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남 전 롯데건설 사장 | ||
한 정통한 소식통은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선 직후 당시 신동인 롯데쇼핑 사장(현 호텔롯데 국제부문담당 사장)측 핵심 인사가 롯데건설 사장이었던 임승남씨를 여러 차례 만나 ‘임 사장이 신 사장 대신 2개월 정도만 구치소에 들어갔다 나왔으면 좋겠다’고 회유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는 롯데그룹 관계자 누구도 불법정치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사법처리 대상에 오르지 않았던 시점이다. 그럼에도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일까. 초반부터 그룹 내부에서 불법정치자금 사건의 ‘몸통’을 가리기 위한 작전을 구사했다는 얘기다. 이는 롯데그룹이 신격호 회장의 5촌 조카인 ‘신동인 사장 구하기’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제물’로 임 전 사장을 지목했었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담당했던 대검 중수부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해 4월12일, 신 사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후 신 사장은 모두 19억8천만원의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임 전 사장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롯데 관련 대선자금 수사를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부회장에 대해선 불법 정치자금 제공 과정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건하지 않았다.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당시 검찰은 신 사장이 200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한나라당 신경식 의원에게 10억원,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와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에게 각각 6억원과 3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특히 여씨는 정치자금 수사 직전인 2003년 8월부터 9월까지 신 사장에게서 ‘롯데그룹이 사업과 관련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취지로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여기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신상우 전 의원도 롯데쇼핑 등에서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당시 롯데의 대선자금 수사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 수사 초기에 신 사장측의 한 핵심 관계자가 임 전 사장에게 신 사장 대신에 불법 대선자금 제공 혐의를 인정해줄 것으로 요청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신 사장측 핵심 인사가 신 사장을 구하기 위해서 ‘임 사장이 구속되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 2개월 정도만 구치소에 대신 들어갔다 나와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임 전 사장에게 대신 총대를 메게 하려했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 그러면서 그는 “임 전 사장은 롯데 대선자금 수사의 희생양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롯데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 초기부터 임 전 사장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이다.
검찰도 초기엔 신 사장을 타깃으로 수사를 하다가 임 전 사장에게로 수사를 확대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 수사 초기 신 사장이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언제 누구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했는지 진술하지 않자, 검찰이 수사방향을 롯데건설로 돌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서 롯데건설이 조성했던 비자금이 발각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롯데건설 수사에서는 대선자금과 관련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임 전 사장은 2002년 1월부터 2003년 10월 사이 협력업체에 공사비를 과다 지급한 뒤 나중에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 43억원을 조성, 법인세 7억원을 포탈한 혐의만 받았다. 임 전 사장은 지난해 7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9월 말 롯데건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우림건설 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 전 사장측은 대선자금 수사 당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정치권에 지인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술친구이다. 대선자금 수사 때도 정치자금을 전달한 사람이 신 사장인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밝혔다. 그렇지만 ‘롯데에서 신 사장 대신에 방패막이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끝난 일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게 임 전 사장측 반응.
그리고 당사자격인 호텔롯데 신 사장측은 “결코 그런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부인했다. 또한 임 전 사장에게 “구치소에서 2개월만 고생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 신 사장측의 핵심 인사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임 전 사장이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며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롯데그룹이 신격호 회장의 조카를 보호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제물’을 필요로 했다는 전언은 낭설일까. 아니면 실제로 ‘몸통’을 은폐하려는 모종의 프로젝트가 실제 가동됐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세인들은 불법자금을 정치인에게 제공한 혐의로 사법처리 됐던 대부분의 기업 관계자들을 ‘희생양’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수십,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면서 ‘오너의 결재’가 없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