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임대주택 선진화 방안’ 발표 후 부동산 시장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은 다세대주택.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다만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고 판단한 정부는 최근 슬쩍 부동산업계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조세원칙을 세운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라는 거창한 플랜을 꺼내들었던 정부가 “시장을 우선 살려놓고 봐야지…”라며 슬며시 뒤로 물러서고 있는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향후 경제회복 속도와 시장이 판가름해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13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임대소득 2000만 원 이하인 집주인들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분리과세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에 대한 비과세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건강보험료도 최소화하기로 했다. 지난 2·26 대책과 3·5 보완대책을 통해 밝힌 임대소득세 과세방안의 규제수준을 한풀 낮춘 것이다.
당초 정부의 목표는 2주택 이상 월세 임대자의 임대소득이 2000만 원 이하이면 분리과세하지만, 3주택자의 경우 소득에 상관없이 종합과세하기로 했었다. 1주택자도 집값이 9억 원(공시가)을 넘으면 종합과세하기로 했지만 이 기준도 없애고 소득 2000만 원으로 맞추기로 했다.
건강보험료의 경우 연 2000만 원 이하 임대소득자 가운데 자녀에게 피부양자로 돼 있는 노령층은 피부양자 자격이 그대로 유지된다. 지역 가입자에 대해선 건강보험료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직장 가입자의 경우 근로소득 외 임대소득이 발생하더라도 7200만 원까지는 근로소득에 대한 건강보험료만 부담하므로 건강보험료 변동이 발생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임대소득 과세계획을 수정한 것은 상당수의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이 최근까지 정부의 임대소득세 부과 방침 때문에 시장이 다시 침체됐다고 목소리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대소득세 과세 방안 발표 이후 수도권 투자시장이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유는 그동안 내지 않던 임대소득을 내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소득세법상 임대소득세 대상자는 전세는 3주택자(주택규모 85㎡ 이하이면서 기준시가 3억 이하는 면제) 이상, 월세는 2주택자 이상으로, 자진신고를 할 경우만 낸다. 본인이 직접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부과할 근거가 없어 사실상 내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지난해 국세청이 집계한 대상자는 약 35만 명(2012년 임대소득 기준). 이 중 실제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낸 집주인은 8만 5000여 명에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본인이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도 국세청이 전월세 확정일자 자료를 토대로 임대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임대소득세 중과 대상자 완화에도 시장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것은 이러한 부분 때문이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정책평가 세미나에서 “정부가 2·26 대책을 내놓으면서 소득세 규제완화라고 했지만, 내지 않던 세금을 내게 돼 오히려 규제강화로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다소 완화하더라도 심리적 부담은 여전하다”며 “대부분의 다주택자들은 세금을 내는 것보다 자신의 소득이 드러나는 것 자체를 꺼린다. 앞으로 주택을 구입하는데 있어 소득세 납부 대상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업계는 여전히 불만이 높다. 정부가 아직까지 2주택자 전세에 대해선 임대소득세를 부과하기로 한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다주택자들 대부분이 2주택자로 전세를 주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부분을 완화하지 않으면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클 것”이라며 “강남 재건축 시장 투자수요 대부분이 2주택자로 집을 전세 놓은 사람들인데, 정부가 투자시장을 인정하려면 비과세 대상을 면적에 상관없이 6억 원 초과 2주택자 전세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마련한 소득세법 개정안에는 2주택자 전세 가운데 전용면적 85㎡ 이하, 기준시가 3억 원 이하인 주택은 비과세 대상이다. 이 기준을 상향 조정해 면적에 상관없이 6억 원 초과 주택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2주택자 전세 소득과세는 이중과세가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맡길 경우 예금이자에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당정은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중과세가 아니라는 의견도 많은 데다, 기획재정부가 2주택자 전세 규제완화에 반대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문창용 기재부 조세정책관은 “2주택 전세자 가운데 소득 과세 대상자는 사실상 보증금이 9억~10억 원은 넘어야 하기 때문에 소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도 조세원칙을 강조하며 정부의 과세방안 후퇴에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은 당정 발표 이후인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2주택 보유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있었는데 앞으로도 3년간 세금을 비과세하겠다는 걸 보완책이라고 내놓은 것이냐”고 항의했다. 또 “정부는 주택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를 사실상 포기하고 탈세를 장려하겠다고 선언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