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의원(왼쪽)과 노무현 후보 | ||
정 후보는 5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국민통합21’ 창당식을 갖고 대선후보로 공식 추대됐다. 그는 9월 출마선언 이후 신당을 위해 각계각층 유력인사들을 대상으로 신당참여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세 확산에는 일단 실패한 것으로 정치권은 분석하고 있다.
일단 당내 현역의원이 정 후보를 제외하고는 없다. 전국 규모의 탄탄한 조직망도 갖추지 못했다. 선거를 위해서라면 기본적으로 투입돼야 할 자금 또한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원은 12월 대선에서 필승의지를 보이고 있다. 왜 일까. 정치권에서는 올 대선의 마지막 변수로 ‘후보단일화’를 꼽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혀온 이회창 후보에게는 그동안 병풍을 비롯한 수많은 난관이 있어왔다. 일단 이 후보는 이들 고개를 넘는 데 성공하면서 여론조사상으로는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반한나라당 세력 사이에서는 ‘노-정’의 후보단일화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노-정 후보도 여기에 대해 이견 없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정치권은 후보단일화에 반대해왔던 정 후보가 갑작스레 이를 받아들인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정 후보는 여론지지도가 떨어지기 전까지 노 후보와의 단일화에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 후보가 단일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 후보와 2위다툼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 후보가 단일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정 후보에 대한 여론지지도 하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2일 발표된 〈MBC-코리아리서치〉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이회창-정몽준-노무현 후보가 각각 35.9%, 20.7%, 19%를 차지했다. 〈조선일보-한국갤럽〉의 결과도 비슷했다. 이 후보 34%, 정 후보 22.6%, 노 후보 19%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단일후보로 출마해도 이 후보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후보 입장에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의 주장처럼 대선전략의 가장 큰 추진체는 ‘국민의 뜻’이라고 하는 여론지지도였다. 물론 노 후보측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정 후보로부터 빠진 지지세가 자신들에게 돌아오기보다는 오히려 이 후보에게 더 많이 간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 후보측은 내부적으로 여론지지도의 최저 마지노선을 23%대로 설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최근 지지도가 마지노선 밑으로 떨어지자 대선전략을 긴급 수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보단일화가 바로 그 산물이라는 것. 이 같은 전략수정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 후보의 지지도가 10%대로 하락할 경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측의 한 핵심인사는 “후보사퇴와 같은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정 후보가 극한 상황을 맞는 것보다는 차라리 후보단일화를 받아들이는 쪽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령 경선에서 져 후보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투자한 것을 감안한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정치적 지지세력이 없는 정 후보로서는 후보단일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 후보가 주장하는 국민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다. 정 후보는 “국민의 뜻이라면 단일화하겠지만 후보간 합의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안동선 의원 | ||
그렇다면 정 후보는 출마선언 이후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조직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후보는 창당 직전에서야 민주당 탈당의원들을 대상으로 개별영입에 직접 나섰다. 전화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했다.
사실 정 후보의 ‘주가’가 높았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참모진에서 “(영입의원을) 직접 만나야 한다”는 보고를 올려도 반응이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 영입대상을 이런저런 이유로 골랐기 때문이다. 최근 정 후보캠프를 떠난 안동선 의원은 “(정 후보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서 정치적 견해뿐만 아니라 대선전략상의 방식에서도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통합21측의 또다른 고위인사도 주위 인사에게 “정 후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캠프에 계속 참여해야할지 여부를 상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는 그동안 선진국형 정당을 주장해왔다. 원내정당이 그것이다. 국민통합21도 이 같은 유형을 모델로 삼고 있다. 때문에 국민통합21은 정치고비용 등을 이유로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별도의 지구당을 두지 않는다. 현재 당 조직도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정 후보측은 최근 젊은층의 지지세 확산을 위해 당내에 특별조직을 두기로 했다가 이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조직경량화로 창당 및 선거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다. 이로 인해 정 후보는 돈 쓰는 데 인색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선거에 필수적인 조건이 ‘조직과 돈’임에도 불구하고 정 후보가 이 부분에 조심스러워 한다는 얘기가 캠프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한 인사는 “지지도가 한참 올랐을 때는 여기저기서 돕겠다며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라며 적은 비용으로 조직을 강화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정 후보는 이에 대해 “쓸 때가 되면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운동이 공식화되면 그때 가서 써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국민통합21 임삼 전 의원은 “돈으로 의원을 데려오고 조직을 만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법정 선거기간 내에도 돈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정 후보가 돈을 쓰지 않는 데는 지난 92년 고 정주영 회장의 대선출마로부터 얻은 경험도 한몫하고 있다. ‘돈 안쓰는 정치를 하겠다’는 정 후보의 의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캠프 관계자들에게 하루 3천원짜리 식사가 제공되는 것이나 소액지출에 대해서도 영수증 처리를 하게 하는 것은 대선을 준비하는 정당으로서 당원의 의욕과 업무 효율성에 있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다가 추락의 길을 맞았던 한 유력정치인의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여론조사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선거 때가 국민이 무섭다는 걸 실감한다.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 게 민심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하락 추세에 접어든 정 후보. 신당창당으로 또 한 번 웅비의 ‘꿈’을 꾸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꿈’을 꾸려고 하는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