옮겨 다니며 셋방살이를 전전하던 박 명예회장에게 박 전 대통령이 ‘봉투’를 내밀어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집을 처음으로 얻게 해준 일, 박 명예회장이 포항제철 사장 시절인 1974년 불쑥 포항을 방문한 ‘박통’에게 브리핑을 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면전에서 구토를 했으나 박 전 대통령이 오히려 자신의 주치의를 사흘간 포항에 머물게 해 박 명예회장을 보살피게 한 일화는 아직도 그의 가슴 속에서 잊혀 지지 않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자는 “박통이 사석에서는 나를 ‘박 첨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했다”라는 박 명예회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친구로 사귄 두 사람은 ‘술과 노래의 대화’로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권좌에 올라선 전두환 전 대통령 사이에서 벌어진 일화도 공개됐다. 박 명예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과 전 전 대통령이 처음 만난 것은 1950년대 초. 박 명예회장이 육사 교무처장 시절 전 전 대통령이 육사(11기) 4학년에 재학했던 것. 그 후 두 사람은 같은 연대에서 참모장과 중대장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후배인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중대원들이 장교숙소로 지으려던 목재를 다른 목적에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참모장인 박 명예회장에게 선처를 부탁, 비리를 무마해준 일도 있었다는 박 명예회장의 회고를 책에 실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 | ||
저자는 1980년 8월 당시 전 대통령이 박 명예회장을 자신이 거주하는 한강맨션으로 불러 입법회의 의장직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자리에서 법제처장에게 포철 사장의 공직 취임에 대한 법적 검토 지시를 내린 후 제1경제위원회 위원장에 내정했다고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물태우’라고 표현할 정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 명예회장은 민정당 대표 시절, 노 전 대통령이 김영삼, 김종필 당시 야당 총재들과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논의하는 자리에 자신을 일방적으로 배제했을 때와 92년 새해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왜 경선 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해놓고서는 4월 대선 후보 경선이 가까워지자 도리어 비서를 보내 경선 포기를 종용했을 때 심한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90년 1월5일 박 명예회장이 청와대에 찾아갔다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3당 합당 결정은 아무것도 된 게 없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는 얘기를 들은 뒤, 뒤이어 박철언 당시 정무장관으로부터 “3당 합당이 서명만 남았다”는 보고를 듣고 진노했던 일과 박 명예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92년 대선 출마자 경선의 조정자를 맡아달라고 부탁받았으나 이 제의를 거부하고 일부러 이종찬 후보를 지지한 후일담도 공개했다.
YS에 대한 감정도 그리 좋지는 않은 것으로 전했다.
박 명예회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90년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으로서 4월 소련을 방문하면서 당내에서 빚어진 내분과 10월 ‘내각제 합의각서’ 유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YS에 크게 실망했다고 전했다. 저자는 “박 회장은 비록 YS가 노 대통령에게 판정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자신의 실수를 격렬히 부인하고 노 전 대통령 과거(12·12, 5·18)의 치명적 결함을 담보로 주장을 관철하는 방법을 너무나 싫어했다”고 적었다.
박 명예회장은 특히 92년 10월 자신의 탈당을 막기 위해 포항에 내려온 YS가 “인간 김영삼을 믿어달라”고 말했던 부분에 대해 “‘인간 김영삼’을 회의하는 사람에게 그 말을 믿어달라고 하니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며 ‘팽’당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저자는 박 명예회장이 92년 대선 직전 “얼토당토 않는 인간적인 모욕을 당했다”고 진노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박 명예회장이 탈당을 모색할 당시, 민자당 정석모 의원이 찾아와 YS를 격려하는 서신을 써달라고 부탁을 해서 편지를 써준 뒤 ‘절대 비공개’라는 약속을 받아놓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2월17일 대선 전날 홍인길 당시 민자당 총재보좌역이 이 편지를 공개해 여론으로부터 “YS쪽으로 대세가 굳어지니 구애 편지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은 것.
이로 인해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박 명예회장은 97년 청와대에서 이회창, 조순씨 등과 함께 YS를 만난 자리에서도 “여전하네”라고 묻는 YS에게 “요절난 줄 알았냐”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는 후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매우 솔직하나 반면, 냉랭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국무총리 시절 정부 경제팀의 손발 맞추기를 주문하며 언성을 높이자 김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언짢아하는 표정을 자주 드러내 자신이 고립무원의 존재였음을 실감했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