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현희 그림·오성수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꼭 1백 년이 되던 숙종 18년 일본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했다. 쓰나요시 장군의 첩이 에도성 안에서 피살되는가 하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실세인 야나기자와의 아내까지 연달아 피살된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진 후 1년이 지나도 사건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자 야나기자와 대감이 직접 현장에 나타나 에도에서 벌어지는 범죄사건들을 매일밤 보고받아 손수 챙기고 있었다.
카지야마 에도 수사대장은 일일보고를 끝내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 사건사고를 보고드리겠습니다. 강간범 사십오 명, 강도 십오 명, 방화범 세 명, 절도 네 명 그리고 동물살상 두 명입니다.”
“동물살상이 있었다?”
“예. 우에노 거리에서 개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놈이? 쓰나요시 전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살생이시다. 그래서 살생금지령을 내리시고 동물 학대나 살생은 극형으로 다스리시는 것을 모르는 놈이 있단 말이냐?”
“각하. 그 놈이 제 입으로는 조선관리라 합니다.”
“무어 조선관리?”
“예, 각하!”
“미친놈 아니냐? 조선관리가 통보도 없이… 아니 그럼 불법 월경을 했단 말이냐?”
“예. 제 말로는 유유라는 납치당한 조선 처녀를 구하러 왔는데, 급한 일이라 절차를 밟을 경황이 없었다 합니다.”
“조선 관리라는 증거가 있더냐?”
“증거는 없습니다. 관복과 칼을 잠든 사이에 빼앗겼다 합니다.”
“이름은?”
“안핀샤라 합니다.”
“그 희한한 이름이구나.”
야나기자와는 잠시 망설이다가
“감옥에 있겠구나.”
“예.”
“내일 오후 성안에서 심문을 할 것이다. 그 놈이 조선 관리라면 외교문제니 중요한 일이다. 쓰나요시 전하께서는 조선과 화친을 내세우셨다. 또 유유라는 조선처녀의 납치가 사실이라면 이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이튿날 오후 에도성 심문장에는 구름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조선 관리를 심문한다는 소문이 파다해진 것이다.
“네가 안핀샤냐?”
“그렇소.”
“네가 개를 죽였느냐?”
“걷어찼을 뿐 죽이지는 않았소.”
“왜 걷어찼느냐?”
“꽃구경 나온 한 귀부인에게 송아지만한 개가 덤비자 하녀가 막아섰소. 그러나 이 개가 그 하녀를 무는데 순간 내 눈에는 그 처녀가 내 정혼자 유유로 보였소.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그 개를 걷어찬 거요.”
“이놈아, 네 소매에 피가 묻지 않았느냐?”
“다시 덤벼드는 이 개를 어느 무사가 달려들며 날쌔게 목을 베었소.”
“그 놈은 누구냐?”
“난 모르는 사람이오.”
“네가 죽이고 딴 소리 하는 게 아니냐?”
“아니오.”
“증인이 있느냐?”
“….”
이 때였다. 어여쁜 처녀 하나가 나와 야나기자와 앞에서 무릎을 끓더니 “각하, 제가 증인입니다. 이 분이 제 생명을 구해주셨습니다. 이 분은 그 개를 죽이지 않았습니다”하고 증언하였다.
“네 이름은?”
“오키오라 합니다.”
“오키오? 너는 누구를 모시고 있느냐?”
“기라 대감 영부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애?”
야나기자와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고개를 돌리더니 화제를 바꾸었다.
“안핀샤, 핀샤라는 건 무어냐?”
“조선 무관의 벼슬이름이오. 감사나 수사 병사 외국사신을 호위하는 벼슬이오.”
“에도엔 무슨 일로 왔느냐?”
“내 정혼자 유유를 찾으러 왔소.”
“유유가 어찌 예까지 왔느나?”
“납치당해 왔소이다.”
“납치?”
“그렇소.”
안핀샤는 다시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오키오는 반 뜀으로 기라 대감 집으로 돌아와 부인 미스히메에게 고했다.
“마님, 안핀샤를 만났어요.”
“안핀샤?”
“우리 목숨을 구해준 그 청년, 그 청년이 조선 관리라 합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래요.”
두 여인은 그 길로 에도 감옥으로 향했다. 간수장도 미스히메 앞에서는 허리를 굽혔다.
“어찌하여 예까지 왕림하셨습니까?”
“내 생명의 은인인 안핀샤가 여기 감옥에 있다면서요? 어디 안내해 봐요.”
