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지난 1988년 파라과이 방문 당시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 ||
역대 주교황청대사를 역임했던 주요 인사들의 일관된 대답이었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역대 대사들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전의 교황의 모습과 여러 가지 알려지지 않은 비화들을 전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공통적인 것은 역시 교황의 ‘한국 사랑’이었다.
특히 배양일 전 대사는 “교황께서 한국의 인삼과 수지침을 좋아하셨다”는 사실을 최초로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교황은 수지침을 맞기 위해서 국내에서 특별히 전문 한의사를 이탈리아 현지로 불러들일 정도였다는 것. 또한 배 전 대사가 교황에게 홍삼을 여러 번 선물해 호평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3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아주 특별한 한국과의 인연을 살펴본다.
지난 DJ정권 당시인 1999년 3월부터 2002년 2월까지 대사를 역임했던 배 전 대사는 교황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예비역 공군 장성 출신인 그는 현역 공군 대령 시절이던 84년 당시 교황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헬기로 교황을 직접 수행하는 총책임을 맡기도 했다.
배 전 대사는 “나 또한 가톨릭 신자였던지라 말로만 듣던 교황을 직접 모신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보다도 무척이나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을 태운 헬기는 바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전용 헬기였던 것.
군사정권 이미지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당시 정권이 교황의 한국 최초 공식 방문을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상당한 호재로 여겼음은 물론. 특히 전 대통령의 교황 방문에 대한 예우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극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배 전 대사는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 헬기를 내준 것부터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전했다.
이런 인연 탓인지 배 전 대사가 99년 현지에 부임했을 때에도 교황은 만나자마자 “한국인들은 의지가 강하니까 외환위기(IMF)도 반드시 잘 극복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하는 등 한국의 국내 사정에 대해서 너무 소상히 잘 알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교황은 야당 시절 한 차례 공식 방문한 적이 있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배 대사는 건강상의 이유로 공식 일정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던 2000년 3월에 김 대통령의 교황청 국빈 방문을 전격 성사시키기도 했다.
2000년 무렵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교황이 한국의 인삼과 수지침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도 무척 흥미롭다. 배 전 대사는 “교황이 수지침을 종종 맞으셨다. 현지에는 수지침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한국 전주에 있는 한 한의사를 직접 교황청 현지로 청해서 수지침을 맞기도 했다”는 비화를 처음 공개했다. 그는 이 한의사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는 그렇게 유명세를 탄 분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인삼도 좋아했다고 한다. 배 전 대사는 “인삼을 좋아하시기에 홍삼을 선물해 드렸더니 역시 좋아하셨다. 그래서 이후 종종 홍삼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 역시 무척 좋아했다고. 배 전 대사는 “특히 한국 여성들의 한복에 대해 좋아하시는 듯했다. 내가 처음 부임해서 인사드리러 갈 때도 집사람에겐 한복을 입고 들어오라는 주문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역대 대사들도 신임 인사 때 부인이 반드시 한복을 입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DJ 정권 말기에 배 전 대사에 이어 현지 대사로 부임했던 서현섭 전 대사는 “당시 교황은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었지만 내게 분명한 한국말로 ‘찬미예수’라고 하시면서 ‘한국을 두 번이나 왔다갔다. 지금은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교황은 생전에 북한과 중국을 꼭 한번 방문하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 전 대사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당시 교황은 내게 ‘미라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기뻐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DJ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교황을 평양에 한번 초청하면 어떻겠느냐’는 의사를 전했더니 김 위원장이 ‘오시고 싶으면 오시면 된다’고 답했다는 사실이 교황청에 전해지면서 한때 실제 교황의 북한 방문이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 84년 한국방문 때 비행기에서 내려 땅에 입맞춤하는 교황. (위)<보도사진연감>, 지난 3일 명동성당에서 교황을 위해 기도하는 신도들. 임준선 기자 | ||
교황은 한국말도 곧잘 구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의 한국 방문이 최초 성사됐던 84년 당시 대사였던 김좌수 전 대사는 “당시 한국 방문을 준비하면서 교황은 따로 한국말을 열심히 개인교습 받았다. 한번은 내가 교황청을 방문하고 돌아서려는데 교황이 ‘안녕히 가십시오’하며 한국말로 인사하기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김 전 대사에 따르면 84년 한국 방문 때에 그 성격과 행사의 절차를 놓고 국내 가톨릭계와 정부 간의 미묘한 긴장과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교황 방한의 공식 초청 주체는 정부가 아닌 한국 가톨릭계였기 때문. 김 전 대사는 “물론 순서로 따진다면 가톨릭계의 초청에 응한 모양이 맞긴 하지만, 또한 교황은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로서 대사급 수교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정부의 초청에도 동시에 응한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내가 교황의 한국 방문을 수행했는데, 가톨릭계에서는 ‘정부가 왜 나서느냐’며 반발이 심해 결국 여의도 행사에만 참석하고 나머지 다른 행사에는 참석치 못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통령도 입출국시 공식행사에만 나왔을 뿐, 종교행사를 제외한 별도의 개인 행사는 갖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전 대사에 따르면 당시 전 대통령은 교황 방문에 대해 교황청측이 놀랄 정도로 상당한 신경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대개 교황의 방문시 공항에는 그 나라의 총리나 외무장관이 나가는 것이 의전상 관례였으나 당시에는 전 대통령이 직접 마중했을 뿐만 아니라 출국장에도 나왔을 만큼 유례없는 예우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 방문 몇 달 전부터 내가 대통령에게 수차례 서신으로 보고하는 등 당시 대통령의 관심과 준비는 각별했다. 공항에 대통령이 나가는 문제에 대해서도 일부에서는 외교 관례를 들어 반대하기도 했으나 내가 형식에 얽매이지 마시라고 강력히 건의했고 이를 대통령이 받아들였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여의도에 1백만 이상의 신도가 운집하는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직접 공병 1개 대대를 동원하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외에도 대통령 전용헬기를 내주는 등 각별한 신경을 쓰자 오히려 교황청측이 부담스러워했다는 후문. 배 전 대사는 “주한교황청 대사로부터 후일 전해들은 이야기이지만 당시 정부의 관심이 각별해서 좀 불편할 정도였으나, 교황은 상당히 흡족해 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5공 말기에 현지 대사로 부임했던 강영훈 전 총리는 “85년 1월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교황이 유독 환대하면서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광장에서 1백만명이 환영하던 광경이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말씀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교황은 향후 가톨릭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질 것임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당시 전 대통령 역시 교황 방문 이후 교황청의 중요성을 부쩍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물급 인사였던 강 전 총리를 교황청 대사로 임명한 것이 그 예. 강 전 총리는 이 같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 웃음으로 답하면서도 “대통령이 그렇게 인식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