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당시 점쟁이 문어 ‘파울’이 스페인과 독일의 4강전에서 독일의 패배를 예측하는 모습. 이로 인해 파울은 독일 축구팬들에게 살해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로이터/뉴시스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숨은 MVP는 점쟁이 문어 ‘파울’이었다. 독일 서부의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에 살았던 파울은 독일이 출전한 7개 경기의 승패를 100% 맞혔다. 예측은 독일과 상대국 국기가 각각 그려진 유리상자 두 개에 홍합을 넣고 파울이 선택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조별 리그에서 시작해 우루과이와의 3·4위전까지 파울은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20년간 월드컵 조별리그 1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던 독일이 세르비아에게 무릎을 꿇게 되리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2010년에는 파울뿐 아니라 다른 ‘동물 점쟁이’들도 있었지만 썩 신통하진 않았다. 독일 동부 켐니츠 동물원의 하마 ‘페티’는 독일 대 세르비아전의 결과를 두고 파울과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페티의 참패. 같은 동물원의 원숭이 타마린안톤도 가나가 독일에 승리한다고 예언해 체면을 구긴 바 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오른쪽)은 러시아전에서 이근호의 득점을 예상하는 등 잇단 승패예측 성공으로 ‘작두해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진은 KBS 방송 캡처.
특히 8강전에는 두 동물 점쟁이의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독일에 파울이 있다면 아르헨티나에는 돌고래 ‘세이코’가 있었다. 두 동물은 각기 자국의 승리를 예언했지만 결과는 파울의 승리였다.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 대 0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축구 승패 예측에서는 아이큐 70의 돌고래보다 문어가 나았던 셈.
문어 파울은 이런 신통력 때문에 살해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스페인과 독일의 4강전에서 파울이 독일의 패배를 예측하자 “해산물 샐러드에 넣어 먹어버리겠다”, “상어가 들어간 수족관에 집어넣어라”고 축구팬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점쟁이 거북이가 나타났다. ‘빅헤드’라는 이름의 바다거북은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개막전을 두고 승리를 점쳤다. 양 국가의 국기 밑에 먹이를 달아놓고 선택하도록 했는데, 빅헤드는 브라질 국기 밑의 먹이를 먹었고 예측은 들어맞았다.
독일에서는 아기 코끼리 ‘넬리’가 파울의 ‘전설’을 이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 호덴하겐의 한 야생공원에 살고 있는 넬리는 2006년 여자 월드컵과 2012년 유럽 선수권 대회 33경기 중 30경기를 맞혔다. 경기를 벌이는 두 국가의 국기가 달린 골대에 공을 넣는 방식으로 예언했다. 17일 열린 미국과 가나의 대결을 앞두고 넬리는 성조기가 달린 골대에 공을 넣었다. 실제로 미국은 가나를 2 대 1로 꺾었다.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아기 코끼리 ‘넬리’, 자이언트 판다, 거북이 ‘빅헤드’(왼쪽부터) 등 여러 점쟁이 동물들이 등장했다.
이밖에도 월드컵에 참여하는 나라들에서는 자국의 마스코트 동물들로 승리를 점치고 있다. 호주에서는 ‘플롭시’라는 이름의 캥거루, 중국에서는 판다, 영국에서는 불독 ‘루’가 각기 자국의 점쟁이로 나서 활약하고 있다.
동물들의 ‘신통력’에 의존하는 것보다 좀 더 과학적인 방식도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방송 ESPN은 자사 소유의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을 통해 월드컵 승패를 예측했다. 2008년 미국 대선의 결과를 분석해 유명해진 파이브서티에잇은 원래 정치, 선거 분석 사이트였으나 ESPN은 이들의 분석력을 믿고 회사를 인수했다.
이번 월드컵 경기 분석은 SPI(Soccer Power Index)를 활용했다. SPI는 선수들의 수준과 팀의 전반적인 기술, 경기결과 등을 조합해 나온 결과다. 이는 1만 번의 경기 시뮬레이션 결과를 토대로 했다. 그 결과 A조에서는 브라질이, B조에서는 네덜란드, C조의 콜롬비아, D조의 이탈리아, E조는 프랑스, F조는 아르헨티나, G조는 독일, H조는 벨기에가 각각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속한 H조에서는 러시아가 63.1%의 확률로 조 2위를 차지하고 본선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가 본선에 진출할 확률은 38.3%에 그쳤다. 또 이들은 이번 월드컵 우승은 개최국인 브라질이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2위는 아르헨티나, 3위는 독일로 예상했다. 우리나라는 25위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계를 통한 과학적 방법으로 승패 예측을 시도하고 있다. 호남대학교 축구학과 경기분석팀은 2010 남아공월드컵 경기결과를 바탕으로 축구 경기 수행력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 내적 요인과 경기 외적 요인을 변수로 활용해 이번 월드컵의 승패를 예측했다. 분석팀의 16강 진출 예상팀은 ESPN의 결과와 일치했다. 반면 국가별 순위 예측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브라질을 1위로 꼽은 것은 동일하지만 2위 독일, 3위 스페인에 이어 4위에 아르헨티나를 꼽았다. 우리나라는 24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도 분석팀은 우리나라 대표팀의 승리 전략과 경기 가상 시나리오를 분석해 내놨다.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2-1로 꺾고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경기에서는 무승부 접전을 벌이고 마무리됐으나,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은 들어맞았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