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아테네올림픽 당시 아테네 삼성전시관 개관식에 참석한 이재용 상무(왼쪽)와 이건희 회장. | ||
좋든 싫든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서게 된 이 상무는 외부의 평가와는 별개로 경영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적으로 올해 들어 잦은 해외일정을 소화하며 경영일선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일요신문>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정리한 이재용 상무의 올 해외일정 스케줄에 따르면 이 상무는 지난 8개월 간 총 11차례 해외출장을 떠나 60일가량을 해외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한 달에 적어도 일 주일 이상은 해외에서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이와 같은 이 상무의 해외일정은 직책상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국내 여론의 질타를 맞고 있고 이 때문에 이 상무의 공개적인 후계자 행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상무의 잦은 외유는 또다른 해석을 낳게 하고 있다. 이 상무의 해외방문이 쉼 없이 이뤄지는 배경엔 어떤 노림수가 깔려있는 것일까.
이재용 상무가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주로 방문한 국가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다. 이 상무의 최근 8개월 간 11차례 해외방문은 거의 대부분 이 세 국가에 몰려있다.
이 상무의 올 해외방문은 이건희 회장과 함께 했던 두 번의 유럽일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다. 그가 외국행 비행기를 자주 탔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상무와 삼성그룹이 미국·중국·일본과 갖고 있는 묘한 이해관계에서 배경을 유추해볼 수 있을 법하다.
이 상무는 지난 2월과 6월에 한 차례씩 미국을 방문했으며 9월 말에도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에 대해 삼성공화국 논란과 편법 상속 시비로 국내에서의 후계자 수업이 부담스러워진 이 상무측이 미국의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을 맺고 세계관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월 이 상무는 삼성전자가 뉴욕에서 주관한 국제적 자선모금 행사 ‘희망의 4계절’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상무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의 환담 장면을 연출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다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줄리아니 전 시장 같은 미국 정계 거물과 친분을 다지며 국제적 자선행사 주관을 통해 미국 정·재계에 우호적 이미지를 심는 작업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 상무의 미국 행보를 삼성전자 본사 미국 이전설과 연결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국내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더라도 삼성 차원에서 손해 볼 게 없다’는 일종의 시위성 행보라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부분은 이 상무의 엠피쓰리 사업 관여설이다. 삼성이 최근 엠피쓰리 사업을 강화하는 것은 이 상무의 ‘경영 선택’이었다. 즉 삼성 외부에서 이런 저런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 상무는 꾸준한 경영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는 애플에 낸드플레시 반도체를 공급하는 ‘경영 선택’도 이 상무의 작품이라는 낭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 상무는 올 들어 지난 6월과 8월, 9월에 각 한 번씩 총 세 차례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 상무의 잦은 중국행도 후계 승계구도와 맞물린 해석을 낳고 있다. 삼성화재가 지난 6월 중국 현지 법인 개소식을 갖고 영업을 시작했으며 지난 7월엔 삼성생명이 중국 내 합작 보험사를 설립해 현지 영업을 하고 있다.
한때 재계에선 ‘이재용 상무가 삼성 금융 계열사 CEO를 맡을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계열사들 중 비교적 높지 않은 실적을 내는 금융 계열사의 경영을 맡아 이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 후계자로서 인정받으려 할 것’이란 관측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의 중국 현지 법인 영업이 본격화한 시점을 전후로 이 상무가 중국에 드나든 것과 맞물려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신규사업 구상을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며 이건희 회장도 사업상 목적으로 일본을 자주 방문했다. 이 상무는 올해 3월 5월 7월 8월에 일본을 방문해 가장 많은 외유시간을 일본에서 보내기도 했다. 선대 경영자들의 동선을 좇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부분이다.
한편 이 상무의 잦은 외유를 해외 현지와 관련한 특성보다 국내 상황에 맞춰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 상무의 해외스케줄을 꼼꼼히 뜯어보면 국내에서 민감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해외에 나갔다가 그룹 내 주요 일정에 맞춰 귀국일정을 잡은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재용 상무의 올 첫 해외나들이는 지난 2월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2월 초 약 10일간 미국과 영국 등을 방문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편법 상속 논란과 관련해 관심을 모은 삼성에버랜드 임원들에 대한 형사재판 판결선고 예정일인 2월14일보다 하루 전날 입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상무 귀국 다음날, 선고공판에서 법원은 판결 연기 결정을 내렸다.