미스히메 부인이 다녀간 후 안핀샤의 감방은 제일 좋은 방으로 옮겨졌다. 뿐만 아니라 매일 진수성찬의 사식도 들어왔다. 사식은 오키오편에 보내오는 것이었다.
한번은 오키오가 음식을 가져다 놓고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안상. 제게는 생명의 은인인데 구출시켜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갈 때가 되면 나가겠지.”
“기라 대감이 오시면….”
“알았다.”
오키오는 주위를 살피며 “안상,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하고 나즈막히 말했다.
“제가 쓰나요시 장군을 모시는 시녀로 가게 되었답니다.”
“쓰나요시를 모신다? 그래서?”
“죽기보다 싫습니다.”
“왜?”
“그 능구렁이 노인에게 몸을 바쳐야 될지 모르니까요.”
“허지만…그야 어쩌겠느냐?”
“여기서 저하고 도망가요.”
“뭐? 도망?”
오키오는 날쌔게 달려들어 안핀샤의 목을 두 팔로 휘어 감는다.
“절 좀 구해주세요.”
“보다시피 갇힌 몸이 아니냐?”
“제가 구출되도록 해드릴거예요.”
“그렇게 쉽게?”
한번은 밤이었다. 야참을 가져온 오키오가 불을 끄더니 기모노의 띠를 벗겨 입에 물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비단 기모노가 스르르 벗겨지니 뽀오얀 알몸이 되었다.
“안상!”
오키오는 안핀샤가 놀랄 틈도 주지않고 안핀샤를 덮치었다. 안핀샤는 뒤로 넘어지며 미끄러운 처녀의 몸을 안았다. 오키오는 재빠리 안핀샤의 옷을 벗기었다.
“내일이면 전 장군 전하에게 뇌물로 바쳐집니다. 오늘 밤 밖에는 남은 시간이 없어요.”
보드랍고도 미끌한 육체가 안핀샤를 파고들었다. 안핀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은 서른이 넘은 여인은 상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장군을 맞이할 이 처녀가 감방 안에서 조선 청년에게 몸을 바쳤다는 것을 장군이 아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안핀샤는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러나 오키오는 안핀샤의 알몸을 제 알몸으로 또아리 튼 뱀처럼 휘감은 채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처녀를 바치고 난 후 오키오는 비밀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야나기자와가 오히려 안핀샤를 감옥에서 풀어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타니 가문에서 뇌물을 바쳤습니다.”
“왜?”
“당신을 오래 가두어 두어야 다케시마라는 보물섬을 빼앗을 수 있다면서요.”
“다케시마?”
안핀샤는 알몸인 채 벌떡 일어나 앉는다.
“나도 알아냈어요. 당신 이름이 안용복이라는 것을.”
“그래 그 섬은 어찌 되었다더냐? 그 오타니 놈들이 다시 차지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당신 심복들에게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하여 동래로 돌아가게 한 다음 오타니 사무라이들이 그 두 섬을 다시 차지하고 말았답니다.”
“오타니 놈들이 내가 에도에 온 것을 어찌 알았을까?”
“아야꼬라는 여자가 오타니 집안 딸인 것을 알았어요?”
“전혀!”
“그년의 수작이었어요. 당신을 대마도로 또 에도로 따돌려 놓고 그 사이에 보물섬 두 섬을 차지해버린 겁니다.”
“그럴 리가….”
“그 여자가 어쩌면 당신이 찾고 있는 유유를 어디엔가 감추어 놓고 대마도로 잡혀갔다고 소문을 낸 것은 아닐까요?”
“아야꼬는 그럴 여자가 아니야.”
“당신에게 너무나 잘하고 일본어까지 가르친 것도 다 미인계를 쓴 걸 거예요.”
“뭐라고?”
“그렇지만 제가 구해드릴께요.”
“어떻게?”
“장군께서 내일 야나기자와 별장에 오십니다. 그때 제가 차를 드리게 되어있어요. 그 때 당신 이야기를 비칠 거예요. 장군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준비해 두세요.”
1년에 두 번씩 쓰나요시 장군은 야나기자와 대로의 별장을 방문한다. 일설에는 장군이 야나기자와의 첩과 즐긴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날 오키오는 장군의 차 시중을 들게 되어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장군은 몇몇 심복만을 데리고 나타났다. 야나기자와는 간이라도 빼어줄 듯 장군에게 입안의 혀처럼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장군은 오키오에게만 눈을 주었다.
