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군주제에 대한 가능성은 지난 박정희 정권 때인 3공 이후부터 늘 잠재되어 왔다. 움직임은 죽 있어 왔지만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통일 이후를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통일 대한민국이 되면 정통성을 세워야 하는데, 그때 황실이 가장 확실한 통일 한반도의 정통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황실을 세워서 남북한의 연결고리를 갖는 정통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분명히 그런 얘기가 나오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본다.”
이 관계자의 얘기는 다분히 공상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한 개인이 갖는 단순한 희망 차원은 아니었다. 의외로 황실 관계자와 황실 복원을 주장하는 주변에서는 이 같은 가능성이 전혀 황당한 얘기는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이석씨 역시 몇 년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이나 스페인 등과 같이 왕실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는 일본도 황실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도 황실을 비록 관광자원으로 쓰는 한이 있더라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는 뜻을 피력한 바 있다.
서울교대 안천 교수는 자신의 저서 <황실은 살아있다>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스페인 왕정 복고를 깊숙이 연구하면서 실제 왕정복고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황실을 생각하는 것은 그저 동정하며 보호하는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그는 정초가 되면 황실의 핵심 구성원을 청와대로 불러서 일일이 말을 시키며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얘기가 ‘적격자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는 것이다’라는 한 인사의 증언을 담고 있다.
대한제국 황실은 이승만 정권 때 심각한 탄압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한 시사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전주 이씨로 태종의 큰아들인 양녕대군의 후손인 이승만은 셋째아들 세종의 후손이 대대로 왕노릇 하다가 급기야 나라가 망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고 밝혔다.
황실의 한 관계자는 “이승만 정권 때의 탄압으로 조선 황실은 나라를 빼앗긴 무능한 매국집단으로 인식됐다”면서 “아직도 그때의 이미지가 황실에 대한 거부감으로 국민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밝혔다. 역사학계 일각에서도 ‘조선의 황실은 민족주의적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무능이 비판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통성을 쉽게 부인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