3월11일엔 ‘에프앤가이드’가 5년 만에 삼성 계열사에서 제외됐다. 에프앤가이드는 지난 2000년 이재용 상무가 인터넷 사업을 벌일 때 만든 벤처회사 9개 중 하나로 당시 별다른 실적을 못 내자 2001년에 나머지 업체들과 함께 삼성 계열사에 넘겨졌던 기업이다. 이 상무의 에프엔가이드 등 e삼성을 통한 벤처경영은 실패로 끝나 그의 경력에 흠집이 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 처분 소식이 보도되고 나서 바로 다음날 이 상무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일본에 약 일주일간 체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4월1일엔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적용을 피하기 위해 부채를 늘려 총자산을 늘렸다’는 내용의 보도가 전 언론에 실렸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비금융회사의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여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보도가 나온 직후인 4월 초순께 이 상무는 다시 해외방문길에 올라 보름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했다. 이 상무의 당시 해외일정엔 이건희 회장의 유럽방문 일정 수행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이 상무의 첫 방문지는 홍콩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회장의 유럽방문에 앞서 다른 일정을 소화하다가 이 회장의 유럽방문단에 합류한 셈이다. 지난 4월20일엔 삼성-소니 합작회사인 S-LCD의 충남 탕정사업장 출하식이 있었는데 이 상무는 출하식 참석을 위해 하루 전에 귀국하기도 했다.
이후 이 상무는 5월 초 일본 출장을 짧게 다녀왔다. 5월17일 이 회장의 이태원동 새집 이사, 20일 수원 삼성 축구단과 영국 첼시 클럽의 친선경기 등 국내 일정이 빡빡했던 탓에 5월 해외일정이 짧았던 것으로 보인다.
6월 초 이 상무는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상무의 귀국일자는 6일로 알려지는데 다음날인 7일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을 추모하는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행사 이후 이 상무는 다시 미국에 건너가 3박4일 일정을 소화했다.
이 상무는 7월 중순께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일주일 정도 해외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상무가 일본으로 떠나기 며칠 전 그가 대주주로 있는 삼성 계열사들은 인터넷·모바일 마케팅 기업인 엠포스 지분을 전량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이 상무의 인터넷 사업은 숱한 논란만을 남긴 채 삼성 울타리 내에서 종적을 감췄다.
이후 참여연대가 ‘삼성이 인터넷 사업 부실로 3백8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는데 이때는 이 상무가 해외 체류중일 때였다. 이 기간 이 상무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이건희 회장과 구조조정본부·삼성전자 사장단 등 20여 명이 참석한 아시아전략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8월에 접어들면서 국내 언론에 ‘삼성공화국’이란 용어가 집중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안기부 X파일’ 문건 논란이 본격화돼 여러모로 삼성을 향한 시선이 냉담해지기 시작한 때다. 8월 한 달 동안 이 상무가 국내를 비운 것은 단 며칠로 일본과 중국을 잠시 다녀온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8월19일엔 편법 상속 논란 속에 진행된 재판 결과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이 5년 구형을 받았다.
지난 9월4일 이건희 회장은 신병 치료 명분으로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도피성 도미’라는 의혹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국감 증인 출석 가능성이 언론에 제기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 상무는 다시 해외일정에 나서게 된다. 9월 중순에 첫 방문지 중국을 시작으로 이 회장 병문안 차 미국에 들러 약10일간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해외방문길을 마치고 돌아온 이 상무의 국내 일정은 그리 마음 편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올 국감은 사실상 삼성 감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편법 상속 의혹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9월말께 이 상무는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상무의 미국 체류중 허태학 전 에버랜드 사장은 1심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이 상무의 잦은 해외일정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이미 삼성이 글로벌 기업이 된 만큼 해외에 자주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 상무에게) 미국이나 중국 가는 것은 부산이나 광주 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해외일정표
2월 : 미국 영국 등지 10박11일간 방문
3월 : 일본 6박7일간 방문
4월 : 홍콩 유럽 등지 13박14일간 방문
5월 : 일본 2박3일간 방문
6월 : 중국 4박5일간 방문, 미국 3박4일간 방문
7월 : 일본 7박8일간 방문
8월 : 일본 1박2일간 방문, 중국 1박2일간 방문
9월 : 중국 미국 등지 9박10일간 방문
9월 말 : 미국 출국