“넌 이제 막 털을 벗은 천도 복숭아 같구나”하고 웃을 때 오키오는 찻잔을 내려놓고 “전하, 황송합니다. 나라가 다시 어지러워지나 봅니다.”
“왜? 그게 무슨 소리냐?”
“조선 관리가 에도 감옥에 다 와 있으니 말입니다.”
“뭐라? 조선 관리가 에도 감옥에?”
“예. 안핀샤라는 젊은 관리가….”
오키오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게 사실이오?”
“예.”
“당장 그 조선 관리를 불러오시오!”
“예.”
점심식사가 끝나자 용복은 쓰나요시 장군 앞에 불려나갔다.
“당신이 조선 관리요?”
“그렇소.”
“어찌하여 감옥에 갇히었소?”
“내 정혼자가 일본에 납치당했소. 그를 구하려다가 개를 걷어찬 죄라 합니다.”
“정혼자가 납치당했다?”
“예.”
“어느 놈이 그런 못된 짓을?”
“누구겠소이까?”
“일본 사람이란 말인가?”
“당연하지요. 그래서 급히 왔는데 길에서 한 처녀가 개에게 물리는 것을 보는 순간 그 처녀가 내 눈에는 납치당한 유유로 보였소이다.”
“허허. 그래 조선에선 무슨 일을 맡았소?”
“일본 사람들이 다케시마라고 하는 독도와 마쯔시마라고 하는 울릉도를 지키는 일을 맡고 있소이다.”
“다케시마라?”
“울산에선 하루 뱃길이요 일본에서는 제일 가깝다는 백기주에서도 닷새가 걸리니 이것만 보아도 이 두 섬이 조선 섬인 것이 뻔한데 어찌하여 일본 어부들이 들어와 살다시피 한단 말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소?”
“임진왜란이 나서 그 섬들 주민들이 위험하여 육지로 들어오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잠시 섬을 비웠다고 그 틈을 타서 일본 어부들이 살금살금 들어와 향나무며 약초며 해산물을 씨를 말리니 이것이 어찌 이웃나라간의 화친이라 하겠소이까?”
“….”
장군은 입이 얼어붙었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그래도 옛 일은 다 잊고 화친을 하자 하여 우리 숙종대왕께서는 백성들을 달래오셨소이다. 그러나 이웃 나라 섬을 떡 차지하고 앉아 모른 척 하고 있으니 이게 될 일이오이까?”
장군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는 처음 듣는 소리요. 그게 사실이라면 다시는 일본 어부들이 그 두 섬에 얼씬하지 못하게 하겠소. 내 조부와 선친께서 조선과는 화친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었소. 살생을 한 것이나 동물을 학대한 것은 우리 나라 법으로 금하는 일이지만 그 사정을 모르고 한 것인 듯싶으니 없었던 일로 하겠소.”
장군은 다시 야나기자와에게 정색을 하고
“들었소?”
“예.”
“그 섬에 대해선 금시초문이오.”
“그렇습니다.”
“안핀샤를 잘 모시고 유유라는 처녀도 찾아보시오. 그리고 조선에 편히 돌아갈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용복은 유유를 찾지 못했다. 한 달이 더 지나서 동래로 돌아온 용복은 오키오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유유는 시체가 되어 돌아와 이미 장례를 다 끝낸 뒤였다. 아야꼬는 종적을 감추었고 심복들의 말을 들어보니 울릉도와 독도는 다시 게다짝으로 더렵혀져 왜놈들 손에 넘어가 있었다.
(계속)
▲ 홍현희 | ||
이 작품은 15년 걸려 써온 대하장편 <독도 8·15> 일명 <아야꼬의 연인>을 요약하여 다시 쓴 압축본이다. 지금과 꼭 같은 상황이 3백 년 전 숙종 19년부터 23년까지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대마도주와 오타니 선단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미인계와 외교문서를 조작해가며 강탈하려 했다. 비겁한 조정대신들은 그 섬을 내어주자고 했고 조선 어부들이 두 섬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노라는 각서를 일본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개 평민인 어부 안용복이 일본에 두 번씩이나 건너가 높은 관리들과 담판을 지어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땅이라는 사실을 선언해 조선에 외교문서로 보내왔으니 이것은 오로지 안용복의 공로인 것이다. 그래서 사형은 면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작가 약력
연세대 졸 / 천안대 교수 / 연세문학상 수상 / 현대문학 단편 <백자항아리> 추천 / 월간중앙 신인작가상 수상 / 단편집 <백자항아리>, 수필집 <미국인도 울고 간 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