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 : 주성영, 유영하, 장윤석(왼쪽부터) | ||
현재까지 한나라당·민주당·열린우리당 등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이 지역구 공천을 확정한 법조인 출신 출마자는 모두 1백1명에 달한다. 이런 인원은 전체 공천 확정자 8백88명의 15.6%를 차지하는 것으로, 직업군별로 따졌을 때 전체의 40.5%(2백62명)를 차지한 전·현직 의원과 의원 보좌관, 지방자치단체장 등 직업 정치인 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높다.
결국 직업 정치인과 법조인 등 두 직업군이 전체 공천 후보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56.1%에 달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법조인 출신 비례대표 후보들은 제외돼 있어 전체 법조인 출신 총선 후보의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또 탄핵사태와 관련한 당내 분란으로 공천 작업이 늦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추가 공천자 중에도 여러 법조인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당별로 보면, 한나라당에서는 현재 후보가 확정된 2백27개 지역구 후보 가운데 법조인 출신이 51명으로 22.5%나 됐다. 3당 평균치보다도 높은 비율이다. 또 민주당에서는 공천이 일단락된 94개 지역구 후보 가운데 법조인 출신이 16명(8.3%)이고, 열린우리당은 2백43개 지역구 후보 가운데 34명(13.9%)으로 집계됐다.
지난 16대 총선 결과에 견주어 보면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법조인 출신 가운데 최소 40명 이상이 금배지를 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6대 국회(총의석 2백73석)에서 차지하는 법조인의 의석수 비중은 15%로 15대(2백99석)의 13.7%(41석)보다 높아진 바 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23명으로 가장 많았고 민주당 14명, 자민련 3명, 무소속 1명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번에 여당인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검사 출신 법조인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첫 출사표를 던지는 검사 출신은 아예 전무하고, 현역 정치인 중에서도 1980년대 잠시 검사로 재직하다 판사로 옮긴 조배숙 의원(전북 익산을)이 거의 유일하게 검찰 출신 공천자로 꼽힌다.
이와 달리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야 3당에는 기존 검사 출신 의원들 이외에 이번에 처음 공천을 받거나 공천을 신청한 검사 출신 법조인들도 여럿 눈에 띈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검찰에 몸담고 있다가 옷을 벗고 공천을 신청한 ‘예비 정치인’들은 전원 야 3당에 몰려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한나라당에서 공천을 따낸 전직 검사들은 대구고검 검사 출신의 주성영(47·대구 동구갑), ‘아가동산’사건 수사 검사였던 강민구(40·서울 금천·사시 31회),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출신 이영규(43·대전 서구갑),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장윤석(55·경북 영주), 서울 북부지검 검사 출신의 유영하(43·경기 군포) 등이 있다. 충남 논산·금산 선거구에서 거의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가 막판에 탈락한 박준선 변호사(38)도 지난해 7월까지 현 정부 아래서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일했다.
또 민주당에서는 광주고검장 출신인 김대웅 변호사(61·광주 동구)가 공천이 확정됐다. ‘양길승 몰카 사건’의 장본인 중 한 명인 김도훈 전 청주지검 검사는 지난해 12월 민주당에 영입된 뒤 충북 청주 상당 지역구 출마가 확정적이었으나, 최근 뇌물수수 등 혐의로 법정구속되면서 공천이 어렵게 됐다.
자민련에서는 올해 1월까지 천안지검 검사로 있다가 사직한 도병수 변호사(42·충남 천안갑)가 공천을 받았다.
이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왜 잠시나마 행정부의 최고 수반으로 모셨던 노무현 대통령의 당인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야당행을 선택했는지 연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민주당 : 김대웅(왼쪽), 자민련 : 도병수 | ||
이 가운데 주 전 검사는 98년 9월 전주지검 근무 당시 유종근 전북도지사의 비서실장과 지역감정을 주제로 논란을 벌이다 빚어진 사건으로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전보 발령된 전력과 관련해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낙천 대상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또한 자민련의 도병수 전 검사는 자민련의 오랜 텃밭인 충남 천안에서 나고 자랐고, 김대웅 전 고검장은 민주당의 뿌리인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광주 제일고등학교를 다녔다.
충남 서천 출신인 이영규 전 검사와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충남 논산 출신 박준선 전 검사, 민주당 공천이 막판에 좌절된 충북 청주 출신의 김도훈 전 검사 등도 전통적으로 보수적 정서가 강한 충청권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채의 현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보수정당 체질로 분류되는 인사로는 ‘공안검사’ 출신인 이영규 전 검사와 장윤석 전 검사장이 있다.
이 전 검사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검사로 재직할 당시 ‘강철서신’ 사건의 김영환씨 등이 연루된 ‘민혁당 사건’과 ‘미국 시민권자 북한 잠입, 탈출사건’ 등의 수사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수사에 착수할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 부부장으로 있던 이 전 검사는 <조선일보>에 송 교수의 구속 수사를 주장하는 실명 기고문을 싣는 사고(?)를 치기도 했다. 대통령이 송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검토를 검찰에 당부한 시점에 평검사가 구속 수사를 주장한 것이다.
장윤석 전 검사장 역시 검찰 내에서 ‘공안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1994년 서울지검 공안1부장 재직 시절 12·12 및 5·17사건 수사를 지휘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DJ정부 출범 이후에도 검사장에 승진한 뒤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까지 지냈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서열 파괴’ 인사에 항의하며 서울고검 차장을 마지막으로 옷을 벗었다.
이들 검사 출신 후보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검사 특유의 합리성과 패기로 당론에 반하는 주장을 거침 없이 펴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 탄핵사태와 관련해 주 전 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 탄핵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고, 도병수 전 검사도 자민련 지도부에 탄핵 철회를 공개리에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대웅 전 고검장은 탄핵 철회와 지도부 사퇴 등을 요구하며 삭발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은 법조인 출신 새내기 정치인들은 전체 13명 가운데 검사 출신은 전무하고, 김준곤 의문사진상규명위원과 이상경 변호사 등 검·판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 또는 판사 출신들이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현 정부 아래서 공무원 녹을 먹은 검사들이 죄다 야당 간판으로 총선에 출마하는 것은 현 정부에 대한 검사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반영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또 다른 원로 법조인은 “검찰과 현 정부 간의 문제라기보다는 검사 개개인의 지역적 기반 등이 집권당과 맞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며 “물론 법 집행을 하는 직업인인 검사들이 자연히 체제 유지적이고 안정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주요 원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